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미술관
필라델피아미술관(PhiladelphiaMuseumofArt)은
펜실베이니아주필라델피아에위치한미술관이다.
미국에서가장큰미술관중하나이다.
표현주의(表現主義,Expressionismus)
표현주의는1차세계대전을전후로
주로독일에서전개되었던새로운표현양식을말하며
고흐의강렬한색과붓질에근원을두는색채를중시는미술사조로서
회화의선,형태,색체를통해세상에대한화가의개인,정서적인
반응을표현한것이다.
북유럽의신비스럽고환상적인경향과사색적이며내용을중시하는표현은
19세기말고흐와고갱,뭉크에서시작해서벨기에의제임스엔소르,
독일의케테콜비츠,오스트리아의오스카코코슈카로이어지다가
독일의"다리파"와"청기사파"라는두그룹에의해표현주의가정점에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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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EXPRESSIONISMA.D1911-1920)
(표현주의가정점에이르게한그룹이다리파와청기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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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파
1905년독일에서오랜예술전통을지니고있는도시드레스덴에서
에른스트루트비히키르히너(EmstLudwigKirchner,1880~1938년)를주축으로
헤겔,슈마트로둘루프,등이당시의그들의혁명적인정신과
회화를연결하는"다리"가되고자결성한그룹이다리파(DieBruck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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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기사파
독일의표현주의의두번째청기사파는1911년뮌헨에서결성된다.
다리파가젊은아마추어화가들에의해추진되었다면
청기사는뛰어난재능을가진칸딘스키,마르크등
혁신적인화가들에의해출발했다는데의의가있다
에드바르뭉크(EdvardMunch,1863~1944년)
뭉크는1863년노르웨이남부의작은마을인뢰덴에서태어났으며
5세에어머니가폐결핵으로죽고14세에는믿고의지했던누나마저세상을떠났으며
17세에는동생도죽었고뭉크마저도결핵과만성천식을앓으며
정신병에시달려뭉크는항상죽음과가까이있을것이라는생각으로살은듯…
이러한정신적인불안과공포,애정결핍을무섭게느꼈던뭉크는
자신의강박관념을격렬한색채와왜곡된선으로표현한화가로서
표현주의의가장직접적인선구자중한명으로독일미술에많은영향을끼쳤다.
절규
TheScream/91×73.5cm/1893년/오슬로국립미술관
뭉크는실제로공황발작을앓았던19세에교외를산책하다가
저녁놀에하늘이온통붉게물든것을보고문득자연을뚫고나오는
절규를느낀것에서자신의내면을표현한것이란다.
대각선에직전이와닿는선과태양을구불대는불안을느끼게하는선과
사람의얼굴형태를온전하지않고
뒤의두사람도여자인지남자인지도알수없게그렸다.
쉽게이해하자면두려움과무서움에대한절규겠지.
이절규에대한그림은판각과그외다른방법으로도많이시도한그림이라는데
실지예당에가서본그림중가장실망한그림이이것이었던기억이난다.
작게스케치한듯한그림이여러장이있었지아마…???
마돈나
Madonna/60.5×44.4cm/1896~1902년/뭉크미술관
몽환적인표정인마돈나와그림틀에는정자같은것이
구불구불헤엄쳐가는듯그려져있고
한쪽귀퉁이에는마치해골같은아이가웅크리고앉아있다.
마치뭉크자신이가족의틀에안주하지못한듯보인다.
마돈나의몸은흔들리고그녀를둘러싼배경도곡선으로흔들린다.
불안에휩싸인듯한내면의식을그림으로표현한듯
사춘기
Puberty/59.5×43.1cm/1895년/노르웨이미술관
사춘기의소녀가침대에벗은체불안한눈빛으로앉아있고
비스듬한그림자는흔들린다.
이그림은현대인의흔들리는실존과고독불안을표현했다는데???.
불안
94x73cm/1894년/뭉크미술관
자연에서평온함을느껴야하는데뭉크는
오히려자연에서불안감을더느낀듯
빛받은노을이하늘을가로지르며마구출렁거리고있다.
현대인의절망과고독이라는데오히려절망을요구하는듯…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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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동의어가미확정이듯확정되지않은어떤일이어떻게일어날지모르는
미래에대한불안을강결하게느끼게한것이란다.
뭉크의키스
병실에서의죽음
DeathintheSickroon/134.5x160cm/1893년/뭉크미술관
가족의차례대로의죽음은늘두려움이었다.
