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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빌 게이츠는 어린시절 막무가내 골칫덩어리” - 윤희영 기자의 뉴스 잉글리시(News English)
“빌 게이츠는 어린시절 막무가내 골칫덩어리”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업체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운 빌 게이츠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대들어 아버지가 물컵의 찬물을 얼굴에 끼얹었을(throw a glass of cold water in his face) 정도로 제멋대로인 아이(a headstrong boy)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이츠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 시니어는 아들을 어떻게 세계 최고 부자(the richest man in the world)이자 최대 개인 자선재단(the world’s largest private philanthropy) 설립자인 소프트웨어의 거물(the software mogul)로 키워냈는지를 내주 출간될 새 회고록에서 소개(share stories in his new memoir)한다고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이 24일(현지시각) 전했다.

<동영상 출처: http://online.wsj.com>

신문에 따르면, 게이츠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는 아들이 유명 인사가 되기 오래 전부터 존경 받는 변호사이자 지역 유지(a respected lawyer and community leader)로 살아왔다. 신문은 그러나 “게이츠의 아버지는 변호사나 지역유지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최대 자선재단(the biggest philanthropy foundation of our time)이 출범하는(get off the ground)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아버지로 후세에 알려질(will be known to posterity) 것”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한 예로 ‘물 사건’(the water incident)을 들었다. 게이츠는 12세 때인 어느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at the dinner table) 어머니와 심한 말다툼을 벌였고(have a severe argument with his mother), 급기야 아버지가 물잔의 물을 게이츠에게 퍼붓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게이츠 가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건으로 남아있다. 그 극적인 상황 때문만이 아니다(not just for its drama). 그의 이름을 딴 같은 이름의 유명인사(게이츠) 아버지(father of his famous namesake)가 흥분했던(lose his cool) 거의 유일한 경우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와의 말다툼 사건은 거칠었던 소년의 인생에 전환점을 예고(presage a turning point in the life of a tempestuous boy) 하는 사건이 됐다. 오늘 날의 그 유명한 빌 게이츠가 되가는 방향으로 그 소년을 세워주는(set the boy on course to become the famous Bill Gates) 계기가 됐다.

게이츠는 11세쯤 됐을 때부터 갈수록 가족의 골치덩어리가 됐다(become an increasing headache for the family)고 한다. 사사건건 불만을 나타내고, 어머니에게 대드는 일도 잦아졌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삶에 굉장히 신경을 쓰면서도(while very involved in his kids’ lives) 감적적으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be somewhat distant emotionally) 스타일이었다. 말을 조심스럽게 골라 써야 하는 변호사 성향과 어우러진(be combined with a lawerly bent for carefully choosing his worlds) 그의 품성은 때때로 그를 무서워 보이게 만들기도(make him intimidating at times) 했다.

‘물 사건’ 직후 집안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아들 게이츠는 학교에서 돌아와 조용히 저녁식사만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고 게이츠의 누나 크리스틸 블레이크는 말한다. 아버지는 시애틀 법률회사에서(at a Seattle law firm) 커리어를 쌓느라(build his career at a Seattle law firm) 많은 일상적인 자녀 양육은 아내에게 맡겨(leave much of the day-to-day parenting to his wife) 놓은 상태였다.

빌 게이츠 성공 스토리 뒤에는(behind the Bill Gates success story) 아버지 뿐 아니라 어머니의 노력도 숨겨져 있다. 은행가의 딸로 태어나 공부는 물론 운동에도 뛰어났던 게이츠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공부뿐 아니라 스포츠, 음악도 열심히 배우도록 이끌었다.

부유하고 유복한 집안에서 배운 자신의 훈육 방법을 반영하는(reflect her upbringing in a well-to-do family) 규율을 자녀들에게도 가르쳤다. 옷을 단정히 입고(dress neatly), 시간을 잘 지키며(be punctual), 집을 방문하는 많은 어른들과 잘 어울리도록(socialize with the many adults who visit their home) 유도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 대해 큰 기대감을 갖고(have high expectations of all her children) 있었다. 성적 같은 그런 것들 뿐 아니라(not just grades and that sort of thing)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how to behave in public) 할 것인가도 일일이 가르쳤다.

게이츠는 어려서부터(at an early age) 뭐든지 열심히 배우는 아이(a diligent learner)였다. ‘월드 북 백과사전’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read the World Book Encyclopedia series start to finish) 정도였다. 부모는 그가 원하는 책이면 어떤 것이든 사줘서 독서 욕구를 북돋워(encourage his appetite for reading) 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게이츠가 사람들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seem to prefer books to people)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부모는 그에게 파티 때 인사를 하도록 종용함으로써 그런 경향을 조절해주려고 애를 썼다(try to temper that streak by forcing him to be a greeter at their parties). 아버지의 공식 연회 행사에서 웨이터(a waiter at his father’s professional functions) 일을 하게도 했다.

