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이섬 / 시끌시끌한 아름다운 작은 섬에서

가봐야하는곳또한남이섬이었다.늦었지만

많은사람들이간다하니까…자꾸밀어지고또한

늘놓쳤던장소이기에…언젠간한번쯤가야지했던곳

이번에도길동무막내동서랑함께갔다왔다.

길동무가있어가고싶을때둘의합의는빨라떠나기쉬운장점과

서로의입맛….취향이야우리동서의높은안목을따라갈수없으나

호기심이앞서는나와는둘의합치가빨라좋다.

우리가가야할곳100곳이라말하고또계획중…ㅋ

우린복잡하단소문을들었기에…남들보다훨씬일찍떠나기로

이번에도어둠이채가시지도않을때만나남이섬으로향했다.

허나우리만의생각인줄알았더니

우린보통시민들이생각하는수준이라는걸다시한번확인한셈….ㅋ

남이섬선착장에도착했을때는우리보다휠씬일찍온사람들로붐비는것을보곤

입을다물지못했다.

게다가중국관광객들이더많은듯

한국말보다..중국말만이시끄럽게널리고널려퍼진다

아~~~시끄러워서리….

어쩜그리도떠들어대는지…..남이섬이들썩들썩거렸다….이날은

이렇게많은인파가쏟아져나온다는건상상할수없는광경이었다.

많아야얼마나많을까하는생각이…무지!무지였징….ㅋ

난민선을방불케하는배타기….

우리는서둘러이곳에도착했기에알맞은시간이라생각했지만

배는아슬아슬놓치지않을정도였다.

그리곤우리바로뒤에서배에탈인원이끊어졌다.

찬스한번어찌나좋았던지….ㅋ

배를타고선착장을빠져나가는데우리뒤로사람들이저렇게서있기를…ㅋ

또한내리고보니입구에얼마나많은사람들이있었는지

사람없는사진찍기를포기해야만할정도였다.

동쪽으로새덕산,서쪽으로불기산이라고하는산들중…

북한강이흐르는가운데에자리한저기저작은섬안이

오밀조밀휴식공간으로만들어지고드라마한편으로

담번에유명섬이되어버린곳…바로남이섬이다.

겨울연가의드라마로더유명해진곳으로​

1965년에만들어진신비로운세계나라남이섬이라는타이틀에맞게

동화나라라고하고노래의섬이라부른다는남이섬은

문화예술자연생태의청정정원으로다양한전시와문화행사,

콘서트를꾸준히개최해오고있단다.

가요계에선이미자특별전시가열리고있어

홀에서는이미자쇼가연시돌아가며

가요계의역사가건물가득히있는듯했으나

우린우리의취향이아니라고하며튕겨나왔다.

어린이들에게는꿈과희망을,연인들에게는사랑과추억을,

문화계인사들에게는창작의터전과기반을마련해주고있다고

선전문구에있었다.

그러고보니곳곳에행사의잔재들이널려있다시피

우린가운데복잡한곳을피해주변산책길로거의다닌듯.

배에서내리자마자눈에띄는천년돌이라새겨진글

저글씨가누구의글씨이길래저렇게썼을까했더니

남이섬전체가다저글씨…아마도이섬의주인의필체일까???

한글을뒤늦게배워그린듯한글씨체…

세련되게가꾸어진남이섬과는

뭔가맞지않는듯한글씨란생각이들었었지…아마…ㅋ

그러면서이섬이개인소유라는것의흔적일수도했다고나름의판단???…ㅋ

남이섬[南怡섬,Namiseom]

강원도춘천시남산면에있는섬이다.

북한강에떠있는반달모양의남이섬은원래섬이아니었으나,

청평댐이세워지면서주위가물에잠겨섬이되었다.

『강원도땅이름』에"경기도가평군과춘천시와의경계를이루고있는

북한강안에있는둘레6㎞,넓이13만7천평의섬으로

동쪽으로새덕산,서쪽으로불기산,

앞쪽으로는굽이도는북한강줄기가어우러진그림같이아름다운섬이다.

옛지도에는남도라적혀있는데언제부터남이섬이라불렀는지는

문헌상에나타나있지않고,

조선조세조때이시애의난을평정한남이장군의묘가있다하여

남이섬이라고불린다."라고전하고있다.

[네이버지식백과]

남이섬의이름유래는역사시간에남이장군의이름을따서

지은섬이라는건기억한다.

남이섬선착장에서입구의문으로들어서자입구에서부터얼마걷지않아

이섬의이름이유래된남이장군의묘소가있었다.

남이장군은17세에무과에급제하고

조선조세조13년에이시애의난을평정하여공신이되었으며,

27세에병조판서가되었으나세조가죽고예종이등극한후

역적으로몰려28세의젊은나이에요절하였다.

"남아이십에나라를평정하지못하면훗날에누가대장부라하리오."라는것이

남이장군이남긴시이다.

