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7) 대흥사

기독교집안으로들어와살아온지가얼마인데

아직도어딜가나그지방의볼거리를첫째로꼽게되는것이산사이다.

깊숙이자리하고있는절에가는것은

옛것을찾아가고싶은마음에서일까???

명승지라고가면역시볼거리는절이라생각해서인지

설명을들으며자세히보고싶은데

한번도그런기회가주어지질않았다.

툭툭찍으며다녀온절의사이트를열어놓고

사진을대조해가며정리하는것도괜찮은방법인듯하다.

대흥사는워낙크고빨리봐라재촉하기도해서

중구난방식으로서둘러뛰어다녀야만했기에

이그림에맞춰사진으로찾아가며정리했다.

그러고보니이제야훤~~~히대흥사가보이는듯하다.

각전각들의내력은사이트로보면서익혔고

여긴주로글씨를위주로정리해봤다.

붉은글씨는사이트에서가져온펌질이다…ㅋ

유홍준의남도기행에도있듯이

이절은현판글씨들이대단한명품으로

조선후기서예의집약이라해서

현판글씨를주로봤다.

과연행서,예서,전서,초서에서한글서예까지총집합을해놓은듯

대단한글씨,최고의글씨를종합해본즐거움이랄까

이건만도대흥사에갔다온보람은충분했다.

대흥사를둘러싸고있는두륜산의원래이름은

국토남단에불쑥솟은형상에서나온"한듬"이었단다.

한듬에한자와섞어서"대듬"이라부르다가대둔산이되고

듬절은대둔절에서대둔사로그러다가

일제시대를거쳐대흥사로바뀌었단다.

혹자들은일제의잔재를없애는의미로

대둔사로돌려놓아야된다는주장을하고있다고한다.

그러고보니일본의절이름중"흥"자들어가는것을더러본듯

대둔사도한자와섞었다하니한듬사???그것도좀거시기한듯…ㅋ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은사역寺域으로들어가는첫번째문으로서

대흥사성역(聖域)의문지방에해당된다.


유선여관을지나구림리숲길끝자락에있으며,

어칸에는‘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이라편액하였다.

두륜산대흥사편액뒷면에쓰여있는현판

1975년에건립되었으며,

지붕을제외한콘크리트식건물로겹처마다포식팔작지붕이다..
보통기둥이일자형으로되어있는데,

대흥사일주문은여섯개의석주를세개에한묶음으로되어있다.

부도전

부도전은일주문을막지나오른편에자리하고있었다.

나지막한담장안에다양한모습을갖춘부도(浮屠)와탑비(塔碑)

모두80여기(부도54기와탑비27기)에이르고있다.

이들은대부분조선시대에건립된것으로17세기말에서19세기사이에제작된것이다.

숭상(崇尙)하는세력과절분위기가일치한때문이다.

부도와탑비의주인공들은모두임진왜란이후대흥사를중흥시키고크게빛낸스님들로서,

서산대사를비롯하여풍담(楓潭)ㆍ취여(醉如)ㆍ월저(月渚)ㆍ설암(雪巖)ㆍ환성(喚惺)ㆍ호암(虎巖)ㆍ

설봉(雪峯)ㆍ연담(蓮潭)ㆍ초의(草衣)등의대종사와,만화(萬化)ㆍ연해(燕海)ㆍ영파(影波)ㆍ

운담(雲潭)ㆍ벽담(碧潭)ㆍ완호(琓虎)등의대강사,그밖에고승대덕들의부도이다.

사적비는그크기와규모만큼이나

대흥사의위상을알만하게하는부도전인듯.

특히팔각원당형의서산대사부도(西山大師浮屠)는기단부와상륜부의독특한장식과

옥개의낙수면,처마의목조건물모각은이시대의작품에서는볼수없는

특이한수법으로고려시대의양식을보여주는듯하다.(펌)

보물제1347호로지정된서산대사부도가위치하고있어

더욱유명하다하여따로찾아봤다.

부도와비의주인공들이조선중기이후의인물들인만큼

부도와비의양식또한통일신라나고려시대의작품들처럼

세련되고섬세함을느낄수는없지만

정성을들여기품있게만들어진것이라한다.

숲속의바위하나가祥瑞로이보여한컷…ㅋ

해탈문[解脫門]

일반적인절을들어가는문으로천왕문으로들어갔던것같은데

여긴해탈문이나타나는것이특이하다.

부도밭을지나대흥사에들어서면천왕문대신해탈문이나타난다.

즉속계를벗어나법계에들어가는문이라고한다.

내부에는사자를탄문수동자와코끼리를탄보현동자가있는것을

주의깊게보라는충고대로봤고,

현판‘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와‘해탈문(解脫門)’의글씨는

해사(海士)김성근(金聲根,1835~1919)이쓴것이란다.

해탈문에들어서자대흥사안내판엔

두륜산의능선모양이

부처님의누워계신모습이라고소개하고있다.

