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현대미술/빈 분리파

빈미술사박물관(ViennaMuseumofArtHistory)


독일의건축가G.젬퍼의설계로1891년개관한오스트리아최대의미술사박물관이다.

모양의지붕이있는아담하면서도거대한석조건물로빈자연사박물관과마주보고있다.

16세기이후합스부르크왕가와17세기중엽레오폴트빌헬름이수집한

방대한소장품을모체로

세계미술사전반에걸친진귀한작품들이있다.

이집트의조각,그리스의공예품,르네상스와바로크회화작품외에도

옛왕궁의보물,무기,화폐등도소장되어있다.

P.루벤스의대표작《모피를걸친엘레나》,A.뒤러의《모든성인의축일》,

D.R.벨라스케스의《왕녀마르가리타》,J.페르메이르의《화가와모델》등을비롯하여

괴기한초상화가G.아르킴볼도ㆍ틴토레토·라파엘·할스·푸생·카라바조·렘브란트·반다이크등

중세거장들의작품이소장되어있다.

그밖에P.브뤼헐의대표작15점을모은전시실도있다.(두산백과)

세기말이래사회구조의격변으로말미암은미술계는주관적이고

표현주의적인정신이현대미술발전의원동력이된다.


20세기초폭발적으로터져나온수많은유파들

야수주의,입체주의,표현주의,미래주의,다다이즘,초현실주의,추상주의등은

서로를자극하거나섞이면서새로운조형실험의시도로나타났다.


빈분리파​


19세기말구스타프클림트를비롯한혁신적인예술가들은

빈미술가협회의회원이었으나

보수적이고권위적인중견과원로들의작품에반기를들고

빈미술가협회로부터독립을꿈꾸며자신감과도전정신이넘쳤던클림트는

"빈분리파"를결성한다.


권위적이고보수적인빈미술가협회에서떨어져나온빈분리파의핵심은

순수미술과응용미술을통합해총체적인예술을지향했으며

1898년제1회빈분리파전시회에서는로댕,휘슬러,크노프,클링거등

아르누보계열의미술가들이소개되어큰성공을거둔다.

아르누보란

"신미술"이라는의미로
장식성이강조된미술양식을뜻하는것으로

19세기후반윌리엄모리스(WilliamMoris)에의해창안됐다.

구스타프클림트(GustavKlimt,1862~1918년)

1862년오스트리아빈근교의바움가르덴에서

귀금속세공사이자조각가의아들로태어났다.


오스트리아전체가클림트박물관이라고할정도로크고작은기념품을비롯해

기념하는것들이가장많은화가라고할정도로오스트리아에서인기가높지만

한국과일본에서도특히그를좋아하는사람들이많을정도로

20세기최고의인기를누리고있는클림트이다.


클림트의그림은평면적이고금박을많이썼으며패턴을많이활용한것이특징이며

일본판화우키요에에서도영향을많이받아화려한색채와관능미가돋보였다.

사생활이매우난잡하다하여별명이"빈의카사노바"였고많은여자들과의관계로

결혼은하지않았지만죽은후친자확인소송이14건이나벌어졌으나

그중4명이친자로확인이될정도였다.

호사가들은클림트의성적방종이야말로

그의예술적경지를끌어올린원동력이되었을꺼라는추측들도했다고전해진다.

클림트는당대에인정받는화가로서큰명성과부를누렸지만

가족력家族歷의병으로인해늘죽음의두려움을느끼면살았다고한다.

에밀리플뢰게

EmilieFloege/181x84cm/1902년/빈미술사박물관

카사노바라는별명이있을정도의바람둥이클림트가

유일하게사랑했다는여자는동생의처제이자의상디자이너였던에밀리플뢰게로

클림트와의사랑은플라토닉한관계였다고전해진다.

키스(TheKiss)

180x180cm/1907~1908년/빈벨베데레궁

클림트의그림중가장유명한그림"키스"의핵심은관능미란다.

관능미?

1차세계대전이일어나기전오스트리아의전성기에활발하게활동했는데

이시기를"벨에포크시대(BelleEpoque)즉좋은시대라고한다.

