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17년 8월 13일

드림랜드

드림랜드드림랜드
신정순 지음 / 비채 / 2017년 7월

미국 하면 떠오르는 것이 나 어릴 적 사촌 오빠의 유학길이었다.

지금이야 가보고자 한다면 여행이든, 학업이든, 취업이든 비행기만 뜨면 갈 수 있는 나라가 됐지만 사촌 오빠가 가던 그 시절엔 (워낙 터울이 커서 무척 커 보였다.) 웬만한 사람들은 쉽게 유학 결정을 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더군다나 그곳에서 정착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민자들이라면 고국도 아닌 타국에서 자신의 나라처럼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큰 모험과 대단한 결심이 아니고서는 쉽게 적응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한국인으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삶의 모습을 투영한 작품이다.

총 5편이 수록된 중편으로 각각의 이야기들은 방송에서 접하는 성공한 이민세대의 이야기가 아닌 그곳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여러 가지 사연들을 간직한 채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묻혀 살아가는 사연들을 다룬다.

 

책의 첫 제목인 드림랜드-

말 그대로 드림랜드는 미국에 있는 것일까?를 생각해 본 내용이다.

뜻하는 말과는 달리 시카고 우범지대에 있는 곳으로 폭동이 일어나고 한국인들 대부분이 이 자리를 떠나갔지만 “나”는 교도소에서 도넛을 팔며 살아가는 사연을 그린다.

 

두 번째인 폭우-

한국인 유학생을 만나 몸이 부서져라 학업 뒷바라지를 하지만 임신한 상태에서 버림을 받는다.

두번째 남자는 밀입국자인 멕시코인, 자신에게 다가와 부부로서 살아가지만 차 사고로 중상을 입게 되고 공교롭게도 보험회사에서 진행한 이벤트와 맞물리면서 보험금 지급을 받기 위한 오해로 몰리게 되는 상황을 그린다.

 

세 번째인 선택-

10년 전 결혼해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해오던 중 엄마의 위독 소식을 듣던 ‘나’는 엄마의 임종을 가까스로 보게 되고, 이후 엄마가 남긴 수의를 보면서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 번째인 살아나는 박제-

미국에서 생계를 위해 통역일을 하던 ‘나’는 알고 있던 형기 형을 만나게 되고 자신이 우상처럼 여기던 형기 형에 대한 이미지와  형이 나병에 걸렸던 사실을 통해 종교와 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다섯 번째인 나마호의 노래-

미국에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어느 한 중년의 남자가 관광안내를 하는  ‘나’에게 가이드를 부탁해 오면서 같이 여행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여정을 원하는 남자, 그에겐 과연 어떤 사연들이 들어있을까?

 

전체적인 이야기의 톤은 가볍지만은 않은 현실적인 이민 세대들이 겪는 이야기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흔히 말하는 이민 가서 뼈 빠지게 일하다 보면 미국이란 나라는 그만큼의 보상이 돌아오는 나라란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사연들을 각각 들여다보면 어느 누구도 게으른 사람도 없을뿐더러 남보다 뒤지지 않을 만큼의 노력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다만 원치도 않은 제도적인 굴레, 환경에서 오는 불합리성에 따른 삶의 고난을 그려낸 각각의 삶들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여기가 진정 자신들이 꿈꾸는 드림랜드인지를 물어보게 한다.

특히 각 사연들 중에  남녀 간의 한국식의 차별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 식으로 고국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선택’이란 내용은 참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던 부분이라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모든 이들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미국이란 나라, 그 선망의 대상인 미국이란 드림랜드는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서 모든 힘든 역경을 극복하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게 한 책이다.

                                                                                                                          
                                            

드라이

드라이

드라이 – 죽음을 질투한 사람들
제인 하퍼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다른 나라의 언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그 의미가 그대로 전달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그 나라 고유의 언어 그 자체만으로도 훨씬  뉘앙스가 강하게 와 닿을 때가 있다.