자꾸보니그렇긴한것같기두하지않나???..ㅋ

부도전을지나조금걷다니대흥사로들어가는두갈래의길

반야교란다리와해탈문이나오는데

반야교를건너면대웅전쪽을먼저보는것이고

해탈문쪽으로가면천불전으로먼저가게된다지만

우린~~~반야교를건너대웅전쪽으로먼저갔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41176&cid=49277&categoryId=49277

대흥사사이트

대한불교조계종제22교구본사대흥사(大興寺)는

고찰로는신라진흥왕이어머니소지부인()을위하여

544년아도()로하여금창건하게했다는대흥사는설

해남두륜산(頭輪山)을배경으로자리한이곳대흥사는

한국불교사전체에서대단히중요한위상을차지하고있는도량이라고하는만큼

다녀본사찰중규모가가장크다고느꼈다.

빨리빨리돌아본대흥사의절규모

몇개의절이모여지어진듯…알아봤더니

절의공간구성이다른절과다른독특한구성을하고있단다.

검색과찍어온사진들을비교하며

대흥사의절을그나마제대로파악할수있었다.

대웅전쪽을보고건너갔던금당천을사이에두고북쪽과남쪽으로나눈

특이한가람배치라는것도알려져있다.

남원과북원과별원으로나눈뚜렷한모습

『대둔사지』에서는이같은절의공간구성을크게

북원(北院)남원(南院)의2구역으로구분하였다.

현재북원에는대웅보전을중심으로

명부전,응진전,산신각,침계루,백설당,청운당,대향각등의전각과

요사채들이법당과승방이하나의무리를형성하여배치되어있으며,

남원(南院)에는천불전을중심으로

용화당,가허루,봉향각,동국선원,그리고종무소등의전각과요사채들이

강원의무리를형성하여배치되어있다.


또남원(南院)의오른편별원에는

서산대사의사우인표충사와그부속건물인비각,조사전,의중당,강례제,명의제,

그리고최근에증개축한성보박물관이있으며,

표충사뒤편에는대광명전과보련각,그리고요사채로이루어진대광명전이위치하고있다.

천하의유홍준께서도남원과북원의구별이어려우셨군…

나의문화유산기3권82쪽

대웅보전을중심으로한남원에는…이라고

북원(北院)의대웅전영역

대웅보전(大雄寶殿)
대흥사의중심법전으로대흥사가람북원에자리한다.

심진교와침계루,대웅보전이남북으로일직선을이루며,

여기서직교하여좌측에대향각과

우측에백설당이중정을형성하며배치되어있다

대웅전

북원北院의중심인대웅전앞에양쪽야자수나무두그루가자라고있었다.

여기가남쪽끝땅이라는것을다시한번생각케한다.

특히이건물의외부장엄중눈길을끄는것은어칸상부에자리한2행종서의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는편액이다.

원교(員嶠)이광사(李匡師,1705~1777)의글씨로

추사와얽힌재미있는이야기가전해지며,

현재이글은백설당에걸린추사의‘무량수각’편액과함께대흥사명필로손꼽힌다.

건물계단석소맷돌에는두눈을부릅뜬사자머리한쌍이주목을끄는데

구한말일본석공이조각한것으로귀신상의모습을하고있다.

대웅전옆의윤장대와야자나무.

대웅전앞계단바로아래약수가있다는이것도특이해보이는데

게다가귀신형상께서바가지를쓰고계시다???.ㅋ

백설당(白雪堂)

백설당(白雪堂)

승방으로대흥사전체를통틀어가장규모가큰요사채이다.

백설당동편처마아래에는

제주도유배중에추사가쓴‘무량수각(無量壽閣)’이라는편액과

구한말명신으로미불체를구사한해사(海士)김성근(金聲根)이쓴‘

백설당(白雪堂)’이라는

두기의편액이걸려있다.

***

주건물인대중방은절안의스님들이모여공양과정진수행을하는

대중법요의장으로사용되고있단다.

응진당·산신각(應眞堂·山神閣)

북원일곽의대웅보전좌측에자리한이건물은

왼쪽으로부터응진당ㆍ산신각을한채에연이어수용한점이특이하다.

응진당편액은명부전과백설당의편액을쓴

해사(海士)김성근(金聲根)의글씨로알려져있다.

청운당(靑雲堂)
스님및재가종무원들의대중방으로,

현재요사체및스님들후원으로사용하고있다.


북원의침계루에들어서면우측편에있는전각

삼층석탑(보물제320호)

대흥사산신각과청운당사이에서있는탑으로,

전하는말에의하면신라자장(慈藏)이중국에서가져온

석가여래의사리모신사리탑이라한다.

신라석탑이서남해안까지퍼졌다는증거로서의

역사적가치가있는것이란다.

침계루(枕溪樓)

북원의출입문으로남ㆍ북원을가로지르는계류금당천(金塘川)에면하여

자리한2층누각이다.대웅전맞은편에자리한다.

어칸에는원교(員嶠)이광사(李匡師,1705~1777)가쓴

골기있는필법의‘침계루(枕溪樓)’편액과

그배면에‘원종대가람(圓宗大伽藍)’이라쓴

두기의편액이걸려있다.

