세종마을(서촌)에서 청와대로까지…

나의관심밖에서였는지몰라도서촌이란지명을들은지는얼마안된다.

막연히생각되는것은경복궁왼편돌담을따라가다가옛진명여고쪽에있겠지했다.

북촌길잡이에게들은것은한양의동서남북의마을을

청계천을기준으로해서나누었다고들어서알고있는정도였다.

그러나그건잘못된기준이고경복궁을중심으로나누었다는설명에

뭐가맞는지는잘모르겠지만검색으로혼동이된다하더라도

그건나름의정리일거야로간단히이해하면되지않을까한다.

기록에의하면

서촌은경복궁을중심으로서소문내외로인왕산기슭필운대弼雲臺동쪽과

경복궁서쪽사이…청운동,효자동과사직동일대를뜻한단다.

법정동기준으로는효자동,창성동,통인동,누산동,누하동,옥인동,

청운동,신교동,궁정동,사직동,체부동,등을

모두아울러서이곳을서촌일대라고한단다.

그러나주민들은이곳자하문길39앞길이세종대왕의탄신지라해서

역사적근거를들어"세종마을"로불리길원한다나!!!

이번에걸어보니초행길이어서인지이정표하나제대로된것이없고

길을물어도주민조차제대로갈길을일러주지못한다.

잘모르겠다나….

북촌과사뭇다른느낌은이정표와사람이친절하지않다는것이었다.

좁은골목을누가시작했는지골목쪽으로난방을헐고마당을헐어낸곳에

자그마한가게들이촘촘히들어선정도로생각된다.

가게마다장식되어있는것에"어머이거이거직접만들어들고나왔나봐???"

"옷봐!!!..저헝겊가방봐아!!!저것이요즘뜨는에코가방!!!.

저액세서리봐!!!하면

우리동서"형님…터미널시장에다있어"한다.

물건과장식품에대해선신성감이없는지동서도눈여겨보질않는중에

딱한곳…"이곳만은!!!"하고찾은곳이박노수미술관이었다.

조선후기문신윤덕영(1873~1940)이딸을위해1938년에건립한이층집으로

집터뒤는"송석원"이라는추사김정희가쓴암각글씨가있었던곳이라고한다.

"서촌=박노수미술관"이런등식이성립될정도로

서촌이면꼭들러봐야한다는걸왜앞지른생각이되었는지.

그런데

난박노수라는미술가가어떤그림이었는지

기억에딱떠오르질않았다.

한국화가의계보에선청전이상범,소정변관식,월전장우성,이당김은호,

김환기…까지의대표적인그림을기억할정도만…

박노수화가의그림은솔직히떠오르는것이기억에없었다.

덕수궁근대화가100선에작품이나왔었나하고찾아보니

유화8폭이라는병풍으로선을뵈었건만

기억엔???없어요…

천경자씨에게도사사받았던우리동서는

개인미술관이라는저택과함께작품을구경할수있는것에

자못흥분까지!!!

"형님동양화가중박노수의그림을모르다니

근10년붓들고10군자에산수화실력은뭐였지?"한다.

그때나이때나…그냥붓들고설렁설렁하는습관이라서…참

암튼한국미술계의대단하신분을이서촌기행에서만나게되어

좀더알고싶어

우선인터넷문고에들어가화필인생이란책을내신걸알고책부터샀다.

더불어반값이란것에꼬심받고경제학자의미술관꺼정!!!

이책또한흥미있을듯…

박노수

남정박노수(藍丁朴魯壽)는1927년충청남도연기에서출생했다.

서울대학교회화과를졸업하고,

근원김용준·청전이상범·월전장우성을사사하였다.

1953년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무총리상을시작으로

1955년대한민국미술전람회대통령상을수상하고,

대한민국예술원상,5·16민족상,은관문화훈장,3·1문화상등을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1956~1962)와서울대학교(1962~1982)에서교수로재직하였고,

대한민국미술전람회초대작가및심사위원을역임하였다.

동경국제미전과뉴욕월드하우스갤러리에초대출품하는등

다수의국제전에참가하였으며국내외를통해10여회의개인전을가졌다.

[인터넷교보문고제공]

박화백의제자이철주교수(중앙대)는

스승의작품세계에대해"선생님작품은그간의

중국이나한국의그수묵위주의전통적인기법을하던

작가들에서완전히차별화된작업을하였다.

독특한개성있는작품세계가빛나는채색에의해서,

또강인한선에의해서조화롭게만들어진세계라고생각한다"라고평가했습니다.

또한박화백이전세대가도제식교육이었다면,박화백은대학을통해작가가된,

현대적교육을받은대표주자였다”라고말하며,

“선생님은28세대통령상을탔고,29세에이화여대교수가됐다.

당시엔떠오르는태양같은작가였다”고존경심을표했습니다.

박노수화백이미술인으로입문하던시기는해방이후일본색을배제하고

한국화단이정체성을찾아가던시기였으며,

수묵이면서채색화인박화백의작품은

일본에서공부했던채색화로유명한천경자화백의기법과는다르다는평가를받고있습니다.


전시를기획한박수진학예연구원(국립현대미술관)은

“해방후1세대로당시동료화가들이먹에서추상으로넘어갔지만

박화백은채색과수묵을절제된색채와간결한선묘로융합시켜

과거와현재,구상과추상의경계를뛰어넘었다”면서

“단절되려는전통의맥을끌어내어현대적으로해석함으로써

한국화의새로운경지를창출해냈다”고말했습니다.

[인터넷교보문고제공]

이곳을"서촌의비밀정원"이라불렀다는데

오밀조밀한동네에서의양옥집은

누구나가선망의대상으로궁금한집이라는것에서온별명이었을듯.

10년투병생활동안화단의생활을잘못하시면서도

미술계를사랑하시는마음이더깊었단다,

2011년부인과의논하여작품과모든사재를

사회에환원하시기로살아생전에결심하시고

종로구청과기증협약을맺으며

오늘날의시립미술관으로거듭난박노수가옥은

1937년경으로추정되는조선후기의주거가옥의2층건물로

한식과양식의절충식가옥이며

1991년5월28일이미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제1호로지정되었단다.

입구에들어서자커다란둥근돌어항에는

금붕어두마리의모습이참한가롭다.

이런벽돌집을어렸을땐양옥집이라부르며

동네몇채되질않아

호칭조차양옥집할아버지

양옥집아가씨라는존칭도있었던적이있었다.

예전효창동에있었던채**이대교수님댁에

몇번가본그집이바로너무비슷하다라는느낌에

어머그옛날그집그곳~~~그랬다…ㅋ

현관들어서면오른쪽홀에커다란그랜드피아노와벽난로…똑같아서..ㅋ

참오랜만에들어가보는"구양옥집".

옛생각잠시했다…ㅋ

작품은사진불가이기에검색해보니???.ㅋ

바로이층인상좋은아주머니께서앉아계시던그방

옆은다락방이있는방이있었던그방…바로…

사진은절대불가라서인터넷신문에실린것을캡처하다.

그렇지않아도기억에있을까했던방의모습을

검색을통해다시보게되어너무반갑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