뭉크자신도결핵과만성천식을앓았기에죽음은늘곁에가까운것이었다.
그림속의사람들은움직임이없고표정도없다.
뭉크는2.3개의단순한색,죽음과삶의공간대비,바닥,벽,
사람의단순한요소,표현의절제를통해죽음을잘표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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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미술작품
벨기에의제임스엔소르(JamesSydenyEnsor)
벨기에의화가.근대회화의귀재로서뭉크,호도라와함께
표현주의선구자의한사람으로꼽힌다.
아카데미즘을반대하여인상파적그룹인‘XX’를부흥시킨기수가되었다.
1883년경부터는선배인보슈,브뤼헐을연상케하는환상·괴기·풍자의
방향으로바뀌면서
가면·해골·망령등을주요테마로삼았다.
대표작으로는《그리스도의브뤼셀입성(入城)》이꼽히며,
이밖에비구상에가까운《성앙투안의고난》이라든가해안풍경을다룬
와토풍(風)의작품에서도눈부신색채기법을보였다.(검색)
그리스도의브뤼셀입성(入城)
Christ’sTriumphantEntryintoBrusselsin1889/252×431㎝/
1888년/폴게티미술관(로스앤잴레스)
이그림은앙소르가그린가장큰그림으로,
행렬(절반은카니발,나머지절반은데모행진)속의예수를보여준다.
하지만이곳은예루살렘이아니라앙소르의조국벨기에수도브뤼셀이다
가면들과사람들의얼굴은흉측하게왜곡되었지만
후광이있는그리스도는화가의모습과닮았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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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브뤼셀입성(入城)
독일의케테콜비츠KätheKollwitz
독일의여류판화가.케니스베르크에서출생,
드레스덴근교모리스부르크에서사망.
독일의프롤레타리아회화의선구자.
자유주의전통의가정분위기속에서자유와정의를갈망했고
민중의고달픈삶을그림에담아그들과연대하는길을걸었다.
베를린과뮌헨에서그림공부를했다.
1891년이후의사인남편과노동자지구에서살면서
경험한비참한생활과무서운전쟁체험을,
표현주의적인수법으로심정적공감을가지고그렸다.
"직공들의반란(1894~1898년),농민전쟁(1903~1908)"등의판화연작이있다.
케테콜비츠의자화상
직공들의반란(1894~1898년)
콜비치는게르하르트하우프트만의<직조공들TheWeavers1892>이라는
연극을보고당시독일의비참한노동현실을인식하게된후
가난한노동자들의참상을"직공들의반란(1895∼1898)이라는
시리즈로판각제작한것이란다.
흑백의대비가뚜렷한콜비츠의작품세계는
1980년대우리나라민중미술에도큰영향을끼쳤다.
카를리프크네히트에대한추모(InMemoriamKarlLiebknecht)
1919/20/목판/35.0×50.0cm/일본오키나와사키마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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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오스카코코슈카
(OskarKokoschka,1886~1980)
코코슈카는오스트리아의도나우의푀흐라룬에서출생한
표현주의화가이자저술가였다.
스위스의몽트뢰에서사망.
빈의공예학교에서배우고,1910년베를린으로옮겨〈슈트룸(폭풍)의동인으로활약.
1906년경부터표현주의적경향이현저했으며심리묘사에매우적합한초상화를그린다.
1915년제1차세계대전에참전해부상으로귀환한후드레스텐미술학교교수가되었고
유럽각지를여행하며제2차세계대전때는런던으로피신해대독일항쟁에참여했다.
판화와도시풍경화우의(寓意)적인인물화,도시,하천등을
주로높은곳에서내려다보는부감俯瞰으로풍경화를제작했단다.
해조(諧調)가그의작품의특색.사상적내용의석판화연작(連作)이있다.
해조(諧調):잘조화되고즐거운가락
대표작은『바람의새색시』(1914,바젤미술관),
『자화상』(1917,바파탈폰델하이트미술관)등.극작도있다.
폭풍우(바람의신부,BrideoftheWind)
1914년/바젤미술관
빈출신의표현주의화가오스카코코슈카의대표작으로
화가자신과그의연인알마의격정적인사랑을거친붓터치와
차고어두운색채에실어화폭에담은그림.
그림을검색하다보면그림마다많은스토리가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