북원쪽에있는편액들

북원과남원을가르는금당천

대흥사에가면이건꼭기억해두라는연리근…

연리(連理)는가까이자라는두나무가서로합쳐지는것을말하는데
뿌리가만나면연리근(連理根),줄기가겹치면연리목(連理木),
가지가하나되면연리지(連理枝)라고부른단다.

두개가하나된다는뜻으로사랑나무에비유되기도한다고.

우리의조상들은연리나무가나타나면길조로여겼단다.

천년을살아온나무라니현존하는최고의사랑같다.

이곳에선촬영한영화도있다는데…

금당천건너에서본범종각.

누가그랬나…대흥사는겨울에와서보라고

그의미를알게하는사진같다…

북원의대웅보전과응진당사이에있던범종각을근래에들어

천불전가허루앞으로새로이지어이전한것이라고한다.

범종각이있던자리에는윤장대가있다고.

남원(南院)의천불전영역

가허루(駕虛褸)

가허루를남원(南院)의출입문이라하며,여기가사찰의중심이란다.

휘어진문턱이신기해서얼른한커트찍어두었다.

천불전(전라남도유형문화재제48호)을비롯해

용화당·동국선원·봉향각·승방등이나온다.

‘가허루(駕虛褸)’라는현판글씨는

비운의명필창암(蒼巖)이삼만(李三晩,1770~1845)이썼단다.

가허루의뒷면

[천불전(千佛殿)_보물제1807호]

천불전은높이쌓은석축단(石築壇)위에낮은기단(基壇)에세운

전면3칸,측면3칸으로된다포계(多包系)의팔작지붕의건물이다.

‘가허루(駕虛褸)’라는글씨와같이

비운의명필창암(蒼巖)이삼만(李三晩,1770~1845)이썼단다.

자연석(自然石)기초(基礎)위에일부괴목(槐木)으로민흘림기둥을세웠으며

견고하게보이는창방(昌枋)과평방(平枋)을놓고내4출목(內四出目),

외3출목(外三出目)의다포작(多包作)을꾸몄다.

건물앞면에는궁창판에안상(眼象)을하였고정교(精巧)한

국화무늬(菊花紋)·연화무늬(蓮華紋)의꽃살분합문(分閤門)을달았는데

중앙칸은3짝,좌우협칸(左右夾間)은2짝이다.

천불전의문창살문양이아름답기로유명하단다.

천불전안의천개의불상은경주옥돌로만들어졌다는데

못보고온것이아쉬움으로남는다.

봉향각

용화당(龍華堂)

용화당(龍華堂)

대흥사천불전서쪽있는요사로승려의교육학당인강당겸

선방(禪房)으로사용하기위하여

초의선사의스승인완호(玩虎)대사가

1811년(순조11)에서1813년준공하였다.

일로향실(一爐香室)

일로향실(一爐香室)

천불전뒤쪽축대언덕에자리한일로향실(一爐香室)은

현재주지스님의요사채로막돌과힌줄눈친담장에둘러싸여있다.

스님들이정진하는곳이기도한이곳은일반인들에게공개되지않는데,

전면좌측에조선제일의명필인추사(秋史)의‘일로향실(一爐香室)’이라는편액은

초의선사와인연이있는추사가이곳에들러써준글씨로,예서(隸書)로쓴

힘찬필획과자유로운짜임새를통해추사체의특징을살필수있다.

남원공간에위치한적묵당은

좌측으로일로향실과뒤로염화실(조실체)가있다.

대흥사의남원(南院)쪽,사찰의가장위쪽에자리한보현전.

정면7칸,측면4칸의전각으로,조성한지그리오래되지않았단다.

가까이에또다른신생불전인문수전이있다.

보현전과그앞마당에서는

학술강연,산중총회,연수교육,작은음악회,녹차관련행사,수련회

다양한행사가열리고있다고.

심검당(尋檢堂)

보현전바로옆에위치한심검당은

현재템플스테이및수련회건물로사용중.

무염지(無染池)

초의선사가조성한무염지(無染池)’더러움에물들지않고항상깨끗한곳

너무나아름다운이름의연못,실용면에서는‘향로봉의화기를막는다‘는

풍수에근거하고있으며

실제로화재시물공급지의역할도가능하다고한다.

특히무염지의전체적인배치는절묘한굴곡모양연못과

중심에위치하지않은작은섬을만들어놓아

보는위치에따라모양이다르게보이며,

특히절에서바라보면마음(心)자모양으로보인다고한다.

남원쪽에있는편액들

별원(別院)의표충사영역

서산대사의사우인표충사와그부속건물인비각,조사전,의중당,강례제,명의제,

그리고최근에증개축한성보박물관이있으며,

표충사뒤편에는대광명전과보련각,그리고요사채로이루어진대광명전이위치하고있다.

초의선사[草衣禪師]동상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36193&cid=42752&categoryId=42754

출생-사망1786~1866

:초의(),일지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