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2m/1510~1515년/TheGardenofEarthlyDelights/
패널에유채/프라도미술관(스페인마드리드)
공상과환상이뒤섞인세계인쾌락의정원은보스의대표작이기도하다.
왼쪽은에덴의동산,가운데는쾌락의정원,오른쪽은지옥을나타냈다.
에덴의동산한가운데는생명의샘이있고가운데에분홍빛의이상한물체가솟아나고있다.
에덴동산엔고양이가쥐를잡아먹고머리가셋이나달린새도보이며
검은뱀은나무를칭칭감고있는등
에덴동산의분위기는기괴하고음침함을느끼게그려져있다.
가운데쾌락의정원은육욕과환락이넘치는곳으로
지옥으로떨어질죄를짓고있는남녀의기괴한모습을순진무구해보이도록그림을
해석하기에는난해하고무리가있지만그의상상력과독창성은오늘날에까지감탄을하게만든다.
오른쪽패널의지옥은욕망에빠진사람들이지옥에떨어져끔찍한형벌을받고있다.
사람의몸안에술집이있고술마시는사람들을그려넣기도했고
음악과향락을즐긴사람들은이상한모양의악기에묶여고문당하고있다
보스의이러한그림은14,15세기유럽에서흑사병과전쟁으로인한종말론이퍼져있어
보스가이런시대적영향을받은것으로보인단다.
보스의그림은초현실주의자살바도르달리에게영향을끼쳤다고도하고
영국의록밴드딥퍼플과마이클잭슨은보스의작품을앨범커버로사용하기도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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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의작품들
알브레히트뒤러(AlbrechrDurer,471~1528년)
지금의독일지역에있던신성로마제국의뉘른베르크에서태어나평생이곳에서활동했다.
뉘른베르크는큰도시로서북유럽에서인쇄업과출판업의중심지여서
뒤러의아버지는금세공업자였으나뒤러는가업을잇지않고화가가되기위해
15세부터공방에들어가제단화,종교화,목판화등을공부하고여행을통해견문을넓히며
서양미술사최초로자화상을남기며평생수없이자화상을그려
자화상을회화의한영역으로개척해"자화상의아버지"라고도불린다.
또한다양한분야에관심과능력이뛰어나
"북유럽의레오나르도다빈치""독일회화의아버지"등다양하게불렸었다.
르네상스시대의미술에는원근법에의해공간이확장되고
원근법은투시법..평면에투사,시점고정이있어야했다.
수학적인증명과비례적인그림을그리며자연모방을했고
기하학을모르면회화를못한다하여화가는시인이나수사학자에게배워야했다.
이시대는또한그림이란내용이중요시되었기때문에
내용위주의형식의발달로문과적교양과이과적교양이있어야하고
스케치로습작을해서유화를그렸다.
대표적인작가가알브레히트뒤러를들수있다.
뒤러의자화상
Self-Portrait/67.1×48.7cm/목판에유채/1500년
중세까지화가는단순한기능인에불과했지만
르네상스가한창이던이탈리아에서는화가의지위가점점높아져갔다.
뒤러는두번의이탈리아의여행을통해서화가로서의자의식에눈을뜬다.
1500년28세의나이에도불구하고사회적으로큰성공을거둔뒤러는
끊임없이자화상을그렸다.
뒤러의자화상은움직임과배경도없고상반신만이가득
그림의중심에자리잡은것은예전성화에서신의아들인예수에게만허용되었던구도를
자신의모습을그려넣으므로제2의창조자이고철학을가진지식인임을온몸으로보여주고있단다.
요한계시록의네기사
TheFourHorsemenoftheApocalypse/39x28cm/1497~1498년
15세기말유럽의세기말적징후(흑사병,매독.세기말적광적인종교,)를보일때
비교적제작비용도적게들고인쇄술도발달하여판화가대량생산한다.
이런시대의흐름에따라사업수완이좋은뒤러는매우뛰어나고독창적인판화가였다
1498년27세에세상의종말을다른"요한계시록"을독일어와라틴어판으로출판하여
굉장한히트를친다.
요한계시록중목판화의한페이지의장면중4명의기사들이상징하는4가지
전염병(화살을든기사),전쟁(칼을든기사),기근(저울을든기사),
죽음(삼지창을든기사)
http://terms.naver.com/artsSearch.nhn?query=%EC%95%8C%EB%B8%8C%EB%A0%88%ED%9E%88%ED%8A%B8%2B%EB%92%A4%EB%9F%AC%28뒤러의미술작품
16세기종교개혁의영향을많이받은북유럽에서는
종교개혁전그림의수요처가교회여서화가들이주로교회에프레스코를많이그렸다.
