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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족은 왜 죽음으로써 중국에 저항하나(上)

칠순 노모와 임신한 아내까지테러에 동원한위구르족

지해범(조선일보 논설위원 겸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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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위구르족과 한족간 인종충돌 과정에서 가족의 체포에 항의하는 위구르 여성들을 중국 경찰이 곤봉을 휘두르며 저지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낮 12시쯤 중국의 수도 베이징 한복판 톈안먼(天安門) 앞에서 지프차 한대가 인도를 지나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돌다리 진쉐이차오(金水橋)를 들이받으면서 폭발해 차량 탑승자 3명을 포함해 5명이 숨지고 38명이 다쳤다. 이 사고는 공산당 18기 3중전회(11월9~12일)를 눈앞에 둔 시점에 터진데다 중국 지도부가 모여있는 중난하이에서 700여m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게다가 천안문은 1989년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곳으로 일년 365일 전세계인이 지켜보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 지도부와 국민이 사고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불법복제-전재금지]

베이징 경찰은 차량 탑승자가 위구르족인 우스만 아이산과 임신 6개월째인 그의 아내, 70세가 넘은 우스만의 어머니임을 확인하고 신장위구르 지역 공안과 합동수사를 벌여 이틀만에 5명의 관련자를 체포했다. 멍젠주(孟建柱) 중앙정법위서기는 31일 “이 사건은 위구르족 독립운동 단체인 ’동(東)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의 소행으로서 중국의 평화와 안전을 해치는 불순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독립을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테러였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사건 이후 중국 전역의 위구르족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검색을 벌여 우루무치(烏魯木齊)와 이리(利犁) 등지에서 불법종교 서적과 CD 등을 소지한 혐의로 170여명을 체포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보도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발표는 곧 신뢰성 논란에 부딪혔다. 젊은 위구르족이 자치구 독립이란 명분을 위해 임신한 아내와 칠순 노모까지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경찰 발표가 믿기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베이징 소재 중앙민족대학의 이리하무 투허 교수(위구르족)는 독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운전자가 자살테러에 부인과 모친을 대동할 이유가 있으냐”며 “개인적 울분을 알리기 위한 집단분신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불법복제-전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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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8일 천안문 광장 차량테러 현장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번 사건이 독립투쟁이냐 아니냐와 관계없이, 위구르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중국의 폭압과 차별에 억눅려온 위구르인들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이 이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아 마지막 외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내 990만 위구르족은 도대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것인가?

중국 서부 사막과 초원에서 평온하게 살아가던 위구르인들에게 먹구름이 몰려온 것은 1999년부터다. 중국 정부의 서부대개발 정책에 따라 사막에 묻힌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을 위한 대대적인 투자가 시작됐다. 또 그에 따라 한족들도 집단 이주해왔다. 에너지 개발이익은 한족들에게 돌아가고 위구르인들이 낄 틈은 없었다. [불법복제-전재금지]

우루무치 카스 등지의 위구르족 집단 거주지를 철거하고 상업지로 개발해 백화점·호텔 등을 세우는 사람은 한족이었다. 1949년 공산정권 수립 초기 이 지역 인구의 7%에 불과했던 한족은 현재 40%를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위구르족(46%)을 넘어서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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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인종충돌 과정에서 분노한 한족들이위구르인을 집단 폭행하는 장면>


우루무치 카스 등 대도시의 위구르 전통거주지는 재개발을 이유로 철거되어 수백년 이어온 고유 문화는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그나마 남은 구역은 관광상품화되어 외부인의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위구르인들이 민족의 뿌리가 뽑힌다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재미 중국학자인 천웨이젠(陳維健)은 “위구르인은 자기네 땅에서 2등국민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불법복제-전재금지]

위구르인들이 가장 분노하는 것은 중국 정부의 종교억압정책과 문화말살정책이다. 중국은 헌법이나 국무원이 반포한 ‘종교사무조례’에서 공민의 종교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또 55개 소수민족의 전통문화와 고유언어 사용도 장려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중국 공산당은 1982년 반포한 『종교문제의 기본관점과 기본정책』에서 ‘18세 이하의 아동이 종교를 가지거나 출가하거나 사찰 등에서 학업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신장자치구 정부는 1990년 잠행규정을 마련해 ▲종교인은 경전학교나 경전반을 마음대로 열수 없고 ▲18세 이하 청소년에게 마음대로 종교사상을 주입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 규정에 따라 18세 이하의 위구르 청소년은 이슬람사원인 청진사(淸眞寺)에 출입할 수 없고 종교활동에도 참여할 수 없다. 위구르인은 이를 이슬람교 말살정책으로 받아들인다./계속 [불법복제-전재금지]

6 Comments

  1. 데레사

    2013년 11월 18일 at 3:12 오후

    땅도 넓고 다민족국가이다 보니 많은 혼란도 있고 그에 따른
    억압과 저항으로 맞서는 그런 모습도 종종 보이더군요.
    꼭 위구르만이 아닌 다른 지역과 다른 소수민족도요.

    중국입장에서야 또다른 할말이 있겠지만 종교나 문화는 정책으로는
    좀체 말살되지 않는다는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왔지요.

    언제나 정책은 허울뿐인 경우가 더 많은가 봅니다.   

  2. 지해범

    2013년 11월 18일 at 5:00 오후

    맞습니다.
    중국이 좀 더 포용적이고 지혜롭게 소수민족 정책을 펴기를 기대합니다.
    인류 역사가 이제는 강자가 약자를 포용하는 시대로 진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야 1세기전보다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3. 소리울

    2013년 11월 19일 at 7:22 오후

    가장 동화도기 어려운 것이 종교문제입니다.
    위구르인 대부분은 하루에 기도를 다섯번 해야하는 이슬람인들이고요.
    그들은 가장 돈독한 신앙인의 자세를 유지하기 때문에 티벹인들보다 더 심각하고
    더 탄탄한 의식을 갖고 있어요.
    중국이 아마도 계속 같은 정책을 펴다간 더 큰 여러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4. 지해범

    2013년 11월 20일 at 10:54 오후

    종교인에게 종교란 목숨을 버려서라도 지켜야하는 소중한 것이죠.
    중국으로서는 위구르의 독립을 막기 위해 종교활동을 억압해야 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 큰 저항에 직면하는 딜레마에 빠져있지요.    

  5. 나무

    2013년 11월 22일 at 6:23 오전

    불쌍한 위구르인…   

  6. 지해범

    2013년 11월 22일 at 4:16 오후

    안타깝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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