금광이개발되어부르주아의호사취미에맞춘

화려하고관능적인미술이발달한때였단다.

이공간이어디인지언제인지를알수있는단서가없기에추측들뿐…


꽃이뿌려진낭떠러지끝자락에발끝을대고있는여인에게서보는표정을

황홀해한다고봐야하는지….눈을감고낭떠러지끝에서의체념으로봐야하는지

보는사람의느낌에따라생각도다양할듯하다.


황금빛이흐르는전체적인분위기에남자의옷에는사각형문양이,

여자의옷에는동그라미문양이알록달록새겨져있는빛의노란색은

"금"이라는절대적부와물질가치의상징성을극대화하고있는것이라고한다.


황금빛의화려함을보는순간클림트의아버지가세공사였다지???

발표현이우키요에의영향을받았단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74760&mobile&cid=46720&categoryId=46838

키스에대하여

빈벨베데레궁

다나에

Danae/77x83cm/1907~1908년/레오폴드미술관(오스트리아빈)

자신의성적환상을표현하기위해신화의주제를즐겨사용했다는클림트.

그리스신화에서다나에는청순가련한비련의여인인데

클림트는그녀를치명적매력을풍기는팜므파탈(femmefatale,妖婦)로

해석해관능의쾌락에빠진여인으로그렸다.


청동탑에갇혀있던신화속의다나에를

사각의틀안에가둬놓은클림트….ㅋ

온세계에보내는입맞춤(베토벤프리즈의부분)

Here’sKisstheWholeWorld/벽화/1902년/벨베데레궁(오스트리아빈)

1902년제14회빈분리파전시회가조각.회화,음악이어우러진

총체예술을열었을때주제가베토벤이었단다.


클림트는이전시회에서"합창교향곡"을회화적으로재현한

베토벤시리즈를출품했었단다.


베토벤프리즈는온갖악으로고통받는인간이행복을열망하다가

결국진정으로사랑하는연인과함께구원을받든다는연작이다.


"온세계에보내는입맞춤"은합창단이두손을든채줄지어서있고

종모양의황금빛공간안에서남녀가키스를하고있다.

음악을회화적으로재현한걸작이라고한다.

생명의나무

102×138.8cm/1905~1909년/판지/오스트리아응용미술관

"생명의나무"는클림트가벨기에의실업가아돌프스토클레의

저택식당에장식한모자이크한작품이다.

저택의주인이거부巨富여서이벽화의재료는유리뿐만아니라

준보석,자개,산호등을맘껏사용했단다.


이벽화는세부분으로이루어졌다."생명의나무"와"기대","성취"로

가운데는"생명의나무"로가지들이뻗어나와소용돌이모양으로말려있고

그가지에는다양한모양의열매들이달려있다.


왼쪽은"기대"로금빛액세서리로한껏장식한여인으로

이집트벽화처럼얼굴을측면을향하지만몸은정면을보고있다.


오른쪽은"성취"인데사각형과원형무늬의옷을입은연인이

동양풍의의상을입고서로안고있으면화려한장식에서는

클림트의비잔틴의취향을느낄수있게작품으로만들었다고한다.


클림트의후원자이기도한아돌프스포클레의저택식당양쪽긴벽면에장식된

구상적표현이전혀없는추상적인형태로이루어진것으로

클림트회화에서볼수없는특이한작품으로분류되고있는

최고의걸작으로평가된작품이란다.

http://terms.naver.com/artsSearch.nhn?query=%EA%B5%AC%EC%8A%A4%ED%83%80%ED%94%84%20%ED%81%B4%EB%A6%BC%ED%8A%B8

구스타프클림트의미술작품

아마데오모딜리아니(AmedeoModigliani,1884~1920년)

고독한영혼의소유자인모딜리아니는어디고안착하지못하는

보헤미안이었고조각과회화를동시에한예술가이다.

이탈리아의리보르노의중산층가정에서태어났고어릴때부터몸이허약해서

11세부터늑막염,장티푸스폐결핵을차례로앓았던모딜리아니는

이지적이고교양이높은어머니는아들모딜리아니의미술재능을발견하고

미켈란젤로미술학교에보냈다.

