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파를태동시켰다.
19세기말이런각각의입장이20세기에는새로운차원의"종합"으로나타난다.
서로긴밀한영향을주고받으며특히다양한회화이념들이
건축,공예,조각등모든각분야에미친영향은압도적이었단다.
이후에나타나는유파로야수주의,입체주의,표현주의,추상주의,초현실주의,
미래주의,다다이즘….등20세기초에폭발적으로터져나온다.
이런모든것을통틀어현대미술이라할수있다.
야수주의野獸主義,Fauvisme
"야수"는프랑스어로"포브"라고한다,야수란즉"야만인"이라는뜻이기도하다.
그럼야수파에선야만인즉수준???
1905년"살롱도톤(Salond’Automne)"에출품된새로운표현을보여주는
작품들을주최측이한곳에모아전시하던중
마티스,블라맹크,알베르마르케등의거친그림들과같이전시된
"알베르마르그"의세련되고우아한소녀조각상을가르켜
미술비평가루이보셀이"포스(야수)에둘러싸인
도나텔로(르네상스초기의이탈리아조각가)"라고평한데서
생겨났다고하는데유래는여러가지학설이있어정확하진않다고한다.(펌)
그러나1901년고흐전시와
파리국립미술학교의미술교육자"귀스타브모로의자유로운회화교육은
야수파운동의계기가되기도했다고한다.
야수주의는20세기미술에최초로등장한중요한화파,
즉포비즘(Fauisme)이다.
원색을대담하게사용하여붓질이격렬하며색채자체의강한표현과
단순화된형태와원색으로전통적인회화개념을부정했고,
화가본인의주관이화폭에깔려있어
개성있는표현을했다는것이야수주의의특징이었다.
야수주의에대한처음의주위의반응은
야수주의자들을미치광이로여겨조롱섞인비웃음으로
반응은거칠었으나
나중엔화가자신의자율성을강조하는색채와
공간구성,감정의표현등에호응을받긴했으나
1907년쯤이들의예술에재평가되는데서종말은서서히다가온다.
대표적인작가에는
마티스를중심으로블라맹크,루오…드랭,뒤피등이있다.
앙리마티스(HenryMatise,1869~1954년)
앙리마티스는1869년프랑스북부의카토에서
곡물상하는아버지와아마추어화가인어머니사이에서태어났다.
자랄땐그림에별관심이없었으나21세에맹장염으로몇개월병상에누웠을때
어머니가선물한물감과그림그리는방법에대한책을앍은계기로
23세에국립고등미술학교에들어가화가로의꿈을꾸게된다.
1896년국립미술협회가주최한살롱전에그림4점을출품하고
본격적인화가로의길을걸으면서
마티스는현실에없는원색으로그림을마음껏그렸다.
마티스의생각은"그림은그림일뿐이다"라고
원근과명암을표현하지않았고
사실공간에없는원색과단순한형태로그림을그려서
르네상스시대이후로내려온그림의형식과달리한것이
마티스의특징이라할수있단다.
부와명성을얻었던마티스지만70세에이르러이혼과
지병으로인해말년을거의침대에누워
캔버스위의작업이불가능해지자
가위로색종이를오려캔버스에붙이는작업을하면서
"가위는연필보다더감각적이다"라는말과함께
절망보다는낙천적인작품활동을한다.
모자를쓴여인
WomanwithaHat/79.4×59.7cm/1905년/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
1905년열린살롱도톤느전시회에서최고의화제작이었던
마티스의모자를쓴여인은마티스가아내를그린작품이란다.
이작품의특이함은기존의초상화와다르게
강렬한원색을거침없이사용했다는것이다.
선과형태를마구그린듯,
얼굴,모자드레스,배경까지마구칠한것으로느낀
평론가에의해"야수"라는별명을들었던작품이란다.
마티스부인의초상화
PortraitofMadameMatisse/40.5×32.5cm/1905년/
코펜하겐국립미술관(덴마크코펜하겐)
마티스가아내를그린모자를쓴여인을발표한지
몇개월후다시그린아내의초상화이다.
기존에초상화법에길들여진당시의사람들이
아름답게그리지않았다는물음에
마티스는"나는그림을통해아름다운아내를창조한것이아니라
단지그림을그렸을뿐이다."라고답했단다.
