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션 일레븐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종말을 다룬 책들과 영화들을 그동안 읽고 봤지만 이 책은 그런 범주에서 좀 특이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종말 전과 종말 후의 세계가 서로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보이면서 내뿜는 이야기들은 ‘로드’란 책과 비슷함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로드에서 보이는 삭막한 분위기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의 모습들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어떤 특정한 장르를 표방하기는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이야기를 보인다.
유명 배우인 아서가 리어 왕 연극 도중에 심장마비로 쓰러진 그때, 한쪽 병원에선 조지아 독감이라 불린 병으로 인해 사람들이 손 쓸 힘도 없이 모두 죽게 되는 일들이 벌어진다.
이로 인해 전 인류가 멸망하게 되고 세상은 문명 종말이란 것을 맞게 되지만 이 가운데서 생존자는 살아 남아 삶을 지탱하며 살아간다.
20년이 흐른 후의 생존자들 중에는 아서와 함께 공연했던 여자 아이가 자라서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라는 문장을 마차에 달고 공연을 하는 연극단에 동참하면서 그들은 언젠가 말로만 듣던, 아니면 먼 기억 속의 흐릿한 감각을 지탱하면서 ‘문명 박물관’ 쪽으로 행로를 향해 가게 되는데….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각양각색의 편리한 문명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몰랐다가 모두가 흔적조차도 없어졌을 때의 소중한 가치를 느끼게 해 주는 일렬들의 모습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며, 이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해도 여전히 인간들의 삶 자체는 진행이 된다는 점이 다른 소설에서 보는 암울한 미래의 모습과 비교되는 책이기도 하다,
문명 박물관이란 것이 바로 독감으로 인해 비행기가 연착되어 공항에서 머물거나 이웃해 있던 사람들이 놓고 간 우리들의 실 생활에서 보던 물건들로 전시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사뭇 이색적으로 다가오게 만들며 타 책에서 보이는 생존을 위해 서로 죽이고 다투는 장면 없이 천천히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 종말 후의 풍경과 더불어서 잔잔함마저 전해주는 책이기에 기억에 남게 한다.
멸망했다고 남겨진 자들도 죽어야 하는가? 아니면 무엇을 위해 인간들은 지속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삶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를 연신 묻게 되는 이 책은 삶이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고, 이에 순응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란 느낌을 주는 책이다.
어린 소녀가 아서에게 선물 받았던 만화가 그려진 ‘스테이션 일레븐’이란 책이 이 책과 연관된 인물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계속 이어지는 여정 또한 우리네 인생행로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의 마침을 다하는 순간까지 우리들은 열심히 삶이 주어진대로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일상의 보통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를 느끼게 해 주는 책…
각 분야에서 찬사를 받았던 책인 만큼 기존에 접했던 디스토피아를 연상해 책을 읽게 된다면 그런 류가 아니기에 실망할 수도 있겠으나 다른 의미로 느낄 수 있는 책이란 점에서 디스토피아의 다른 분위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색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