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서양미술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Posted on 2015년 4월 6일2016년 3월 24일 by 松軒 [MuséeduLouvre,博物館] 대영박물관,바티칸박물관과함께세계3대박물관으로불른다. 넓이약6만600㎡규모이고원래프랑스왕가의궁전이었던 루브르궁전을미술관으로사용하고있다. 16세기초예술에조예가깊었던프랑수아1세가 레오나르도다빈치의<모나리자>를비롯한 이탈리아거장들의작품과고대조각작품들을수집하여 궁전에전시하면서부터그역사가시작되었다. 프랑스혁명후인1793년혁명정부가국립중앙미술관으로공개한후 회화와조각이외에도건축물,장신구,도자기등과고대이집트유물, 동방의고대예술품등약40만점을소장하고있으며 이중약3만5000점을전시하고있다.[지식백과] 신고전주의(新古典主義) NEOCLASSIC(A.D18C말) 18세기중반에이루어진폼페이와헤리클라네움,파에스툼등의고대건축의발굴과 그리스문화의재발견등이계기가되었으며바로크와로코코양식에반발로 프랑스혁명전후고대에대한동경으로 사회의혁명적변화나시민사회의삶속에"고대로마적"덕성을세워보고자하는 그리스,로마시대의합리적인화풍으로돌아가고자하는욕구가있어 18세기말부터19세기초에걸쳐프랑스를중심으로 유럽전역에나타난예술양식을신고전주의라한다. 고대조각의조화와질서를존중하고장대한구도속에서 세련된선으로고대조각과같은형태미를회화에끌어들여 이상적인아름다움을각자의특징에따라 명암,화면구성으로의공간감,광선을이용한화법으로표현한다. 대표적인화가에는프랑스혁명이후나폴레옹의총애를받았던 자크루이다비드Jacques–LouisDavid(1748~1825)가있으며, 그의작품<호라티우스가의맹세><소크라테스의죽음><브루투스와그의죽은아들>등은 신고전주의정신을잘드러내보이고있단다. 다비드의성과는앵그르(Jean–AugusteDominiqueIngres)(1780~1867)에게 계승되어프랑스회화의한흐름을형성하게된다. 신고전시대의그림을이해하기위해선 프랑스역사의공부가먼저인듯…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4616&cid=42635&categoryId=42635/ 파에스툼 ♠자크루이다비드[JacquesLouisDavid] 프랑스의화가.19세기초프랑스화단에군림하였던고전주의미술의대표자다. 나폴레옹에게중용되어,예술적·정치적으로미술계최대의권력자로 화단에많은영향을끼친다비드는 빈의로얄아카데미에서미술교육을받고1775년27세에로마로가서 5년간고전작품들을모사하며연구했단다. 프랑스혁명(1789~1794년)이터지자혁명당원이되기도하고 나폴레옹이황제로즉위하자궁정화가로전향한 권력지향적인삶을살았던다비드는 나폴레옹의워터루전쟁패배후는국외로추방되어 죽을때까지고국땅을밟지못했다고한다. 다비드를뒤따르던신고전주의화가들은 나폴레옹의초상화나그의영웅적모습을 찬양하는전쟁기록화를그리는데총동원되어 나폴레옹에대한왜곡된모습의나폴레옹을표현한다. 앙투완장그로는작품<1807년아일라우전장의나폴레옹>과 <흑사병이휩쓸고간야파를방문한나폴레옹>이 왜곡된모습의나폴레옹이란다. 다비드의그림은그당시의시대를모르면이해되기어렵다. 성베르나르협곡에서알프스를넘는나폴레옹. NapoleanattheSt.Bernardpass/264x231cm/ 1800년/빈미술사박물관 말탄나폴레옹그림은어디에서든쉽게볼수있어 눈에많이익은그림이신고전주의다비드의작품이었다. 실지론단신에못생긴것에대해서평생열등의식이많았던나폴레옹을 옛고전적인방법으로영웅의모습을표현한다비드. 알프스산맥을넘고있는나폴레옹의모습과말은실제에있어선 가능치않은과장된그림을그린이유는? 