인상파의빛의묘사나명암의단계적재현을피하고색채자체의표현을강조하며
화가의본능과주관에바탕을둔야수파들의특징이잘나타내고있단다.
붉은방[TheRedRoom]
TheDessert:HarmonyinRed(TheRedRoom)/180.5x221cm/
1908년/에르미타주미술관(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
붉은색으로칠해진벽과식탁그리고파란색의커다란장식이
벽에서테일블보로화려하게이어져그렸지만
식탁과테이블보의구분이모호하다.
이그림의특징은형태가명확하지않은것과
실내전체가붉은색으로채워놓으므로공간이
마치평면처럼느껴지게한것과
일상생활에서경험할수없는상상의세계를표현했다는것으로
야수주의의특징이이그림한장에모두모여있다는것이란다.
붉은빛의커다란실내
3차원의실내공간을표현한그림이지만,화면에서거리감은보이지않고
벽도탁자도의자도모두동일의평면위에놓여있으며,
색채도음영이나명암이없이단순한평면으로되어있다.
이는19세기적인미술의관점에서본다면혼란으로보이겠지만,
평면적인이론에서말한다면훌륭하게통일된명쾌한화면이라할수있다(펌)
춤Ⅱ
미술수집가인러시아의세르게에슈추킨이1909년모스크바에있는
자신의저택의계단의옆벽을장식하기위해주문에의한작품이다.
5명의어우러져춤을추는모습을단순하게그려졌지만
율동감을느끼게하는그림으로
260x391cm의그림이라면대단히큰작품이다
추락하는이카루스
TheFallofIcalus/42x32cm/1943년
마티스는노년후는질병으로인해거의누워지내면서도
작품에대한열망을다른방법으로나타낸다.
캔버스에파래트를들고그림을그릴수없으니
이젠가위로색종이를오려캔버스에붙이는작업에열중한다.
이카루스는그리스신화에나오는신으로절대올라가지말라는
아버지의충고를무시했다가밀랍으로만든날개가
뜨거운햇볕에녹아바다에떨어져죽은신화이야기다.
이카루스의주변에는새의깃털이여기저기날리고있는
모습에서의영감을받은작품이란다.
말년의고통을극복하려는마티스내면의표출이었을까???.
일본여자,물가의여인
35.2×28.2cm/1905년/뉴욕현대미술관
마티스도한때는쟈포이즘에심취했었나보다.
http://terms.naver.com/list.nhn?cid=46720&categoryId=46872
앙리마티스의미술작품
블라맹크MauricedeVlaminck,1876~1958년)
프랑스파리출신의야수파화가로서음악가부모밑에서
자유방임적인가정환경에서자랐으며12세부터는독학으로그림을그렸다.
1901년고흐의회고전을보고감격한블라맹크는
강렬한원색과성격그대로의자유분방한필치로그림을그리기시작했고
마티스의권유로"살롱도톤(가을살롱)"에출품했다.
세잔이나입체파의영향을받았으나
자기나름의정열적인작업을한화가였단다.
붉은나무가있는풍경
61x82cm/캔버스의유채/1906년/조르주퐁피드센터
http://terms.naver.com/artsSearch.nhn?query=%EB%B8%94%EB%9D%BC%EB%A7%B9%ED%81%AC
블라맹크의미술작품
조르주루오[GeorgesRouault]
프랑스의파리출신의야수파화가,
가구세공사의아들로태어나어려서부터미술에재능을나타내
10세부터그림공부를시작했다.
가정형편이어려워야간공예미술학교에다니며
스테인드글라스견습공으로일한경험은오묘한색채발현에도움이됐단다.
1890년국립미술학교에입학해모로의가르침을받아
마티스,마르케등과사귀며재능을개발해나갔다.
초기작품에나타난절망과분노는곧경건한가톨릭신자로서의정숙함으로,
나중의작품들은성스러운환희로승화하였으며
주제는그리스도에의존했단다.
그러나1903년모로미술관의초대관장이된이후
스승의영향에서벗어나색채는보다격렬해지면서
창부,어릿광대같은사회밑바닥인생을주제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