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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1200년전 중국 바둑계 평정한 한국인 있었다 - China Inside
1200년전 중국 바둑계 평정한 한국인 있었다

서안(西安)과 한민족

지해범(조선일보 논설위원)

중국서안천복사소안탑.jpg

<중국 서안천복사 내 소안탑. 신라승려 혜초가 수행하고 불경을 번역하던 곳이다. 소안탑의 계단을 오르다보면 그 옛날 혜초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사진=지해범 기자>

3년 전 중국 속 한국사(史) 흔적을 찾아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에 갔다. 황하(黃河) 중류 고대문명 발상지 서안은 주(周)에서 당(唐)까지 열세 개 왕조가 거쳐 간 6000년 고도(古都)이자 실크로드 출발점이다. 당나라 때엔 장안(長安)이라고 불렀다. 진시황릉·병마용·화청지(華淸池)를 비롯한 세계적 유적을 자랑하지만 곳곳에 한민족과 관련된 역사 유적도 품고 있다. [불법복제-전재금지]

▶천복사(薦福寺)와 대흥선사(大興善寺)는 8세기 신라 승려 혜초(慧超)가 활동하던 절이다. 혜초는 열여섯 살에 당으로 건너가 서안과 낙양(洛陽)에서 불교를 공부했다. 인도와 서역을 10년 여행하고 돌아온 뒤에도 서안의 두 절에 머물며 불경을 번역하고 포교했다. 서안 남쪽 흥교사(興敎寺)엔 신라 왕손 출신 원측(圓測)의 사리탑이 있다.사천 대지진에 탑 일부가 부서졌지만 지금쯤은 수리가 끝났을 것 같다. [불법복제-전재금지]

▶6~10세기 당 수도 장안은 세계 처음으로 인구 100만을 넘어선 국제도시였다. 한국과 일본·버마·중동에서 온 외교관과 상인·유학생·유학승(僧)이 3만을 넘었다고 한다. 신라인 최치원과 김가기는 외국인에게 개방된 과거시험 빈공과에 합격해 관리로 일했다. 고구려 유민 고선지는 안서도호부 총사령관에 올라 실크로드를 평정했다. 신라 유학생 박구는 장안의 바둑 고수들을 모두 누르고 당 희종의 바둑 비서 ‘기대조(棋待詔)’가 됐다. ‘1200년 전 이창호’였던 셈이다. [불법복제-전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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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 흥교사의 원측스님 사리탑. 3년전 방문했을 때사천 대지진으로 입은 피해를 수리중이었으나, 지금쯤은 수리가 끝났을 것 같다./사진=지해범>

▶1940년 중경(重慶)에서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은 일본군 추격을 피해서안 연호구(蓮湖區)로 사령부를 옮겼다. 스무 명 남짓한 광복군들은 다짐했다. "초(楚)는 단 세 집 남아도 진(秦)을 멸망시킨다 했다. 단군 후손인 우리는 기어코 고국을 다시 찾고 말 것이다." 흥교사에서 멀지 않은 두곡진(杜曲鎭)에서 이범석 장군이 이끌던 광복군 제2지대 주둔지 건물은 양식 창고가 돼 있었다. [불법복제-전재금지]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한·중 정상회담을 하러 북경에 갔다가 29~30일 서안을 찾는다. 서안은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고향’이다. 중학생 시진핑은 문화혁명 시절 서안에서 250㎞ 떨어진 농촌으로 하방(下放)돼 7년간 토굴에서 고생하며 청년 지도자로 컸다. 교육도시 서안에는 서안교통대를 비롯한 명문이 많다. 중국 서부 대개발 거점도시여서 삼성·LG·SK를 비롯한 우리 기업도 여럿 나가 있다. 1200년 전부터 한반도인과 인연을 맺은 서안에 한국 국가 지도자가 처음 방문한다. 중국인의 마음을 더욱 가까이 끌어당기는 여정(旅程)이길 기대한다./지해범(조선일보 논설위원) [불법복제-전재금지]
[이 글은 조선일보 2013.6.22 만물상 코너에 실린 글임.]

