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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은 강했고 미군은 착각했다

중공군은 강했다
-백선엽의 6.25 징비록(33)

중공군북한지하갱도연주.jpg

<중국이 비무장지대 북쪽에구축한 지하갱도. 총연장 4000Km의갱도에서중공군은 생활하고 작전했다.>

대민 폐해 적었던 군대
참전했던 중공군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체적으로 볼 때, 중공군이 점령했던 지역의 한반도 주민들이 그들로부터 받은 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다. 물론 그들과 싸웠던 국군과 유엔군의 기억을 제외하면 말이다. 가장 뚜렷했던 인상은 그들 중공군의 대민(對民) 폐해가 적었다는 점이다.

중공군은 우선 기율이 엄격했다. 여러 가지 행동수칙이 있었겠지만, 우선 민가 등에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꽤 많은 주의를 기울였으며 또 실제 그렇게 행동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자면 그들은 점령지에서 가능한 한 민가에서 숙영(宿營)하는 일을 피했다. 설령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민가에 숙영하더라도 머문 뒤의 장소를 깨끗이 정리했으며, 반드시 화장실을 청소한 뒤 떠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중국 지도부가 참전 전과 후에 철저하게 시행한 내부 교육 때문이었으리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인으로 구성한 군대의 인상은 6.25전쟁 참전 이전까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부패하기 쉬웠으며, 그에 따라 기강이 없었다. 만주사변 당시의 상황은 앞에서 이미 소개했다. 군벌 장쭤린(張作霖)의 최정예 2개 사단은 무기를 시장에 내다 팔다가 그 약점을 노리고 들이닥친 일본군 1개 대대에게 일거에 사라지고 말 정도였다.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군대도 부패와 무능의 덫에 걸려 있다가 마오쩌둥(毛澤東)이 지휘하는 소수의 홍군(紅軍)에게 밀려 하루 사이에 수십 만의 병력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러니 중국 군대라고 하면 우선은 그런 부패와 무능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중공군북한밭갈이.jpg

<북한 여인의 밭갈이를 도와주고 있는 중공군>


그러나 1950년 한반도 전쟁에 뛰어들었던 중공군은 그들과 많이 달랐다. 중국 지도부는 특히 참전 뒤에도 중공군 각 부대에 지속적으로 작전 수칙(守則)을 보내 예하 장병들을 교육했다. 그 내용 중에는 ‘현지 인민의 풍습과 습관을 존중한다’ ‘학교와 문화, 교육기관, 명승지와 유적지 등을 보호한다’ ‘사사로이 민가에 들어가지 않는다’ ‘인민의 것은 하나라도 들고 나오지 않는다’ ‘교회나 사찰 등에 간섭하지 않는다’ 등이 들어 있다.

베이징(北京)에서 전쟁을 모두 지휘한 마오쩌둥의 군사사상 중에 돋보이는 내용 중의 하나가 이른바 ‘물과 물고기’에 관한 이론이다. 그는 홍군을 물고기에, 그 바탕을 형성하는 인민을 물에 비유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홍군은 인민의 토대 위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내용이다.

중국 공산당은 그런 점에서 자신의 약점을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았다. 작전의 토대를 인민 위에 둠으로써 부패와 무능의 가능성을 막았고, 그로써 다시 내전과 항일전쟁에서의 ‘정의(正義)’을 선점할 줄 알았다. 6.25전쟁 참전 뒤에도 그런 기강은 그대로 살아 있었고, 참전 중공군 장병들은 그에 충실히 따르는 편이었다./계속

<프리미엄뉴스 참조>

2 Comments

  1. 필코더

    2014년 3월 19일 at 12:25 오전

    휴전전후시기 북한에선 한국군이 아닌 미군과 대치하고 있는 부대로 빼달라는 청탁을, 남한에선 인민군이 아닌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는 부대로 빼달라는 청탁을 하는 일이 남북한에서 똑같이 벌어졌었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이 미군이나 중공군에 비해 거친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전의 중공군에 대한 평가는 "체감적 적군"이라는 신분 때문에 제한적이고 편향적일 수밖엔 없었을겁니다. 실제로 중공군을 접해본 어르신들의 말씀과 위 글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아보입니다.    

  2. 지해범

    2014년 3월 19일 at 5:21 오후

    제가 6.25 관련책을 읽고 느낀 점은, 당시 우리 군대가 매우 허술하고 전투력이 약했다는 것입니다. 유엔군과 국군이 압록강까지 올라갔을 때 중공군이 치고들어온 지역은 바로 국군이 방어하던 지역이었지요. 그곳이 순식간에 뚫리면서 개마고원에서 작전하던 미 해병대가 고립돼 ‘가장 길고 혹독한 겨울’을 맞았지요. 미군이 배로 태평양을 건너 실어온 신형 무기들을 국군부대에 나눠주면 중공군 나팔소리에 그 좋은 무기들을 내던지고 도망가기 바쁜 모습도 보였지요. 그래서 미군 장교가 도망가는 한국군 장교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도망가지 말라고 위협하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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