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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영화 ‘제독의 연인’ 러브스토리 간직한 이르쿠츠크 - China Inside
영화 ‘제독의 연인’ 러브스토리 간직한 이르쿠츠크

바이칼 여행기<4>

영화 ‘제독의 연인’의 무대와 즈나멘스키 수도원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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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독의 연인’눈 위의 키스 장면>

제까브리스트들의 삶은 크게 보면 성공한 삶이다.

비록 젊은 시절 혁명에선 실패했지만 인생 후반 이르쿠츠크에 남아 교육과 문화에 전력하여 훌륭한 도시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그들 덕분에 머나먼 한국땅에서우리와 같은 여행객들이 이렇게 찾아오는 것 아닌가.제까브리스트 박물관을 뒤로 하고다음에 우리가 향한 곳은 우샤코프카 강가에 있는 즈나멘스키 수도원(Znamenskiy monastery)이다.

이 여행기를쓰면서네이버 백과를 검색해보니, 이 수도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나온다. 이에 따르면, 1689년 세워진 이 수도원은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자 대표적 건축물이라고 한다. 처음엔 나무로 지어졌으나 18세기 중반돌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본래 수녀들을 위한 숙소로 지어잔 뒤나중에 이르쿠츠크와 치타, 부리야티아, 사하지역을 관장하는 러시아 정교회 본부로 발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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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나멘스키 수도원/사진=학술탐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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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나멘스키수녀원/사진=네이버 블로그 불꽃님에게서 허락받고 빌려옴>

수도원은 하얀 벽과 초록의지붕, 높은 황금색 십자가가 멋진 조화를 이루며 고결함과 여성스러움을 드러낸다. 이곳의 성모 성상은 로마에 있는 성상과 그 모양이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또 수도원에는 1702년 피터 대제가 하사한 성서를 보관하고 있으며, 수도원 정원에는 시베리아의 첫 발견자인 G 셀리호프와제까브리스트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무덤이 있다. 수녀들이 정성스레 가꿔놓은 정원에선 여름과 가을이면 진한 꽃향기를 풍긴다고 한다.

수도원 안에는 수녀원 건물도 있다. 역시 흰색 벽에 초록의 지붕으로 된 2층 건물은 단아하면서도 고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수도원 방문 당시 사진기 밧데리가 다되어 사진을 찍지못해 아쉬웠는데, 다행히다른 블로거님들이 사진을 빌려주어위에실었다. 성당 내부도 화려하기 그지없었다.<아래 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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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나멘스키 수도원 성당 내부/사진=네이버 블로그 유비유비님에게서 허락받고 빌려옴>

이 수도원 앞에는러시아의 명해군제독이자 훗날 볼셰비키 혁명에 저항하는 백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알렉산드르 콜차크(1874~1920) 제독의 동상이 서있다. 재정 러시아 시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해군장교가 된 그는 블라디보스톡의 극동함대사령부에서근무하며 러일전쟁(1904~1905)에 참전하였고,이어 1차 세계대전(1914~1918) 때유럽에서 독일 해군과 싸우며큰 전과를 거둬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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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나멘스키 수도원 앞에 있는 콜차크 제독의 동상/사진=학술탐사단>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이 미처 끝나기도 전, 러시아에서는 큰 정치적 변동이 일어났다.

1917년 3월초(러시아력 2월)제정러시아의 경제파탄으로 수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식량배급이 중단되자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을 시작으로 시민들이 봉기했다.니콜라이 2세로부터 진압명령을 받은 카발로프 장군은 황제의 명령을 거부했고, 반란병과 노동자 등 시위대는 감옥의 정치범을 석방하고 관청까지 점거했다. 결국 3월15일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함으로써 제정 러시아시대는 끝이 났다.혁명 후 의회인 두마에 의해 권력을 부여받은임시정부는 국민의 바람과는 반대로1차 대전에 계속 참전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국민들의불만이 높아가는 가운데,1917년 4월 스위스로 망명했던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볼셰비키파(다수파) 수령인 레닌이 러시아로 돌아와 "임정타도"와 "권력을 소비에트로"를 내걸고임정에 도전했다.당시 임시정부의 수반은 같은 당의 소수파인 멘셰비키(소수파)와 결탁한 농민 중심의 사회혁명당의당수 케렌스키였다. 그는 전선의 군대를 소환하여한때 볼셰비키의 반란군을 진압했으나, 각지에서 들불같이 일어나는 봉기를 막지 못하고 결국 그해 11월수도를 볼세비키에 내주었다. 그후 개최된 소비에트 대회는 레닌을인민위원회 의장으로 선출함으로써 사회주의 러시아가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 와중에 알렉산드르 콜차크 제독은 1917년 임시정부의 수반 케렌스키에 의해강제로 해임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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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인물 알렉산드르 콜차크/사진 네이버 블로그 ‘푸른미르‘에게 허락받고 빌려옴>