어렸을때영화에서보던기억도어렴풋이….ㅋ

남이장군묘[南怡將軍墓]

경기도화성시비봉면남전리에있는조선세조때의무신

남이장군의유택.

경기도기념물제13호.남이장군과부인의합장묘로쌍분이다.

남이(,1441~1468)는

본관이의령()으로,의산군()남휘()의손자이다.

그는1457년(세조3)16세의어린나이로무과에급제하였다.

이후이시애()의난을토벌한공으로적개공신()1등에책록되었다.

26세에병조판서에임명되었으나유자광()의무고로능지처사를당하였다.

묘소는2단으로쌓인석축대위에2개의봉분이있다.

봉분은사성()으로둘러싸였으며,부인과의합장묘인쌍분으로호석()을둘렀다.

묘소앞에조성된석물은문인석을제외하고,대부분현대에와서건립된것으로보인다.

봉분앞에국한문으로생애를정리한월두형()묘비와상석()이있고

장대석()으로계절(:무덤앞에평평하게만들어놓은땅)을쌓았으며

좌우로문인석,망주석()이각1쌍씩배치되어있다.

한편강원도춘천의남이섬에있는남이장군묘는가묘이다

[네이버지식백과]

"남아이십에나라를평정하지못하면훗날에누가대장부라하리오."라는것이

남이장군이남긴시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5924&cid=41708&categoryId=41734

남이장군

동물그림전

색감을뚜렷하게느낄수있는동물들의그림이

나무와나무사이에펼쳐져있었다.

이것도볼만한눈요기라고해서찍어봤다.

작가는우루과이출신의카롤로스빠에이로

단풍과낙엽과의조화를이루고있는동물들의특징적인그림으로보여

뛰어난작가의상상력을읽을수있는그림들이라는생각이었지만

오래감상못한것이아쉬움…으로남는다만

예쁜곳이너무많은남이섬이라서…ㅋ​

배용준과최지우의눈사람뽀뽀는여기저기너무남발하여

호기심도없게만들었다.

기념정원

남이섬이갖추어지기까지의내력을알수있는

주인공의기념정원이라할수있겠지

민병도(閔丙燾,1916년1월9일~2006년3월5일)는

일제강점기대한민국의은행가이다.

호는수재(守齋)이다.

경성부에서일제강점기의유명한갑부였던민영휘의손자로태어났다.

아버지민대식은민영휘의소실소생중맏아들이다.

경성고등보통학교와일본의게이오의숙을졸업하고

조선은행에입사하여근무했다.

민대식이창설한동일은행취체역을지냈으며,

조선총독부기관지매일신보1938년에주식회사로전환할때

발기인[2]을맡는등젊은나이에도조선실업계에서중요한역할을담당했다.

일제강점기말기에는고액의국방헌금과비행기대금을헌납하여

태평양전쟁에협조한행적도있다.

​손에들고계신책에도섬에대한그림이그려져있었다.

태평양전쟁종전후에도기업인으로활발히활동하며그랜드하얏트호텔회장과

학교법인휘문학원이사장을역임했고,

조흥은행상무이사를거쳐한국은행제7대총재를지냈다.

현대미술관회장을지냈으며출판사인을유문화사

대한민국최초의교향악단고려교향악단을설립하고

윤석중과함께《새싹문학》을창간하는등문화예술계에도많은영향을끼쳤다.

한국은행수석부총재로재임중5·16군사정변이일어나

유창순이한국은행총재가되었다.

유창순은증권파동과한국은행법개정와중에물러났고,

민병도가총재로승격했으나

외환위기속에쿠데타세력과차관도입에대한의견대립을일으켜

약1년만에사직했다.

이때의일을쿠데타정권에항거하고반기를든것으로보는시각도있다.

청평댐건설로생겨난강원도춘천남이섬을구입한뒤

장기간에걸쳐나무를심고가꾸어

휴양지로꾸민남이섬설립자로도잘알려져있다.

남이섬에서거주하다가2006년에사망했으며,

이섬에는민병도의동상이세워져있다.

국민훈장목단장을서훈받았다.

2008년발표된민족문제연구소의친일인명사전수록예정자명단

경제부문에아버지민대식과함께선정되었지만

아버지민대식은친일인명사전에수록된반면민병도는수록이보류되었다

아들이휘문고등학교이사장에손자는퐁문여자고등학교이사장

숙부민규식은조선총독부중추원참의원을지낸가족관계

한류열풍으로사람들이몰려오는것을보고

섬이훼손될까풀과나무를잘가꾸라는유언을남기셨네…

테마가있는정원들의모습들

유영지

버들잎이연못주변을치렁치렁늘어뜨리고있는곳의돌다리를건너

카페의테라스가있는곳에

자리하고앉아있었다..탁자위론마로니에잎사귀한잎올려놓고

우린두런두런이야기꽃을….ㅋ

마로니에낙엽한장…ㅋ

2011년부터시작된레인보우아일랜드뮤직&캠핑페스티벌이

매년벌어진다는무대

에 게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