10 Comments

  1. 참나무.

    2013년 6월 24일 at 4:50 오후

    왕오천축국전..혜초스님..최지원…또 신라유학생 박구까지…
    우리나라랑 오래전부터 관계가 많은 도시군요
    그 아니어도 서안엘 꼭 가보고싶었는데
    병마용 일부는 몇해 전에 경복궁 전시에서 본적은 있지만
    현지에서 직접 모는 것 만 하겠는지요

    박대통령 첫방문이지만 중국인들에게 깊은 유대감 심고 오시길 기대해야겠네요
    삼성 LG SK…삼대 기업들고 나가있다니 말이지요…
       

  2. 데레사

    2013년 6월 24일 at 8:18 오후

    다음 중국가면 서안엘 꼭 가봐야겠습니다.
    북경에서 얼마나 먼곳인지는 모르지만요.

    박대통령의 방중외교에 큰 성과에 있기를 기대 해 봅니다.   

  3. 김진아

    2013년 6월 24일 at 8:21 오후

    교육 도시, 우리 나라의 글로벌한 기업이 모두 있는 그곳..서안…

    그 곳의 방문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   

  4. 지해범

    2013년 6월 24일 at 11:25 오후

    참나무님,
    서안에 가는 수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병마용과 진시황릉만 보고 오지요.
    그 땅에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과 고뇌가 서려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채.
    우리의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지않고, 그나마 암기 위주여서 ‘영혼 없는 아이들’만 키우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5. 지해범

    2013년 6월 24일 at 11:27 오후

    데레사님,
    북경에서 비행기타면 2시간이면 갈 겁니다.
    한번은 가볼만 하지요.
    진시황의 배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확인할 수 있지요.    

  6. 지해범

    2013년 6월 24일 at 11:28 오후

    진아님,
    반갑습니다.
       

  7. 참나무.

    2013년 6월 25일 at 7:23 오전

    아는 것만큼 보인다… 참 명언이군요
    지기자님 아니셨으면 저도 병마용과 진시황능만 보고왔을거네요 틀림없이…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8. 대천사

    2013년 6월 25일 at 11:39 오전

    중국을 공부하는 한국가람들이 필히 가봐야 하는 중국의 지역은 북경도 아니고 상해도 아니고 광주도 아닙니다.
    춘추전국 시대의 광대한 중원지방, 즉, 정주, 낙양, 개봉과 서안입니다.
    신정공항에서 정주로 가는 길에 2,000년 전에 여기서 군웅들이 전마를 타고 전쟁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중국의 역사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운이 좋아서 정주에 좀 있었어요. 저 네 곳을 다 가봤지요.
    인상이 가장 깊은 곳은 서안사변 때 장개석이 장학량에게 잡히는 장소입니다.
    화청지 五間廳의 총알 흔적을 보고 이산 위에 장개석의 은신처를 보고 한마디로 감개무량
    입니다. 장학량의 납치행동이 없었더라면 공산당은 중국을 통치하지 못할 것이며 국민정부도 반드시 좋은 통치를 하는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문화대혁명과 같은 비극이 터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행을 많이 하고 역사고적을 많이 구경하는 것은 정말 유익한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리고 박구라는 기대조가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입니다. 혹시 출처를 알려주실 수 없을 까요? 저도 바둑을 좋아하고 tyegem에 아는 중국 기사가 많거든요.
    부탁합니다.
       

  9. 지해범

    2013년 6월 25일 at 3:19 오후

    참나무님,
    저도 자료를 보고 안 사실들입니다.
    그리고 현장에 직접 가보니 느낌이 다르더군요.    

  10. 지해범

    2013년 6월 25일 at 3:28 오후

    대천사님,
    당나라 문인 중 張喬라는 사람이 박구를 신라로 보내며 지은 시가 있습니다.
    제목은 送棋待詔朴球歸新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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