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프라우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7월
표지가 의미하는 그림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정면이 아닌 뒤에 숨어 껴안고 있다는 것을 연상시키는 여인-
왜 정면으로 나서지 못하고 뭇사람들의 시선을 회피하려는 까닭이 있을까?
현대판 안나 카레니나를 연상시킨다는 이 책은 책 제목에서 의미하는 바와 같이 가정주부란 독일어다.
처음 이 단어를 대할 때는 융프라우의 말을 연상시켜서 아가씨의 변형처럼 느꼈으나 그보다는 가정 안에서 정착한 아내를 뜻하는 말이란 것을 알고 그 내용이 과연 어떤 전개로 이어질지 궁금하게 했다.
요즘은 외국인들과의 결혼이 많다. 흔하게 방송이나 이웃에서도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외국 사람들, 그 가운데서 특히 방송에서 나오는 패널들의 말을 들으면 우리에겐 친숙하고도 익숙한 모든 것들이 그들에겐 너무나 생소하고 어렵게만 느껴질 수 없는 환경에서 오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때로는 인상적으로, 때로는 과연 내가 그 먼 외국에서 생활해 나간다면 이렇듯 잘 적응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을 만큼 그들의 생활은 도전의 연속처럼 다가온다.
이 책에서 나오는 안나 벤츠는 서른 후반을 넘어선 미국 여성이다.
은행에 다니는 스위스 인 남편과 파티에서 술에 취해 첫 만남부터 관계를 가지고 결혼으로 직행,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둔 가정주부이자 세 아이의 엄마, 그리고 스위스로 이주하면서 그들 가까이서 살고 있는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그녀에겐 운전면허증도, 당연히 차도 없고, 은행계좌 자체도 없다.
말 그대로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그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 디틀리콘에서 출발해 일정한 거리에만 내려주면 기차를 타던가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매사에 잔정 없는 무뚝뚝한 남편, 그저 내 아들의 아이들을 낳아줬다는 여인으로 인식하는 영어 교사 출신의 시어머니,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스위스인들의 전형적인 기질을 가진 그들의 틈바구니 속에 한때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데 몰입을 하기도 하지만 이내 자신의 타고난 무기력감과 수동성에 의존한 성격으로 인해 모든 일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책의 구성은 안나의 시선으로 시작해 끝까지 안나의 시선으로 끝난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그려지는 내용의 구성은 안나의 태도에 지친 남편의 충고대로 정신과 의사인 메설리 박사의 상담과 그 상담을 통해 안나의 심경을 다른 쪽으로 선회해 보려는 박사의 충고대로 독일어 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사귄 스코틀랜드인 아치와의 불륜, 그리고 독일어란 언어를 통해 그녀의 고립된 심정을 드러낸다.
같은 독일어권이라고 해도 스위스인들이 사용하는 독일어는 정형화된 정통 독일어가 아닌 한 뿌리에서 흘러나온 다른 독일어이기 때문에 안나가 노력하려 해도 그 지역 사람들 만큼의 능숙한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는 한계,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었던 그녀 자신이 오로지 자신이 살아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 것은 불륜이었다.
끝이 없는 섹스라는 방황 속에서 자신이 그것을 통해 살아있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무언의 몸짓은 수위가 높게 표현이 되면서 남편의 고향 친구와도 동시에 불륜을 저지르는 걷잡을 수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을까?
남편에 대한 사랑이 아닌 우연히 만난 딸의 아버지 존재인 스티브와의 만남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갔던 안나의 삶은 그녀 자신의 생에 대한 무책임한 심정을 통해 읽으면서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타국에서 겪는 고립과 고독을 이런 식으로 해결하지는 않지 않는가?
자신의 적극적인 성격이 아닌 그저 수동에 의지해 모든 것을 내맡기며 괴롭던 순간순간들을 모른 척하려고 노력을 한 안나에 대해서 그녀가 저지른 불륜의 결과가 도저히 되돌길 없는 길로 들어섰음을 알게 될 때의 독자들은 정말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게 한다.
그녀가 사귄 친구 메리와도 대조되는 그녀의 삶, 같은 조건을 갖고 있었던 그녀들의 상반된 적응력과 마음 가짐은 비교되는 전개와 함께 그녀가 모든 남자들에게 자신을 던짐으로써 구원을 받으려 했지만 그마저도 진정한 사랑의 한 형태라고 생각했던 남자에게 자신이 생각했던 사실과 다르게 다가옴을 느끼고서야 모든 것을 깨우치는 일련의 과정들은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수동성의 결과가 이렇듯 극단적으로도 다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외로운 여자는 위험한 여자죠] 메설리 박사는 엄숙할 정도로 진지하게 말했다. [외로운 여자는 지루한 여자죠. 지루한 여자는 충동적으로 행동해요] – p 108
[한 번 실수는 삐끗한 것일 수 있죠.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한다고요? 그건 일탈이죠. 과실이예요. 하지만 세 번째?]
메설리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짓을 저질렀든 끝까지 저질러진 거죠. 당신의 의지가 작용한 거예요. 결과를 청한 거죠. 그 반향을] -p149
그래서였을까?
자신의 외로움과 지루함, 위험함을 모두 동반했던 그녀의 삶 전체는 실패한 인생으로 치닫게 되고 고전 안나카레니나를 연상시키도 했다.
시인답게 저자의 탁월한 묘사는 그저 성적에만 치우진 불륜녀만을 그리지 않고 한 여인의 내밀한 심리를 독일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동사의 변형에 비유한 글들,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을 통해 그녀가 드러내고자 했던 감추어진 진실의 패턴들을 통해 하나씩 껍질을 벗겨나가듯 종반부에 이르러서 그녀가 느끼는 통곡의 마음을 적절히 그려냈다는 데서 남다른 느낌을 전달해 준 책이기도 하다.
책 끝말 미에 안나 카레니나의 행동을 연상시키는 듯한 장면이 나오지만 이 또한 그녀의 결정이었음을, 그녀가 좀 더 이국적인 생활에서 오는 고독을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더라면 좀 더 다른 안나로 재탄생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전해 준 책이었다.
타국생활이 참 힘들지요.
언어 풍습 모든게 다르니 적응하기가 어려운데
가족애조차 없었으니…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이웃처럼 마음이 아프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