그러나루터의종교개혁후는그림이교회중심주의가아닌성경중심주으로변하면서
교회에서그림이필요한것이아니고부르주아가그림의수요층으로새롭게등장했으며
유화캔버스나스케치북이널이퍼지기시작했다.
피테르브뢰헬(PieterBrueghel,1525~1569년)
브뢰헬은만화영화"플란다스의개"로유명한네덜란드의플랑드르지방에서태어났지만
1551년안트베르펜의화가조합에등록한기록이있고1556년에브뤼셀로이주했다.
대표작/바벨탑,시골의결혼잔치,네덜란드속담,곡물수확,눈속의사냥꾼
바벨탑
TowerofBabel/114x155cm/1563년/빈미술사박물관
도시에거대한탑이한창건축중이다.
이곳은브뢰헬이살던플랑드르의안트베르펜으로당시세계무역과경제의중심이다.
바닷가에거대한돌이쌓여있고탑의중간쯤에큰돌을끌어올리는기중기가있다.
왼쪽아래건축을감독하고있는왕은노아의증손자인니므롯왕이다.
탑에는자는사람도있고건축중인탑안에는사람들이살고있는일상사를그림으로나타내고있는브뢰헬.
브뢰헬은사람의일상사와유머를자주구사했다고한다.
이그림은구름을뚫고올라가는탑에서인간의욕망과허영,허망함과
왕을등장시키므로권력자의욕망과교만을꼬집고있단다.
시골의결혼잔치
ThePeasantWedding/114x164cm/1566~1569년/빈미술사박물관
농가의따뜻한일상을그린민속화로추수가끝난후
농가의헛간에서열린결혼식피로연의모습이다.
화면중앙의벽에걸린녹색휘장밑에서머리에화관을쓴신부가
손을다소곳이잡고앉아있는모습과
하얀치마를두른남자들이음식을나르고백파이프를연주하고있는악사의모습이다.
그림은독특한대각선구도인데색채가강력하고
사람들의표정이자연스러워보는재미를더해준다.
그림의특징이라면대담하고단순한화면에
빨강,노랑,초록등강렬한색으로그려져있다는것이다.
곡물의수학
TheCornHarvest(8월)/119x162cm/1565년/메트로폴리탄미술관
북유럽인들은16세기에이미서민들의일상의소박한삶을그림에담아냈다고한다.
이것은종교개혁의영향으로중세적질서와사고가그만큼
빨리무너져갔던것도중요한요인중하나이다.
눈속의사냥꾼
HuntersintheSnow(겨울)117x162cm/1565년/빈미술사박물관
눈속의사냥꾼은안트베르펜의부유한은행가인니콜라스용헬링크가주문한월력도중한편이다
월력도란12개의연작을그리는것이보통인데플랑드르지방에서는6개를그리는경우가많아
브뢰헬의월력도는6개로추정하고있단다.남아있는것은5개.
곡물수확은월력도중여름(8월)편이다.
브뢰헬은네덜란드의풍경화전통을정립한화가로꼽힌다.
눈속의사냥꾼은브뢰헬이스케치해두었던그림들로
여러장면이혼합되어있는마을의풍경을그려낸것이란다.
http://terms.naver.com/artsSearch.nhn?query=%ED%94%BC%ED%85%8C%EB%A5%B4%2B%EB%B8%8C%EB%A2%B0%ED%97%AC
피테르브뢰헬의작품
후기르네상스(Mannerism,16c중엽부터말)
후기르네상스인16세기중엽부터는
종교개혁과전쟁,농민반란등불안감이감돌던시대를배경으로
새로운마니에리스모양식이나타난다.
새로운것을추구하는화가들에의해탄생된새로운양식인마니에리스모는
이탈리아어로마니에라(maniera)는영어로매너(Manner))다
"기교나방법"이란뜻으로해석한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51&contents_id=4545
매너리즘의미술
전성기르네상스이후이때까지의미술이
조화와균형,사물을사실적으로그리는데초점을맞췄다면
그것은그전의거장들의기법을모방했다고간주되어창조성을의심하며
매너리즘에빠진작가들이생겨났다.
이들은구도도엉망이고인체의비율도맞지않는등
볼록거울에비친왜곡된형태를그리거나
그림속에상징적이미지를감추어놓기도하고
배경등을교묘히왜곡해서그림을그렸다.
한편르네상스양식이미의개념을이성적접근이라면
새로운양식은감정적시도로여기는긍정적인측면이있어
후기르네상스는매너리즘으로불렸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