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버겁거든(be beyond your capacity), 혼자만 이리 힘든가 지치거든, 재래시장이나 버스터미널 대합실에 가보자. 숱한 우여곡절을 안고도(bearing so many vicissitudes of life)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어느새 기운을 차리게(pick up heart) 된다.
미국 미주리대 심리학자 케네스 베일 박사는 공동묘지를 거닐어보라고(go for a walk in a cemetery) 권한다.
언젠가는(some day or other) 우리도 모두 죽음을 맞이해야(have to face our own demise) 한다.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fears over the inevitability of death)은 부정적 태도와 해로운 행위로 이어질(lead to negative attitudes and harmful behaviors) 수 있다.
바꿔말해(to put it in another way) 편견과 탐욕에서 폭력에 이르는 모든 것을 부추기는(fuel everything from prejudice and greed to violence) 파괴적이고 위험한(be destructive and dangerous) 생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에 대한 배려심도 깊어진다(enhance consideration for others). 연구팀이 연기자들로 하여금 공동묘지 안과 밖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각각 노트북을 떨어뜨리게 하고 관찰한 결과, 묘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는 비율이 40%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죽음에 대한 높아진 자각(the heightened awareness of death)이 더 많은 인내심, 평등의식, 연민, 감정이입, 평화주의를 표출하도록 동기 부여를 하기(motivate increased expressions of tolerance, egalitarianism, compassion, empathy and pacifism) 때문이다.
죽음은 삶이 "당신은 해고됐다(you are fired)"고 통보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해고’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내일 죽을 것처럼(as if you were to die tomorrow) 오늘을 열심히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as if you were to live forever) 부지런히 배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