실지알프스산맥을저힘차게생긴명마는감히오르내리지를못한단다. 나귀같이짐을실어나르는정도의작고 다리가굵은조랑말들이나오르내릴수있는곳이란다. 나폴레옹의다리는숏다리였다는것을 나폴레옹을영웅화시켜전쟁을승리로이끌려는 계략이들어간그림이란소문이…ㅋ 다비드의그림은고전적인엄숙함과엄정함을내세워 현실이아니라바로이상과이데아를강조하려는의지가담겨있단다. 줴드폼의선서 LesermentdujeudePaume,le20juin/1789/65×88.7cm/ 이작품은6월20일의쥐드폼정경을거대한캔버스에그리기위한스케치다. 그러나다비드는이작품을결국끝마치지못했다. ‘쥐드폼의선서’는 1789년루이16세가소집해베르사유궁전에서열린삼부회에서발단이되었다. 삼부회를통해귀족300명,성직자300명,평민600명의대의원으로선출되었는데, 표결방식을둘러싸고귀족,성직자대표와평민대표간에갈등이생기고말았다. 귀족,성직자대표는신분별표결방식을, 평민대표는머리수표결방식을지지하였기때문이다. 평민대표들은머리수표결방식이채택되지않자 1789년6월20일회의장을테니스코트(쥐드폼)건물로옮기고, 요구가승인되어헌법이제정될때까지는 이의회를해산하지않는다고선언하고국민의회를조직하였다. 바로이사건이‘쥐드폼의선서’다.(펌) 황제복장의나폴레옹1세 PortraitdeNapoleonLerenCostumeImperial/57×49.5cm/1805년/ 마라의죽음 TheDeathofMarat/165x128cm/1793년/ 그림중의마라는급진파인자코뱅파의리더중한사람이란다. 마라는피부병때문에목욕을자주했는데욕조에물을받아놓고일을하던중 온건파인지롱드파에서보낸24세샤로테코르데가청원서를들고와서 마라에게사인을하게한후칼로찔러죽였단다. 마라의손에들려있는청원서로 다비드는이그림을통해마라를영웅적인순교로연출했다는것이다. 이상주의자인다비드는마라를예수처럼순교자로묘사했다는것 탁자의앞면에는AMARAT,그밑에는DAVID자신의이름을써넣었다, 조제프바라의죽음 TheDeathofJosephBara/119x156cm/1794년/칼베미술관(프랑스아비뇽) 다비드는바라를순수한영혼과어린육체가마지막죽는순간까지 프랑스공화국의삼색기장을가슴에끌어안고죽었다고미화한다. 바라의손에는프링스의삼색기장이들려있다. 사비니여인의중재 TheInterventionoftheSabineWomen/386x522cm/1799년/루브르박물관 사비니여인의중재의이야기는 기원전약753년로마건국신화에등장했던이야기. 왼쪽은사비니군이고오른쪽은로마군.비극적인전쟁을막기위해 그사이에뛰어든여인은헤르실리아이다. 전남편과현남편이양쪽에있고여인의앞에는 이들사이에서낳은아이들이사비니여인앞에앉아있다. 프랑스혁명이일어난후집권한공화파는급진파와온건파로나뉘어싸울때 사비니여인을중재로싸움을말려보려했던이그림은 "평화와화해"를나타내고싶었다고. 나폴레옹1세의대관식 610x931cm/1807년 대관식은1804년12월2일에있었는데다비드는그해작품의제작을의뢰받아 다음해12월이되어서야그리기시작했다. 그림은나폴레옹이스스로대관한후에황후가될조제핀에게관을씌워주는광경으로 교황피우스7세가대관을축복하고있는모습이다. 이러한화면구성은나폴레옹의권력이스스로의힘에의한것이지 타인으로부터수여받은것이아니라는것을암시하는것이란다. 나폴레옹과관계된모든인물이등장하며제각기개성적인모습을하고있는데, 역사적사실을충실하게재현하면서도그내용을독자적으로강조하고 각인물의성격과심리적반응을드러냈다는점에서주목할만하다.(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artsSearch.nhn?query=%EC%9E%90%ED%81%AC+%EB%8B%A4%EB%B9%84%EB%93%9C+ 자크다비드의미술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