게이츠는 11세가 되면서 지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start to blossom intellectually) 했다. 부모에게 국제문제, 비지니스, 삶의 본질 등등에 대한 질문들(questions about international affairs, business, the nature of life and so on)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 것이 꼭 반가운 현상만은 아니었다. 그를 컨트롤하려는 어머니의 본능을 들이받는(push against his mother’s instinct to control him) 일이 잦아지면서 의지의 싸움을 불러일으켰다(spark a battle of wills). 깨끗한 방(a clean room), 저녁식사 자리에 제 시간에 오기(being at the dinner table on time), 연필을 이로 깨물지 않기(not biting his pencils) 등 어머니가 기대했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갈등의 큰 원인으로 변해(suddenly turn into a big source of friction) 버렸다. 어머니와 아들이 폭발적인 말다툼으로 빠져(fall into explosive arguments) 들곤 했다.

이런 가운데 아버지는 중재자 역할을 했다(play the role of peacemaker). 두 사람을 떼어놓고(break them apart) 일을 진정시키곤(calm things down) 했다. 하지만 갈등은 게이츠가 12살 때인 어느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최고 정점에 달했다(reach a climax at dinner one night). 게이츠가 고함을 지르며 어머니에게 대들자 아버지의 흔하지 않은 노여움이 폭발(a rare blast of temper)해 아들 얼굴에 물잔을 퍼붓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게이츠를 치료 전문가에게 데리고 갔다(bring their son to a therapist). 아들 게이츠는 “당시 나는 상담원에게 ‘나는 내 부모와 전쟁 중’(be at a war with my parents)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에게 말했다.

상담원은 게이츠 부모에게 “결국엔 아드님이 싸움에서 이기게 될 것(will ultimately win the battle)”이라며 “남은 가장 좋은 방법은 아들에 대한 감독을 완화해주는(ease up on the son) 것 밖에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아버지는 그 때서야 자신의 비슷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자신의 아버지도 가구 가게 일 때문에 자식 양육을 희생시킨(sacrifice child-rearing to work at his furniture store) 일 중독자였던 것이 기억났다.

게이츠 부모는 마침내 다른 사람들의 교육 방식을 따르기로(ultimately take a page from other people’s upbringing) 했다. 한 발 물러섰다(back off).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사립학교에 게이츠를 입학시켰고, 여기서 게이츠는 컴퓨터를 발견하기에 이르른다.

이와 관련, 게이츠는 “그 때 이후 ‘내 부모와 관련된 지위를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구나(don’t have to prove my position relative to my parents)’ ‘이젠 내가 세계와 관련해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기만 하면(just figure out what I’m doing relative to the world) 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회고한다.

13세 이후 게이츠에겐 보기 드물었던 독립이 주어졌다(be given rare independence). 집에서 떨어져 많은 시간을 보내게(spend chunks of time away from home) 됐다. 워싱턴대학에선 자유롭게 컴퓨터 사용을 즐기며 몇 날밤을 지새기도(take off some nights to enjoy free use of the computers) 했다. 이 것이 훗날 게이츠가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드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게이츠 부모는 어떤 간섭도 하지 않으며 돕는 역할들만 하는데(only play supporting roles) 했다. 아들이 치열한 비지니스 세계에 뛰어들어 성공했을(jump into and thrive in the cutthroat business world) 때에도 조용한 상담역(a quiet counselor)이 돼 주는 것에 그쳤다.

엄청난 부(huge wealth)가 아들에게 새로운 중압감을 주는(put new pressure on the son) 것을 본 아버지는 아들이 지금은 세계 최고 개인 자선재단이 된 ‘빌 앤 게이츠 자선재단’을 시작하도록 조언을 해줬을 뿐이다.

올해 83인 아버지는 아들의 300억 달러(약 40조원) 규모 자선재단의 공동 회장(co-chair of his son’s $30 billion philanthropy)을 맡고 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피해 다니고(avoid the spotlight) 있다. 재단의 공식 이력 외에(beyond his official biography at the foundation) 그의 삶에 대한 공적인 세부자료(the public details of his life)는 발표된 것이 거의 없다. 재단 공식 이력에는 시애틀 변호사(a Seattle lawyer),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World War II veteran), 비영리 자원봉사자(nonprofit volunteer), 세 자녀의 아버지(father of three)라는 것이 전부다.

아버지는 내주 출간될 짧은 책에(in a short book to be published next week) 삶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정리해(compile his thoughts on life) 놓았다. 아들 게이츠의 컴퓨터에 대한 초기 관심(his early interest in computers)이 부분적으로는 가족 위기의 결과로 생겨났던(come about partly as a result of a family crisis) 것이라는 사실도 밝힌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가족 내에서 때때로 일어났던 규율과 자유의 충돌 힘(the sometimes colliding forces of discipline and freedom within the clan)이 소프트웨어 거물 게이츠의 성격을 형성하게(shape the software mogul Gates’ character) 된 과정도 소개된다.

키가 1?인 아버지는 아들보다 거의 머리 하나 정도가 더 크다(be nearly a full head taller than his son). 그는 아들보다 더 사교적인 것으로 알려져(be known to be more social than the younger Gates)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들 인생에 미친 역할을 낮춰(play down his role in his son’s life) 말하곤 한다.

현재 아들이 설립한 자선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아버지는 “아버지로서(as a father) 내 집에서 내 음식을 먹고 내 성을 따라 사용하면서 자라난 따지기 좋아하던 그 어린 소년(the argumentative young boy who grew up in my house, eating my food and using my surname)이 나의 장래 고용주(my future employer)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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