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17년 9월월

거미줄에 걸린 소녀

거미줄거미줄에 걸린 소녀 밀레니엄 (문학동네) 4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많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 사이에서 ‘밀레니엄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내 주위에선 들어 본 적이 없고, 나 자신 스스로도 이 시리즈를 통해 북유럽권의 문학을 요 네스뵈와 함께 무조건 읽어줘야 하는 책으로 리스트 목록에 올린 바 있다.

 

그런 만큼 새롭고 독창적인 주인공의 캐릭터와 그와 함께 사건의 해결을 이루어나가는 또 다른 주인공의 결합은 이색적이고도 창조적이란 말로는 부족함을 느껴주는 책이다.

 

알다시피 이 밀레니엄 시리즈는 3 부까지가 원 저자의 창작물에 의해 태어난 작품들이다.

우연히도 집어 들어 읽게 된 책의 매력에 빠져 그 이후 새로운 출판사에서 다시 나오는 것도 모두 다시 읽었을 만큼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 저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내내 가시질 않게 했던 이 시리즈가 4부에서는 다른 필력을 자랑하는 자의 힘에 의해 새로움을 맞게 됐다.

 

원저자의 유족들이 선정한 작가, 이미 유명한 작가라서 그 작가의 입장이라면 일단 원작에 미치지 못한다면 자신의 필력에도 그렇지만 원 저자에 대한 미안함이라는 이중의 부담감을 안고 있었을 텐데 그 걱정을 말끔히 지웠다고나 할까?

우선적으로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의 감상이 그렇다.

 

이미 3부에 이르는 이야기들을 통해 사회와 국제적으로 얽힌  저변에 깔린 문제성 있는 것들을 리스베트란 이름을 가진 여주인공의 독특한 냉혹함과  밀레니엄이란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문제들을 집중 다루는 잡지에서 기고하고 있는 탐문 전문 고발 기자인 미카엘이란 남자 주인공의 활약은 여전히 살아있는 움직임을 잘 보인 작품이다.

 

천재적인 해커의 능력을 지닌 리스베트의 활약을 십분 이용해 다룬 이 책의 내용 또한 아주 흥미만점이다.

 

이야기는 세 갈래의 길을 크게 보이면서 등장한다.

 

스웨덴의 컴퓨터 공학자인 프란스 발데르는 미국의 솔리폰이란 회사에 스카웃되면서 자신의 전공을 살려 어떤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그렇지만 특허 신청을 앞두고 자신과 같은 프로그램이 이미 다른 회사에서 특허를 신청했고 이는 곧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이 해킹당했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고국에 돌아온다.

이미 양유권 박탁을 당했지만 자폐아인 아우구스트를 데려온 프란스는 보호해 줄 것을 당국에 요청한 상태, 한편 우리의 미카엘은 각지에서 나오는 비판으로 인해 긴 슬럼프에 빠져있다.

 

경영악화에 이어 밀레니엄을 인수한 회사의 교묘한 변화 자체를 하려는 움직임에 손을 쓸 수 없는 자신의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는 어느 날 자신에게 한 제보자가 말한 내용으로 인해 문득 리스베트를 생각하게 한다.

 

바로 프란스 밑에서 일한 부하의 부탁은 프란스의 사정을 들려주고  프란스가 어떤 해커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데, 바로 그 해커의 이미자가 리스베트를 연상시킨다는 것-

 

리스베트는 3부에서의 활약 이후 은둔 상태, 가깝다면 가까울 미카엘에게조차 그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는 상태에서 미카엘의 연락을 받게 되고 이후 이 셋은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책은 프란스의 죽음을 목전에서 목격한 서번트 증후군을 갖고 있는 아우구스트의 그림을 통해 사건의 암살자를 밝혀내는 과정 속에 프란스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과연 누가 훔쳐갔는가? 에 대한 범인 추적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산업스파이와 국가 간의 관계와 지원, 충성도의 기여도를 어느 선에 기준을 맞춰놓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도덕적인 갈림길들을 보인다.

 

날로 발전하는 컴퓨터의 인공지능 개발은 인간이 생각하는 진화의 속도를 머지않아 앞서게 될 수도 있다는 가상의 현실을 실제적인 현실 속의 모습으로 만들어낸다면 과연 인류는 컴 앞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 수 있을지, 프란스라는 과학자의 자신의 열정 어린 연구의 결과가 몰고 올 장. 단점 앞에서 고뇌하는 모습들이 책 속에서만 그려지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도 이러한 환경의 주도권을 가지고 앞서려는 각국의 치열한 산업전쟁을 연상시키는 장치로 이용된다.

 

미국의 NSA의 치밀한 컴을 이용한 모든 매체는 물론이고 각 개인들이 이용하는 통신들을 엿보는 행위들은 빅 데이터라는 틀 안에서 보이지 않는 감시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엿보게 한다.

