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쿠르베씨
TheMeetingor"Bonjour,MonsieurCourbet"
수수한등산복차림의남자는바로쿠르베자신이란다.
등산중중요한후원자를만났으나
쿠르베의모습은당당하고좀거만해보이기까지한다.
표정에서쿠르베의성품을볼수있는듯하다.
화가의작업실
부제"7년간예술적,도덕적삶을요약하는진정한알레고리"가붙어있는
1855년제1회파리만국박람회에서전시를거부당했던"화가의작업실"이라는작품이다.
아틀리에에서이젤앞에앉아있는쿠르베와벌거벗은모델과소년,고양이,
그림의왼쪽에는상인,신부,창녀,무덤을파는사람등당시의부르주아와
일반서민들과폭군으로변장한나폴레옹3세가있고
오른쪽은친구들인철학자,작가,시민등이있다.
책을읽고있는사람이보들레르란다.
쿠르베는온갖사회계층의사람들을그려넣어
현실사회의부조리함을우회적으로표현한그림이란다.
그림속의이젤이의미하는것은쿠르베가원하는사회를그린것일지???
오르낭의매장
ABurialatOrnans/315x668cm/1849~1850년/오르세미술관(파리)
"오르낭의매장"은매우큰그림으로일반적인동네아저씨의장례를치르고있는중이다.
실지쿠르베는고향인오르낭에서가족과주변사람들을모델로이작품을그렸단다.
이그림은제1회파리만국박람회에서전시를거부당하며비난을받은그림으로
비난을받은이유는평범한사람들의등장이란다.
이그림의등장인물이소시민들의소박한모습과
그림속의성직자나시장,재판관등도조명이나색으로강조하지않고
일반시민과동등하게그렸다는것을
당시왕이나지배층들이황당하게여겨비판하고전시까지거부한것이란다.
실지로쿠르베의연설중"리얼리즘의기초는이상理想을거부하는것이며
이상을거부하는것은개인을해방하는것이고결국민주주의를성취하는것이며
리얼리즘은본질적으로민주주의적미술"이라고말했단다.
쿠르베가사실주의의성격을분명히밝힌것이다.
체질하는사람들
쿠르베는프랑스도미국과스위스처럼
중앙권력이독립된주로바뀌어야된다고주장하는지역주의자였단다.
자기가사는시대의모습을그리겠다면서도
도시보다는농부나노동자의일하는모습을많이그렸단다.
체질하는여자와체로곡식을고르는여자,탈곡기를보고있는소년의그림속에서
곡식을골라내는일의세단계를보여주고있지만
농촌의목가적인낭만의기분이아니라사실적인농부의노동자역할로그려낸것이다.
돌깨는사람들
TheStoneBreakers/166x257cm/1849년/세계2차대전중소실
그림이소실되어사진만으로한장이남아있을뿐이란다.
돌깨는사람들의주인공은토지가전혀없는최하층의석공이다.
쿠르베는고향인오르낭에서돌깨는일을하는두사람을보고
자기화실로초대해서이그림을그렸다고한다.
누더기를걸친나이든사람이한쪽무릎을꿇고망치로돌을깨고있다.
팔과어깨의동작을보면늙어힘없어보이고뒤에서거드는소년의상의는헤어져있다.
이것은일하는사람들이자기의노동대가에서소외받는
부조리한현실을그림에담아냈다는것이다.
사실주의에서는대상을소시민노동자계급이모델로등장한다는것으로
전반적인사회의어두운면이부각되는시대인듯하다.
http://terms.naver.com/artsSearch.nhn?query=%EC%BF%A0%EB%A5%B4%EB%B2%A0
쿠르베의미술작품
도미에(HonoreDaumier,1808~1879년)
오노레도미에는프랑스의마르세이유에서가난한유리직공의아들로태어나
8세에시인의꿈을꾸는아버지를따라파리로옮겨왔다.
그러나가난한도미에는어려서부터돈을벌어야했으므로
거의독학으로그림을익혀서
정치인의풍자화를그렸지만1835년검열로인해
정치풍자를그리지못하여파리시민들의생활과풍속을그렸단다.
프랑스혁명과쿠데타,내란과전쟁이끊이지않은사회에서살았던
도미에는반정부성향의신문에4천여점의삽화를실은
풍자화가이자만화가로유명했단다.
그의만화를보면당시의프랑스시대상을알수있어
뚱보거인으로프랑스왕을그렸고속물근성인부르주아를꼬집고
권력에의한폭력을주제로그림을그렸다.
