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독이 든 성배’를 마실지 축배를 들지 두고 보십시오.”
허정무 감독이 축구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직후인 2007년 12월26일, 서울 시내 한 호텔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었다.
‘독이 든 성배’ ‘축배’는 히딩크(네덜란드)-움베르투 코엘류(포르투갈)-요하네스 본프레레-딕 아드보카트-핌 베어벡(이상 네덜란드)에 이어 7년 만에 국내파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데 대한 주위의 우려를 일갈하는 말이었다.
허 감독은 17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1대1 무승부를 기록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화를 냈다. “허 감독은 예선용이지 월드컵 본선용이 아니다”는 설에 대한 질문에 발끈했던 것.
그 때도 그랬다. 대표팀 감독 내정이 발표되면서부터 “허 감독은 예선용”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외국인 감독들이 잘 해온 것을 국내파 허 감독이 이어 받았지만, 결국엔 ‘독이 든 성배’만 들이키고 다시 외국인 감독을 맞게 될 것이라는 비관이었다.
이후 허 감독은 자신의 별명인 ‘진돗개’의 진위를 가리는 ‘DNA 테스트’를 받기 시작했다.
“어깨에 힘들어 가서 게을러지고 사생활 문란해진 선수는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앞으로 축구 국가대표팀은 철저한 능력주의로 이끌어가겠습니다.”
허 감독은 “과거나 현재 명성만 믿는 선수들은 필요 없다. 골은 누가 1~2㎝ 더 앞서고 더 높이 뛰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무명 선수라도 자질이 있고 부지런히 개인 훈련을 하는 선수들에겐 모두 기회를 줄 것”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이번 최종예선 8차전까지 대표팀 물갈이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허 감독은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 “어항에 든 물이 혼탁해졌다고 한꺼번에 갈아버리면 고기들이 죽어버리는 경우가 있다”며 차근차근 K리그의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발굴해 ‘어항’에 집어넣겠다고 했었다.
허 감독의 속내를 들여다보려면 그가 인상 깊게 읽었다는 ‘더 골’(The Goal)이라는 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책은 축구와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이다. 소설 형식의 기업 경영서다. ‘골’은 축구의 골이 아니라 기업의 ‘목표’를 말하는 제목이다. 허 감독은 마치 자신이 책의 주인공이 된 심정이라고 했었다.
주인공은 생산성 악화와 품질 저하로 폐업 위기를 맞은 공장에 새로 부임한 공장장이다. 사령장 갈피에는 3개월 내에 흑자경영으로 전환시키지 못하면 공장 문을 닫아버리겠다는 시한부 통지서가 끼워져 있었다.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나.’ 시장 변화를 아랑곳 않고 마냥 그대로인 생산라인과 공정, 고비용 저효율, 매너리즘과 비관주의, 직원들 간의 갈등. 허 감독은 주인공이 온통 문제투성이였던 공장을 어떻게 최고 생산성을 가진 공장으로 살려냈는지 읽고 또 읽었다고 했다.
“국가 대표팀 감독도 적재적소 투자로 최대 이윤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기업 CEO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과 선수들에게 최대 이윤은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고 사기를 높이는 좋은 성적이겠지요.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발굴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팀을 운용하는 것이 감독의 인사정책·경영전략이고요.”
허 감독은 “나는 출근 전부터 근무 준비를 하라고 다그치는 악랄한 CEO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경기를 마치고 들어온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한다”면서 “하지만 실제로는 극소수”라고 말한다.
“전·후반 90분 내내 열심히 뛰었다고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다”는 얘기다. “경기에 앞서 상대팀을 연구하고, 먹는 것부터 쉬는 것까지 신경 쓰며 컨디션을 조절하다가 경기장에 나가 혼신의 힘을 다해야 비로소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허 감독은 선수들에게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에 관한 책에서 읽은 내용을 종종 들려준다고 한다. “타고난 재능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기 위해서는 부단한 연습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병원에서 가장 조용한 곳은 영안실이다. 응급실에서는 생존과 치료를 위한 온갖 소리들이 급박하게 울려 나온다. 자네들은 영안실과 응급실 중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허 감독에게 “시대 상황에 따라 지장(智將), 덕장(德將), 용장(勇將) 등 요구되는 지도자 유형이 다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현재 우리 대표팀 상황으로 봤을 때는 세 가지 스타일을 모두 합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 가지 지도력만 고집하다 보면 어느 구석에선가 부작용으로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염려했다. “나는 좋은 성적이 나오면 모두 선수들의 공으로 돌릴 것입니다. 나는 ‘운짱’(運將)이었다는 소리만 들어도 만족할 것입니다.”
허 감독의 별명은 ‘진돗개’다. 함흥철(2000년 작고) 전 대표팀 감독이 고향이 전남 진도인 당시 허정무 선수에게 “진도야! 진도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어느 날 함 감독이 “야, 허정무. 너 오늘 나가서 잘하면 진돗개 되지만, 잘못하면 똥개 된다”고 독려한 것이 별명으로 굳어졌다.
허 감독은 “천연기념물 53호인 진돗개 별명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진돗개는 영리하고 용맹하면서 주인을 절대 바꾸지 않을 만큼 충실합니다. 주인 역할을 하는 병사가 제대하고 나면 다른 병사 말은 듣지 않아 군용견으로 못 쓴다고 해요. 국민 여러분의 한국 축구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 진돗개 같은 충실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리허브
2009년 6월 19일 at 12:03 오후
진도개,충성,열정,화합,포용,실력,겸손,비전,적재적소,인재발굴,혜안을 가진 고승….이것이 허정무 감독님의 이미지입니다.한국 축구! 세계에 우뚝 세울 허 감독님의 탁월한 지도력을 기대합니다.꼭 외국인 감독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격파해주세요. 사랑합니다.허감독님!!! 허감독님이 이끄는 한국 대표축구단에 부처님의 자비가 언제나 함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