 

이 책의 제목 또한 그렇게 받아들여져야 할 만큼 뭔가가 한국 말로는 그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100여 만에 나타난 지극한 가뭄, 그 안에서 농장들의 작물들, 동물들은 이미 말라가고 괴로움에 허덕이고 있으며, 사람들 또한 날카로운 신경으로 곤두세우고 살아가는 곳, 호주 안에서도 도시에서 떨어진 키와라가 바로  그런 곳이다.

 

가족단위의 생활을 영위해가는 사람들, 그 안에서 어느 집안사람이라면 바로 연상이 되고 탄생과 죽음까지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20년 전 엘리 디컨이라는 소녀의 죽음에 대해 살인범으로 몰리다시피 한 포크와 그의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이후 포크는 연방경찰로서 금융에 얽힌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이다.

 

그의 오랜 죽마고우인 루크가 자신의 집에서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그 자신은 집으로부터 떨어진 곳에 머리의 형체는 날아간 채 총을 입에 물고 죽은 사건이 발생한다.

 

– ‘루크는 거짓말을 했어, 너도 거짓말을 했지’

 

루크의 아버지로부터 전해받은 편지의 내용은 포크를 다시 어린 시절의 아픈 곳으로 데려가게 되고 장례식에 오라는 말을 거절할 수 없어 고향에 발을 내딛는다.

 

그가 과거에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건, 엘리가 죽었던 그 시간에 포크는 루크와 함께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진짜 범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마을 사람들의 증오에 찬 의심의 눈길, 엘리의 아버지인 멜 디컨의 집요한 행동과 말들은 결국 다시 루크의 죽음과 함께 원점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루크의 아버지가 결코 자신의 아들은 스스로 그렇게 가족들을 몰살시킬 만큼은 아니었다는 사실, 다시 수사를 해줄 것을 부탁받게 된 포크는 마을 경찰인 라코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데….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피해는 실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조그마한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마을이라면?

멜 디컨을 싫어하면서도 그가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섣불리 어떤 행동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 그의 딸 엘리가 죽었을 때 네 명의 친구들인 루크, 포크, 엘리, 그레천의 서로 얽힌 관계는 청소년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그 나이에 느끼는 사랑의 느낌, 친구로서 감싸주지 못했던 회한들이 현재와 과거를 회상하면서 동시에 진행이 되고 각자가 품고 있었던 비밀들이 밝혀지는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현재의 살인사건과 과거의 살인사건을 모두 해결해보려는 포크의 행동은 그가 내내 지니고 있었던 엘리에 관한 생각과 누가 범인인지를 알아가는 과정들, 루크에 얽힌 사건의 본질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설정들이 메마름 그 자체를 연상시키는 배경과 함께 물을 흠뻑 들이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자가 묘사하는 풍경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은 시종 건조하다.

 

– 거대한 강은 땅 위로 난 먼지투성이 흉터에 불과했다. 척박하고 텅 빈 강바닥이 길게 양쪽으로 이어졌는데, 구불구불한  강의 곡선은 물이 흐르던 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수백 년 넘게 깎여나간 빈 공간은 이제 찢어진 조각보 위를 바위와 바랭이가 덮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둑을 따라 울퉁불퉁한 회색 나무뿌리들이 거미줄처럼 드러나 있었다._p152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이 선택하는 최후의 보루는 과연 자연의 기후와 맞물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 활활 불타 오르는 듯한 뜨거운 뙤약볕의 느낌은 턱턱 막히는 설정과 함께 사건의 진상과 그 뒤에 밝혀지는 인간사의 쓸쓸한 죄의 형벌에 대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준다.

 

 

호주의 삭막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그린 이 책은 가족 간의 사랑, 오해, 두려움, 억울함, 진실이란 감정을 모두 드러내 놓는 작품으로써 이미 영화화 결정이 되었다고 할 만큼 삭막한 영상미가 어떻게 조화롭게 그려질지 궁금증을 유발한 책이다.

 

네가 알고 있는 비밀, 내가 알고 있었던 비밀, 왜 그 시절에 밝히질 못했었는지, 봉인된 기억 속에서 살아는 것이 차라리 편안한 삶인지, 아니면 진실을 알아버린 후에 남은 삶에 대한 또 다른 희망을 기약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 여전히 포크에게는 고향인 키와라를 향해 던지는 질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