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체온증

저 체온증저체온증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지음, 김이선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장르를 불문하고 요즘엔 어떤 특정 문학에 대한 기호도가 독자들 사이에선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특히 영미 문학권이 주는 권위와 파워를 생각한다면 한국의 다양한 문학세계의 범주는 그 분야의 다양성이 예전에 비해 훨씬 폭이 넓어졌음을 느낀다.

 

이런 와중에는 북유럽 소설이 차지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느낌이 이번 작품을 대하면서 또 한 번 절실히 다가오게 만들었는데, 사실 국내에서는 다른 책들이 이미 출간이 되었지만 절판이 된 것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의 작품이다.

 

척박하고 지구가 태동된 이래 제대로 된  최초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를 상상해보게 된다는 아이슬란드-

내게는 타 작가의 작품을 대한적은 있었지만 이 작가에 대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유럽 경찰 소설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의 장편소설이라고 소개가 되었는데, 제목이 주는 첫 뜻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다.

 

사실 추리소설이란 형식을 갖춘 책들을 좋아하고 대하다 보면 대강 어떤 흐름에 짜인 패턴들이 눈에 익고, 다음 장면이란 것에서는 상상의 이미지가 대강 맞는 부분들이 있지만 이 소설은 그런 상상에서 벗어난다.

 

뭐랄까?

좀 다르다는 표현이 정확히 맞게 표현됐다고 나 자신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하는 그 어떤 신선함의 구성, 그 안에서 살아나는 주인공과 주위의 인물들의 사연들을 접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 자신도 동화되어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주인공 형사 에를렌뒤르 시리즈로 알려진 이 소설은 이미 북유럽 추리에서 가장 인정받고 권위 있는 유리 열쇠상을 연속 2번 수상했다는데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과 고통, 심리적인 상실감을 같이 느껴갈 수 있게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는다.

 

 

마리아란 여인이 자신의 별장에서 목을 맨 채 자살한 사건이 벌어진다.

절친인 카렌에게 별장을 빌려주기로 약속했다는데, 막상 친구가 가보니 이런 사태가 벌어졌던 것.

 

병으로 사망한 엄마와는 유별난 유대관계를 맺고 있던 마리아는 엄마의 죽음 이후 계속적으로 엄마를 그리워하며 죽음의 이후 세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남편의 말에 수사는 자살이란 결론으로 내리고 그녀는 화장된 채, 사건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절친인 카렌은 이후 에를렌뒤르를 찾아가 결코 마리아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란 점에 의심을 두게 된 배경과 마리아가 영매를 찾아가 목소리를  담은 테이프를 건네게 되면서 에를렌뒤르는 혼자 본격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언뜻 보면 책은 이 사건에 대해 중점적으로 수사의 진행방향을 잡기도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책은 이 사건 외에도 이미 몇십 년이 지난 두 남녀의 실종 사건들을 함께 수사하면서 형사의 개인적인 아픔까지도 같이 보이는 장치를 활용한다.

 

자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는가에 대한 조사는 사실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남겨진 자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볼 때 이 책은 사건이 발생하고 그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아픈 상처와 심리 위축과 자책감, 그리고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외로운 싸움을 에를렌뒤르가 맡은 사건을 통해 섬세하게 그린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실종이 되었다는 아들, 또 다른 여대생의 실종 사건은 ‘우연’이란 것에 초점을 맞추고 결코 사건에는 우연이란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느끼게 하는 마리아의 사건까지, 책은 형사 개인적인 가정사의 두 가지 아픔을 동시에 보이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한 순간 몰아친 파도에 휩쓸리고 그 파도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자신을 원망(부모 입장)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돈이 주는 유혹 앞에서 어떤 일들을 벌이는지에 대한 과정들을 차분히 묘사한 점이 인상적이다.

 

 

***** 에를렌뒤르는 우연의 일치를 다른 것과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경험상 그는 우연의 일치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우연은 의심 없는 개개인의 삶 속에 교묘하게 심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명칭이야 여러 가지 붙을 수 있겠지만. 에를렌뒤르가 몸담은 곳에서 그런 우연을 칭하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범죄.- p 272

 

 

그러고 보니 책의 표지를 다시 한번 들쳐보게 된다.

하얀 욕조에 얼음이 들어있고 수도꼭지가 있으며, 옆엔 온도계가 설정된 표지는 이 책에서 보이는 마리아와 그 외에 다른 사람이 겪었던 임사체험을 통해 인간으로서 궁금해하는 사후 이후의 세계는 존재하는지, 죽은 이로부터의 부름을 받게 된다면 그 세계는 어떤 과정으로 들어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 유발을 토대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는 점에서 이 책이 주는 여운은 위축된 심리와 고도의 의료 기술을 이용한 범인의 도덕적인 책임을 묻는 형식으로 기타 다른 추리 소설과는 확연히 다르게 받아들여지게 한다.

 

 

본인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든 간에 벌어진 살인사건의 실체가 밝혀지는 과정도 신선했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동시에 들어가 있는 심오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에 척박하고 광활한 대지가 연상되는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에서 온 이 작가에 대한 기대가 훨씬 커짐을 느끼게 된다.

 

어린 시절 자신만 살아남고 동생이 죽었다는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에를렌뒤르가 딸의 충고대로 과연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동생을 놓아줄 수 있을지, 또 다른 자신의 삶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의지를 갖고 산을 올랐을 것이란 희망과 함께 범인이되  범인이라고도 할 수없는  법의 빈약한 체계의 허점을 또 한 번 드러낸 책이 아닌가 싶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