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6개 분야 수상자가 모두 발표됐다. 문학상과 평화상은 1명씩, 물리학상은 2명, 생리의학(physiology or medicine)·화학·경제학상은 각각 3명이었다. 그런데 왜 4명 5명은 없는 걸까. 3명 이하로 제한하는 전통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성과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be rarely clear-cut) 과학 분야에선 특히 억울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올해 물리학상은 질량을 부여하는 소립자의 존재를 예견한(predict the existence of the mass-bestowing particle) 피터 힉스 박사 등 2명에게 돌아갔다. ‘신의 입자'(God particle)로 불렸던 이 소립자는 이제 그의 이름이 붙어(bear his name) ‘힉스 입자'(Higgs boson)로 통한다. 하지만 힉스 이론이 게재된 같은 저널에 비슷한 논문을 제출한 다른 과학자들도 있었다. 내용은 더 포괄적이었다(be more comprehensive). 그러나 몇 주 늦게 게재됐다는 이유와 수상자는 3명 이내로 한다는 관행 때문에 제외됐다.
지난해 7월 대형 강입자 충돌 실험을 통해 힉스 입자의 존재를 입증, 힉스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게 해준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도 억울하다. 과학 분야 노벨상은 개인이 아닌 단체나 기구에는 수여하지 않는다는 전통 때문에 제외됐다.
그 반작용으로 노벨상위원회가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지면서 역효과를 가져왔다( bring about a reverse effect ). 천재 물리학자( a genius physicist ) 아인슈타인은 난해하다는( be recondite ) 이유 때문에 상대성 이론( the theory of relativity )으로 상을 받지 못했다. 천문학자( astronomer )인 찬드라세카르는 1930년대에 별의 구조를 규명했지만, 1983년에야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거부(巨富)가 된 노벨이 상을 만든 것은 동생 죽음이 계기가 됐다. 한 신문이 노벨이 사망한 것으로 잘못 알고 ‘죽음의 상인, 죽다’ 제목의 부고 기사를 게재했다( publish the obituary under the title ‘The Merchant of Death is Dead’ ). ‘그 어느 때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발견해 떼돈을 번( make a mint by finding ways to kill more people faster than ever before ) 노벨이 어제 죽었다’고 썼다. 이에 충격을 받아 자신의 이름을 딴 노벨상( the Nobel Prize named after himself )에 막대한 재산을 남기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노벨은 비서였던 베르타 킨스키라는 여성을 사랑했다. 평화주의자였던 그녀의 영향으로 평화상도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노벨의 청혼을 거절하고 옛 연인과 결혼해버렸다.
노벨은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죽을 때까지 세 여인을 사랑했다. 노벨의 사랑 ‘공동 수상자’도 3명이었다.
관조자/觀照者
2013년 10월 18일 at 9:41 오후
Economist의 이 귀중한 자료. 번역까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게다가 11,000원 save 했읍니다.
춥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