도미에는19세기프랑스시대에살았던사람들의생활을
단순하고생생하게그렸다해서"근대생활의화가"라불려졌다.
가르강튀아
오른쪽가난한민중의돈을걷어먹어치우고입에서는대가로훈장과서류를
뱉어내고있는중세말기봉건주의와교회를풍자한그림은
도미에당시의국왕루이필리프를가르강튀아로묘사한것이란다.
도미에는이그림으로교도소와정신병원에서형을살았단다.
트랑스노냉거리,1834년4월15일
파리노동자와공화파들의시위가일어나자
정부군이바리케이트가있던트랑스노냉거리를소탕하는과정에서
죽인일가족을담은그림이란다.
과장없는사실적인생생한느낌은사진을보는듯하다.
돈키호테와산초판자
돈키호테가말을타고풍차를공격하러달려가는모습은
간략하면서도속도감있게그려냈다.
당나귀위의산초는두손을부여잡고몸을뒤로젖힌체
고통스러워하는모습이희화적戲化的이다
그림속의이야기를따라가는재미…이것이그림을보는즐거움인가보다
삼등열차
AThridClassCarriage/65x90cm/1862~1864년/메트로폴리탄(뉴욕)
아직도난메트로폴리탄에처음갔을때의충격은지금도잊지못한다.
이런그림들앞에섰을때의그느낌은그림이나를덮치는듯한그느낌.
그래서그다음날은아침일찍제일먼저입장하려고
리버사이드에서새벽기차를타고메트로폴리탄가까운역에서내려걸으며
주변의건물이고풍스러웠던모습도기억속에맴맴돈다.
삼등열차안은어둡고사람들표정도또한고단한삶에지친듯그렸다.
귀족은일등,부르주아는이등,삼등은프랑스의민중이타던곳이다.
사회의부조리를도미에는삼등열차를통해날카롭게풍자한작품이다.
어린아이의일그러진얼굴을줄로그거놓은것또한색다른표현인듯…
http://terms.naver.com/artsSearch.nhn?query=%EB%8F%84%EB%AF%B8%EC%97%90+
도미에미술작품
밀레(JeanFrancoisMiller,1814~1875년)
쟝프랑수아밀레…얼마나낯익은화가인가…
만종,이삭줍는사람의그림을통해가장많이본명화중의명화의주인공밀레는
리얼리즘,사실주의의대표화가로농민생활을본격적으로그린최초의화가이기도하단다.
그가사실주의라는것은
"나는내가본것을솔직하고능숙하게표현하려고할뿐이다"에서알수있다.
반고흐가수없이모사했다하여더욱유명한밀레.
밀레는프랑스서북부노르망디지방의작은농촌마을인그뤼시에서태어났으며
1837년파리로가서국립미술학교(에콜데보자르)에서들라로슈의제자가되었다.
당시만해도평범한화가가돈을벌수있는방법은초상화였다.
밀레는1840년살롱전에입선한후초상화가로활동했지만
9명이나되는아이들을가진아버지로서는생활비가감당이안되어
1849년파리근처퐁텐블로숲가의작은마을인바리비종으로이사했다.
이곳에서자연을있는그대로사실적으로화폭에담아작품활동을했다.
그뒤1867년파리만국박람회에서열린회고전뒤로명성과부를누리게된다.
낮잠
SleepingPeasants(NoondayRest)/29.2×41.9cm/1866년/보스턴미술관
이그림은밀레의"하루중네순간"이라는연작중한편인낮잠이다.
연작그림을찾으려했으나실패!!!…ㅋ
반고흐가이그림을수없이모사했다해서유명한그림으로
추수가한창인들판에서잠시오수를즐기는부부을그린작품이다.
씨뿌리는사람
TheSower/101.6×82.6cm/1850년/보스턴미술관
밀레가바르비종으로이주한다음해인1850년에그린작품으로
농부가경사진언덕을씨를뿌리며가파르게내려오며손의씨앗이날리는것에서
농부의힘과속도가느껴지게그렸다는것이다.
이그림은살롱전에출품했을때많은사람들로혹평을받은그림이라고한다.
이유인즉당시는끊임없이혁명이일어났었고유럽은사회주의운동이활발하던시대여서
사회주의자로오해를했기에밀레는그런사람들에게
"설사나를사회주의자라고생각해도미술에서는인간에대한측면이야말로
나를가장자극한다"라고답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