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을했던곳에서땅끝전망대를가기위한타워까진
200m정도로가까운거리에있었다.
전망대까지걸어서올라가는길이산책길정도라지만
우리는모노레일을타고올라갔다가
걸어내려오면서다도해를감상하자는쪽을택했다
모노레일편도를끊고탑승하자이날날씨의변덕에대해
관공객중어느구수한경상도아저씨의쎈입담의한말씀.
"머리풀어헤쳐산발한미친0널뛰듯한다나"…ㅋ
날씨에대해선더이상의확실한표현은없을듯해서
우린빵터질수밖에없었다…ㅋ
바닷가근처에사는사람에게는일상적인날씨일진몰라도
그렇게난리치는날씨를경험해보긴처음이었다.
바람이사진에나올…이정도였으니…ㅋ
흐릿하더니시야에금세아무것도보이지않을정도로뿌옇게되면서
바람이매몰차게치더니이내눈꽃송이가날린다.
7.8분모노레일탑승시간안에날씨의변화무쌍함이볼만했다.
모노레일을타고올라가면서
다도해의섬들의변화를보고싶었던꿈은접은체
흔들리며겨우도착
내리자마자위를쳐다보니바로전망대꼭대기만눈에들어온다.
입구에선전망대꼭대기올라가는요금을또받는다.
안개로덮여있어전망대에올라가도전망하지못해도좋으면입장료내란다.
전망대에서보이지않은날씨를알면서
뭘입장료를따로내라는건지.
이거야말로양심불량이란생각이들어씁쓸했지만
까짓꺼…돈천원기부한다는의미로
엣소~~~했다.
땅끝전망대의건립배경,상징물에대한설명이나와있다.
전망대의모습이등잔불모양에서가져온아이디어였네???…
전망대안에들어왔을땐안갯속에갇혀있다는말을실감했다
안개속에갇혀볼수있는것이라고환풍을위한창문위에걸려있는
이자리에서조망할수있는다도해의섬들안내판뿐이다.
안내판에는우리가가려는보길도,노화도도들어있었다.
맑은날이면제주도까지보인다나…ㅠ.ㅠ
잠시안개가세찬바람에걷히는듯
정말잠시…눈깜짝할사이에
땅끝전망실에서내려다보는땅끝마을,땅끝선착장,
맴섬과등대.
위에서보노라니맴섬이어떻게선착장에붙어있는줄알겠네…ㅋ
전망대에서바라보면좌측보길도가있다는데…
바람이세차도밖으로나가옆문으로조심스레나가봤다.
시야에들어오는것이하나도없다가잠시…ㅋ
하늘이요변을떠는듯금방금방변하는동안
시야에뭔가나타나면이때다하곤부지런히디카가움직이지만
그림은겨우…요렇게만이…ㅋ
조망眺望끝~~~하고내려오는데변덕스런날씨는
푸른하늘까지보여준다.
참나…약올리는듯한날씨!!!…ㅋ
땅끝유래.
이곳은한반도최남단으로북위34도17분21포의해남군송지면갈두리사자봉땅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만국경위도에서는우리나라전도(全圖)남쪽기점을이곳땅끝해남현에잡고
북으로는함경북도은성부에이른다고말하고있다.또한육당최남선의’조선상식문답’에서는
해남땅끝에서서울까지천리,서울에서함경북도은성까지를2천리로잡아
우리나라를‘3천리금수강산’이라고하였다.
오래전대륙으로부터뻗어내려온우리민족이이곳에서발을멈추고한겨레를이루니
역사이래이곳은동아시아3국문화의이동로이자문화의요충지라고할수있는곳이다.
갈두산봉수대
이곳은육지의최남단갈두산해발156.2m정상에위치한봉수대는
봉수의직경은4.5m내외이며갈두산봉수는광무10년영암군에속하였던송지면이
해남군에이속됨에따라편입된지역이다.
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에동쪽으로강진현좌곡산(현북일면봉태산),
서쪽으로해진군화산(현현산먄관두산)에준하여설치된것으로전하고있으며,
조선초에설치되어고종때폐지된것으로보인다.
‘봉수제’는삼국시대부터시작되어조선시대세종의4군6진개척과더불어확립되었다.
낮에는연기,밤에는횃불로써국가의급한소식을왕에게전달하는동시에
해당지역에도알려적의침략에대비했던군사통신방법으로그수에따라각각의미를가지고있다.
조선시대법전인경국대전에서는
평상시에는1개의홰,적이나타나면2홰,경계에접근하면3홰,경계를범하면4홰,
접전하면5홰를올리도록했다.
그러나만약에적이침입했을때안개,구름,비바람으로인하여봉수가전달되지않을경우에는
화포나각성또는기로써알리거나봉수군이직접달려가알렸다.
위에서내려다본봉수대
갈두산봉수대는원형을알아볼수없도록파괴되어있었던것을
자연석을이용하여막돌을쌓아복원하였으며,봉수의직경은4.5m내외이며
하부는바윗돌을사용하고상부로올라갈수록작은돌을이용하여축조하였다.(펌)
내가서있던전망대인갈두산을배경으로한땅끝마을의땅모양이
우리나라지도와비슷하게생긴기이한모습을하고있다고한다.
갈두산둘레길을걸어본다면멋진땅끝마을의탐방이될텐데
아쉽다…ㅠ.ㅠ
그러고보니갈두산전망대에서보니
땅끝마을은오른쪽만보고왔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