미국으로 망명했던 콜차크는 1918년 다시 러시아로 돌아와 그해 말 우랄산맥 남단 옴스크에서 반혁명군을 조직해 볼셰비키 혁명세력에 저항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군인으로서의삶과 명예를 송두리째 앗아간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반감,로마노프 황실에 대한도덕적 의무감, 그리고 연합국의 지원 등이 겹친 때문으로 보인다.콜차크의 저항군은 공산 혁명군(赤軍)에 대비되는 명칭으로백군(白軍)이라 불렸다. 백군은 한때볼가강 부근까지 진격하기도 했으나, 협력하기로 했던 ‘체코군단’의 배신으로 혁명군에 치명타를 입어 옴스크를 함락당하고, 이르쿠츠크로 패퇴하게 된다.

혹한의 날씨속에 모든 것이 얼어붙은 시베리아 대륙을 열차로 이동하던 콜차크 장군은 이르쿠츠크 부근에서혁명군에 체포되고 만다. 백군의재결집과 반격을 우려한 혁명군은 1920년 2월 바이칼 호수에서 흘러내려오는 앙가라 강변에서 그를총살한 뒤 얼음을 깨고 그의 시신을강물속으로 던져버린다. 한때 러시아의 영웅은 이렇게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뒤에 그를 따르던 병사들이 그의 시신을 찾아즈나멘스키 수도원 부근에 매장했다고 한다. 수도원 앞에 그의 동상이 서게된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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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독의 연인’ 속의콜차크 제독(콘스탄틴 카벤스키扮>

레닌에서고르바초프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 소련의 통치기간내내 잊혀졌던 그의 이름은 지난 2009년 러시아가 거액의 제작비(2천만 달러/한화 230억원)를 들여 제작한 영화 ‘제독의 연인(원제 Admiral)’에 의해 부활했다. 이 영화가 제작된것은, 러시아 해군함대 기록보관소에서 콜차크의 연인 안냐 티미료바(Anna Timiryova)가 보낸 53통의 편지가 발견됨으로써비운의 제독과 한 여인의 슬픈 러브스토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 계기였다. 안나 티미료바는 콜차크 제독의 부하 장교의 부인이었다.

이 편지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은한 파티장에서 운명적으로 만난다. 그 파티는독일과의 발트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영웅이 된콜차크를 환영하는 모임이었다.콜차크의 친구들은짓궂은 내기를 걸고,콜차크에게처음으로 파티장에 들어서는 여인에게 키스를 하도록 시킨다. 그 여인이 바로 안나였고, 둘은 마주보는 순간 진한 감정의 교류를경험한다.이루어져서는 안될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처음에는 가정을 지키기로 약속하지만, 강렬한 마음의 끌림을 어쩌지 못하고 만남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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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안나(엘리자베타 보야르스카야 扮)>

케렌스키에 의해 졸지에 군복을 벗은 콜차크가 미국에서 돌아온 뒤 혁명군에 대항하기 위해 옴스크로 떠나자,안나 역시 남편과 이별하고 간호사가 되어 전선으로 달려간다. 백설 속에서 펼쳐지는 여러번에 전투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나자 안나는 ‘백의의 천사’로 활약한다. 어렵게 이루어진 이들의 사랑도 역사의 큰 흐름에는 어쩔수 없었다.혁명군의 거센 공세에 밀린 백군은 옴스크를 포기하고 이르쿠츠크로 향한다. 콜차크와 백군을 태운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얼어붙은 바이칼호수를 끼고흰 연기를 거칠게 내뿜으며 동쪽으로 향하지만, 곳곳에서 혁명군의 저항에 막혀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안타까운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의 열차칸에 노크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체코군(?)들이 들어온다. 그렇게 끌려나간 콜차크는 혁명군에 넘겨지고 마침내 백설의 안가라 강변에서 총살당하고 만다. 죽는 순간까지 그는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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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안에서 사랑을 나누다 노크 소리에 돌아보는 안나의 눈빛이 불안하다>

