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때 누나와 함께 미국으로 입양된 후 채찍질을 당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다(undergo all sorts of hardships). 토사물을 먹게 하고 머리를 벽에 처박고(slam his head against walls), 개들에게 물게 했다. 그나마 파양을 당하고 누나와 각각 다른 가정으로 재입양됐다. 결국 구걸로 연명하는(subsist by begging) 노숙자가 됐다.
생모(biological mother)인 권필주(61)씨는 경북 영주에 살고 있다. 지난해 MBC 다큐 프로에 아들 사연이 소개되기 전까지는 미국으로 입양됐는지도 몰랐다. 유전자 감식을 통한 친자 확인을 하고(confirm blood relationship through DNA testing), 화상 통화도 했다. “엄마”라는 한국어 한마디를 하면서 “나는 언제나 엄마의 아들이고, 엄마의 살과 피”라고 영어로 말했다. “같이 굶어 죽더라도(starve together) 함께 살았어야 했는데,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commit an unforgivable sin)”며 눈물을 훔쳤다(wipe away tears).
권씨는 어렸을 적에 침을 맞았다가(receive acupuncture therapy) 왼쪽 다리가 마비됐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는 뇌성마비(cerebral palsy) 남자에게 줘버렸다. 1년 후쯤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려 1녀2남을 낳았다. 걸핏하면 두들겨패더니(beat her up) 나가버렸다. 생계가 막막해져(be at a loss over how to make ends meet) 막내아들은 자식 없는 집에, 세 살이던 크랩서와 큰딸은 보육원에 맡겼다. 이후 한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며 입에 풀칠을 했다(earn her living).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이들 목욕시킬 물을 마을 우물에서 떠오다가(fetch water from the village well) 마비된 다리 때문에 너무 많이 흘려 수없이 오갔던 일, 아이들이 간장에 비빈 밥을 허겁지겁 먹던(devour steamed rice mixed with soy sauce) 모습 등 아픈 기억과 흑백사진(black-and-white photos) 몇 장뿐이다.
권씨는 아들이 추방돼 올 것에 대비해 영어 공부를 해왔다. 두 문장을 열심히 외웠다. “I am terribly sorry(엄마가 너무 미안하다). I owe you a lot of love(너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빚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