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성에 관해 가장 굳게 자리 잡은 관념(
the most firmly entrenched notion) 중 하나는 울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는 모름지기 평생 딱 세 번, 태어날 때와 부모 돌아가셨을(
pass away) 때, 나라를 잃었을(
lose their country) 때만 운다고 했다.
그러나 옛날엔 남자가 우는 것도 통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다(be regarded as normal). 남자가 남들 앞에서 눈물 흘리는(weep in public) 것을 여자 같다거나 수치스러운(be feminine or shameful) 짓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이런 세태는 중세까지 이어졌다(continue into the Middle Ages). 기사(騎士)와 수도승들이 흐느끼거나 울음을 터뜨리는(sob or burst into tears) 것은 충성심이나 신앙심을 표출하는(display their loyalty or piety) 신실한 몸짓으로 받아들여졌다.
출전(出戰)을 앞둔 기사가 여자 어깨에 기대 우는(cry on a lady’s shoulder) 장면도 아주 흔했다(be commonplace). 심지어 왕들이 눈물을 흘린 경우도 정사(正史)에 남아 있다. 훌쩍거리는 것에 역겨워하기는커녕(instead of being disgusted by this snivelling) 갸륵한 감정의 표현으로 여겼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것이었다. 일본 사무라이들도 충성을 맹세하며(pledge fidelity) 소매가 흠뻑 젖도록(be drenched) 보란 듯이 울곤(cry demonstratively) 했다.
남자의 눈물이 언제부터 감춰지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봉건 농경사회(
a feudal, agrarian society)에서 도시 산업사회(
a urban, industrial society)로 넘어온 18~20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 과거엔 태어나서부터 평생 아는 사람들 속에서만 살았다. 하지만 점차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존해야 하는 환경이 됐다. 공장이나 사무실에서의 감정 표현(
emotional expression)은 시간 낭비로 치부됐다(
be conceived as time-wasting). 생산성 제고를 위해 감정을 억눌렀다(
suppress emotion with the aim of boosting productivity). 이후 남자들은 나약하고 무능한 인물로 낙인찍히지(
be branded as a feeble-minded and incompetent one) 않기 위해 울음을 삼키게 됐다(
gulp down tears).
예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다(요한복음 11장35절). 링컨 전 미 대통령은 “나는 울면 안 되기(must not cry) 때문에 웃는 것”이라고 했다. 남자의 울음은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강해지기 위해 너무나 오랫동안 애써 참아왔다는(force back too hard to be strong for too long)표시라고 했다.
여자는 give(주다)만 하고 forgive(용서하다) 하기만 하는데, 남자는 get(얻다)만 하고 forget(잊다) 하기만 한다는 말이 있다. 아니다. 남자는 beget(아비가 되다) 해서 가족 부양하느라 fidget(안절부절못하다) 하면서 nidget(바보)가 되고 midget(난쟁이)가 되면서도 울음을 삼키는데, 여자들은 그걸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