현실 속의 안나는 러시아의 대문호 솔제니친의 고향(키슬로보스크) 출신이며,유명한 음악가 집안에서 자랐다고 한다. 콜차크 사후 안나는 공산정권 치하에서 수용소를 오가며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그녀는 노년이 된 후에야 비로소 일을 하며 연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를 도와준이가유명한 러시아 음악가 쇼스타코비치였다고 한다. (네이버 블로그 푸른미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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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실제 인물안나 티미료바/사진=푸른미르님에게서 허락받고 빌려옴>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2009년 메드베데프 대통령 시절이지만, 영화가 기획된 것은 그 이전 푸틴 1차 집권시기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가 영화제작 100주년 기념작으로 이 영화를 제작했다는 것은두 사람의사랑과 함께 콜차크의애국심을 부각시키고 싶은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의 뜻이 반영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이 영화가 크게 히트하진 못햇지만, 러시아 근현대사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DVD를 사기 위해 노력중이지만, 아직 구하지 못했다. 우리 학술탐사단 일행은 버스 안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그 여운이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도남아있다./계속

<‘제독의 연인’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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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mments

  1. 풀잎사랑

    2012년 8월 31일 at 11:41 오후

    어느 나라든지 연인드르이 이야기는 애절하지만
    특히나 러시아의 남녀 이야기는 더욱 마음이 뭉클합니다.
    아무래도 닥터 지바고 탓이 아닐까요?ㅎ

    잘 알지도 못했던 러시아의 역사를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이라도 대여점에 가서 DVD를 빌려 보아야 직성이 풀리겠네요.
       

  2. Lisa♡

    2012년 9월 1일 at 3:45 오후

    아…제독의 연인 재미있었지요.
    안나가 하고있던 목걸이가 기억에 남네요.
    그런 역사가 같이 존재하는 영화였네요.
    저 남자배우 멋지더라구요.

    잘 읽었습니다.
    실제 인물 사진을 봐도 아름답네요.
    ..아..쇼스타코비치가 그 집안이었다구요?
       

  3. 한국인

    2012년 9월 1일 at 5:36 오후

    안나 티미료바, 정말 이쁘네요.   

  4. 참나무.

    2012년 9월 2일 at 10:01 오전

    지기자님 덕분에 러시아 공부 많이합니다

    어디 상영관에서 한다는 소식 들리면 꼭 달려가야겠어요
    버스 안에서 보신 영화의 감흥이 한달간이나 계속되신다니
    지기자 님 은근 낭만파시다…^^   

  5. 데레사

    2012년 9월 2일 at 11:56 오전

    제독의 여인,
    지금 당장 쿡에서 찾아 봐야 겠습니다. 있으면 볼려고요.

    얫 러시아는 무척 낭만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살았던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소설에서 읽은 사랑이야기들이 다 진지하고 아름답거든요.

    고맙습니다.   

  6. 지해범

    2012년 9월 2일 at 3:41 오후

    풀사님,
    동토와 백설 위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이 장관일겁니다.   

  7. 지해범

    2012년 9월 2일 at 3:43 오후

    리사님은 영화를 이미 보셨군요.
    목걸이가 땅에 떨어지면서 제독이 총살당하지요, 아마??
    벌써 가물가물하네요..   

  8. 지해범

    2012년 9월 2일 at 3:43 오후

    한국인님,
    반갑습니다.   

  9. 지해범

    2012년 9월 2일 at 3:44 오후

    참나무님,
    이 영화가 3년전에 상영되었으므로 영화관에서는 하지 않을거고, DVD를 빌려보셔야 될 겁니다. 저는 기회되면 DVD를 하나 살려고 합니다.    

  10. 지해범

    2012년 9월 2일 at 3:45 오후

    데레사님,
    추운 나라 사람들이 아무래도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기니까, 낭만적인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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