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완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 ‘반달’
‘반달 할아버지’ 윤극영(1903~1988)선생이 작고할 때까지
10여 년간 살던 집에 다녀왔다.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보존하는 문화재와 다르게
기억과 감성이 담긴 유형이나 무형의 문화유산을
시민이 스스로 발굴하고 소유자가 자발적으로 보존하는 것을 미래유산이라는데
2013년까지 큰아들 봉섭 씨가 살던 이 집을
서울시에서 약 6억 원의 예산을 들여 유족으로부터 사서
서울시 미래유산 1호로 지정된 윤극영 가옥은 2014년 10월부터 개방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동네 사람들조차 잘 모르고 있던 곳
이정표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작은 화단과 집의 구조가
옛날 살던 집으로 들어가는 듯 감회가 새롭게 느껴진다.
양옥집이 유행하던 시절 그때 살던 집
그곳의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이곳은 동요작곡가 윤극영 선생 기념관이자
어린이들을 위한 동요교실이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관리하시는 분은 친절하게도 이것저것 안내하며
화요일마다 열리는 다도에 참석하라는 안내까지 해 준다.
윤극영은 우리나라 어린이 문화 운동에 큰 기여를 한 동요작사 작곡가로
우리나라 최고의 창작동요인 까치까치 설날은, 반달, 귀뚜라미, 고기잡이 등등,
동요 700여 곡을 작사 작곡하며 지금까지 즐겨 부르고 있고
동요보급 운동과 함께
동화와 수필, 시와 같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요즘 매년 부르는 “까치까치 설날은”
노래의 작곡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