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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중국 짝사랑

한국의 중국 짝사랑/조선일보 2004.5.28

올해 들어 중국 외교에 특이한 점이 감지된다. 지난 5개월 사이에 공산당 서열 1, 2, 3위인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마치 릴레이를 하듯 잇따라 유럽을 방문하고 있다.

지난해 집권한 중국 4세대 지도부가 유럽 쪽에 외교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는 점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이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중국의 외교 밑그림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유럽 공략’의 첫 테이프를 끊은 후진타오 주석은 1월 말 아프리카 3개국 순방에 앞서 프랑스를 방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시라크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독립 반대’ 등 중국입장을 확고히 지지한 데 이어, “1989년(천안문 사건)부터 시작된 EU(유럽연합)의 대중(對中) 무기금수는 정치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에 몇 달 안에 해제되기 바란다”고 말해, 금수를 고집해 온 미국을 겨냥했다.

프랑스로서는 중국의 무기시장과 고속전철사업 등을 노린 전략적 발언이기도 했지만, 중국은 유럽과의 군사협력 강화와 미국 견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얻은 셈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2~12일 사이 독일·벨기에·이탈리아·영국·아일랜드 등 유럽 5개국과 EU 본부를 방문했다.

그는 11일 동안 97차례의 회담과 회견·모임을 가졌고, 15건의 양국 합작협의서와 양해비망록을 체결했으며, 56건의 무역계약과 27건의 합자계약을 성사시켜 수십억달러의 교역·투자유치 성과를 거두었다고 신화(新華)통신이 보도했다.

원 총리가 하루 9건 이상의 행사를 강행군한 것은 유럽과의 경제·과학기술 협력을 강화하여 대미(對美) 의존도를 낮추려는 목적으로 분석된다.

우방궈 상무위원장은 지난 22일부터 후(胡)·원(溫) 두 지도자가 가지 않은 러시아·불가리아·덴마크·노르웨이 등 동북유럽 4개국을 방문 중이다. 각국 국회의장 초청으로 가는 우 위원장은 현지 정치인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질 계획이다.

세 지도자의 행보는, 중국이 매년 외교백서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세계관’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미국 중심의) ‘단극(單極)체제’에 반대하고 다극(多極) 평화체제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당장 미국과 대결할 가능성은 낮지만, 적어도 원칙에서만은 미국의 패권주의와 군사강압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중국은 이에 따라 프랑스·독일·러시아 등과 함께 미국의 이라크전쟁에 반대해 왔다.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은 최근 중국과 유럽의 관계를 ‘지합자 불이산해원(志合者 不以山海遠)’이란 말로 표현했다. 뜻이 맞는 자들은 산과 바다가 있어도 결코 멀지 않다는 뜻이다.

중국 지도부는 세계의 공장이 된 튼튼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들의 세계전략을실천에 옮기고 있으며, 국제무대에서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큰 그림 속에서 중국은 군사·과학기술·국제전략 면에서 미국과의 대치선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지도부의 행동을 보면서 걱정되는 것은 우리 외교다. 최근 국내에서 일고 있는 ‘자주외교론’이나 ‘탈미친중(脫美親中)론’은 중국의 이 같은 전략을 파악한 위에서 출발한 것인지 궁금하다. 그것이 미래 어느 시점에 가져올 심각한 결과를 우리 모두가 감내할 수 있을까?

상대편 마음이 딴 데 가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쫓아다니는 것은 ‘짝사랑’이다. 개인의 짝사랑은 낭만이라도 있지만, 국가의 짝사랑은 수천만의 비극이 되기 쉽다. /지해범기자 hbj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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