어머니와함께이탈리아의여러도시를여행다니며

피렌체와베니스에서도미술공부를하게된다.


1906년22세에파리에정착했을때세잔의전시회를보고깊은감명을받아

모딜리아니의초기회화에많은영향을끼쳤다고한다.


1908년앙데팡당전에"유대인여인"등회화6점을출품해

화가로서의이름을세상에알리게된다.

1909년부터5년간은조각을했지만결핵으로인해다시회화로돌아왔다.

베니스에서부터대마초흡연으로시작해서알코올중독자에마약중독자로

수많은여인과의염문등사생활이문란했던모딜리아니는

몽마르트최고의미남이기도했단다.

죽기직전의모딜리아니와피카소,앙드레말로.


자크립시츠와베르트립시츠

캔버스에유채/81x54cm/1916년/시카고미술관


리투아니아출신미술가자크립시츠는입체주의를조각작품으로

훌륭하게표현하여조각가로서세계적인인정을받았다.

원래공학을공부했던립시츠는1909년파리로이주하여미술을공부할때

이곳에서그는앙리마티스아메데오모딜리아니,후안그리스,파블로피카소등을

포함해많은아방가르드(avant-garde,전위파)미술가들을알게되었다.

모딜리아니와유독친분이있었던모양???부부혹은남매?…ㅋ

노란색스웨터를입은잔느에뷔테른

JeanneHebuterneinYellowSweater/100x65cm/

1918~1919년/구겐하임미술관(미국뉴욕)

간결하고절제된새로운미가담긴그림의여인은잔느에뷔테른.

1917년잔느에뷔테른을모델로만난이기간에

많은걸작들을그렸다.


그러나그림몇점팔면술과마약으로날려버린그는

건강이점점악화되어36세의나이로파리의자선병원에서죽는다.


당시임신8개월인딸은낳자14개월때고모에게입양되었고

나중에미술사를전공한딸은아버지모딜리아니의전기를썼다.

큰모자를쓴잔느에뷔테른

PortraitnofJeanneHebuterneinaLargeHat/

54×37.5cm/1918~1919년/개인소장

유독모딜리아니의그림은개인소장이많다.

그림몇점팔면술과마약으로방탕스런생활을했던모딜리아니는

짧은인생을가난에시달렸지만사후의그림가격이500배나치솟았다고한다.

갸름한타원형의얼굴선,곡선의어깨선,모자챙의둥근선과

긴코,긴목,긴손가락과팔이부드러운곡선으로흘러내린잔느의모습​.

커다란모자를쓴잔느가긴손가락을얼굴에댄채

고개를살짝기울인채우아한표정을짓고있다.

그러나이그림엔눈동자가없다.

카메라의등장은사실을그리는것에의미가없어진화가들은

밖으로의사실보다는내면의자신의감정을밖으로들어내놓는다.

모딜리아니의말에의하면

"내가추구는것은사실이나허구가아니다.그것은일종의무의식"이라고

모딜리아니는자신의내면세계를그림으로표현하고자했다면

표현주의선상에있는것이라고!!!


누워있는누드

SleepingNudewithArmsOpen(RedNude)146x89cm/

1917년/개인소장


"누워있는누드"는모딜리아니의

처음이자마지막이된전시회에서공개된그림들이다.


여러그림의누드들은따뜻한색감으로입체감이없지만그

림의윤곽선이매우명확하면서자연스럽다.

창녀촌에서의창녀들의그린그림으로

모딜리아니자신의치부를드러냈다고해논란이되기도했단다.




♤♠♡♥♧♣


아프리카조각에관심이많았던모딜리아니는

길쭉한두상과아몬드처럼생긴독특한눈,긴코와목..

꼭다문입이그의회화에등장하는인물들의특징이다.

http://terms.naver.com/artsSearch.nhn?query=%EC%95%84%EB%A9%94%EB%8D%B0%EC%98%A4+%EB%AA%A8%EB%94%9C%EB%A6%AC%EC%95%84%EB%8B%88&mobile

모딜리아니의미술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