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선 요즘 온 국민이 한 집단 매장지 발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be on the watch for the exhumation of a mass grave) 있다. 저항운동의 영웅 비톨드 필렉키의 유해를 찾아내(locate his remains) 억울한 넋을 달래줄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고(eagerly look forward to comforting his victimized soul) 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 제2차 세계대전을 촉발했을(trigger the start of World WarⅡ) 당시 필렉키는 38세였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잔혹 행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see with his own eyes the atrocities in the Auschwitz Concentration Camp) 전 세계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선 자발적으로 수용소에 들어가야(volunteer to get inside the camp) 했다. 자연스럽게 나치의 길거리 검거에 걸려들었다(spontaneously walk into a Nazi street roundup).
수인(囚人)번호 4859번. 3년 가까이 중노동, 구타, 추위, 장티푸스 등을 견뎌내며, 맞아 죽거나 총살 또는 가스 처형 당한(be beaten to death, executed by gunfire or gassed) 수감자들 소식을 몰래 내보냈다(smuggle out). 그의 간결한 급보 전달은 수용소를 나가는 수감자 옷 안에 꿰맨 얇은 종이쪽지를 이용하거나(take advantage of slips of thin paper stitched inside clothes of inmates leaving the camp) 근처 들판에 떨어뜨려 외부 사람들이 가져가게(leave them in nearby fields for others to collect) 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쪽지는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에도 전달됐다(make it all the way to Poland’s government-in-exile in London).
그를 죽인 것은 나치가 아니었다. 수용소 내 활동이 발각되기 직전인 1943년 4월, 수용소 철조망 울타리 밖에 있는(be outside the camp’s barbed wire fence) 빵공장에서 야간 교대근무 중 탈출하는 데(run from a night shift) 성공했다. 하지만 4년 뒤, 전후(戰後) 폴란드 공산정권의 정보기관에 체포됐다. 소련이 폴란드 국민의 정체성과 역사의식을 말살하고(erase any sense of Polish identity and history) 저항운동을 진압해 종속시키려고(subdue the Poles by crushing resistance) 온갖 짓을 일삼을 때였다. 그는 요인 암살 모의라는 날조된 혐의로 처형을 당했다(be executed on trumped-up charges).
손톱은 고문으로 모두 빠진(be all ripped out by tortures) 상태였다. 늘 꼬꾸라져 있었다(be slumped).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쇄골을 부러뜨려놓았기(break his collar bones) 때문이다.
그는 처형당하기 직전 만난 아내에게 말했다. "나 더 이상은 못 살겠소(can live no longer)."
아우슈비츠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던, 세상에서 가장 용감했던 영웅은 그렇게 죽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