어디까지나 국가의 이익을 취한다고 하는 행위이긴 하지만 그 행위 속에 또 다른 산업스파이의 행동은 러시아의 마피아와 연계되면서 개인 착취로도 번지는 행태, 그 가운데 리스베트의  다른 쌍둥이 여동생 카밀라의 등장은 두 자매의 불꽃 튀기는 대결 장면과 함께 풀지 못할 것 같았던 난해한 암호를 해독하고 그 안에 저장된 모든 내용들을 습득하는 리스베트의 뛰어난 실력은 여전히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현실세계에서 여성이 차지할 수 있는 위치의 한계성은 여전한 문제점을 제시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리스베트란 여성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는  가상의 현실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와의 대결을 통해 자신의 최고 실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고 NSA의 경계를 뚫고 해커를 하는 모습들은 통쾌감과 컴의 세계에 대한 흥미를 유발한다.

 

 

저자는 이렇게 유족의 뜻에 맞는 방향과 자신의 소신대로 4부작을 쓸 때 어떤 과감한 패턴을 지향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3권까지 이미 고인이 된 저자의 글을 기억하는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연결고리처럼 이어질 수 있게 3부에 이어 리스베트와 그녀의  어린 시절들을 다시 불러와 이 사건의 연장선을 이어가고, 그렇게 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이야기의 밀레니엄 시리즈가 아닌 서서히 물들어 가듯이 이번 4부는 새로운 이야기지만 또 다르게 보면 3부에 이은 미완의 해결 방식처럼 그렸기에 위험성의 부담에서 벗어난 안정을 우선적으로 중시하면서 작품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1.2.3부에 연을 맺은 등장인물들이 한두 컷 나오는 방식을 취하면서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데에 조연들로서 아낌없는 후원을 하게 한 저자의 뛰어난 이야기 구성 방식은 비록 1.2.3부를 읽지 않는 독자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 구성을 채택한 점이 한수 위란 생각이 든다.

 

여전히 기자로서의 탐색을 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잡아내는 미카엘의 기자로서의 촉은 여전하다.

서브자로서 동참하는 미카엘이란 존재는 리스베트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사람이며 그런 그들의 관계는 이성 간의 연을 뛰어넘는 인간애의 동지로서 느끼는 감정들이 훨씬 앞서는 듀엣의 조합을 보는 듯하다.

 

해커가 있다면 모든 것을 훔쳐낼 수 있고 변호사가 있으면 모든 도둑질을 정당화할 수 있다란 말을 제대로 알 수 있게 한 책의 이야기 구성은 양심적인 국가 안보 위주의 활동이라도, 설사 그것이 어떤 범죄 집단과의 연계를 통해 손을 잡고 일을 이루어 나갈 때 힘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통해 주도권을 잡기가 힘들다는 역설, 컴의 세계에서 미지의 해커로서 활동하는 리스베트 같은 인물들이 있다면 그나마도 세계의 질서들은 어느 정도 위험부담을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서번트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이 펼치는 뇌의 창대한 활동들을 보이는 여러 이야기들은 여전히 인류가 관심을 가지고 다루어야 할 것들이 아닌가도 생각해보게 하고 더군다나 두 자매의 끝나지 않은 맺음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과 기대를 모두 하게 한 작품이다.

 

이미 영화로도 나온 시리즈도 있지만 이 작품 또한 영화로도 나온다면 또 다른 재미와 흥분을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작으로 끝맺음을 맺을 뻔했던 이런 좋은 작품을 다시 다른 작가의 손에 이어지게 만든 저력도 부럽지만 이야기의 구성 자체도 좋았다는 사실에서 이 작품의 다음 시리즈를 더욱 기대해보게 만든 저자의 노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

부탁하나만들어줘

부탁 하나만 들어줘
다시 벨 지음, 노지양 옮김 / 현암사 / 2017년 9월

지인들의 부탁 하나만 들어줄 때 어떤 마음으로 들어주는지요?

사실 이것저것 재보면서  이익 타산을 계산하면서 들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만큼 우리들이 생각하는 나의 가까운 사람들의 부탁은 쉽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어떤 부득이 거절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가벼운 경우가 많을 테지만 이 책 속에 나오는 부탁은 결코 가볍게만은 볼 수가 없는 회오리를 일으킨다.

 

남편과 이복 남동생이 탄 자동차가 트럭을 피하려다 두 사람 모두 죽은 아픔을 가진 싱글맘 스테파니는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마일스란 아들과 함께 산다.

그녀의 유일한 낙이자 취미요, 자신의 생각을 같이 공유하는 사람들은 유치원 연령의 맘들과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과의 교류다.

 

이미 파워블로거로서 그 입지를 다지고 있는 그녀는 어느 날 아들과 같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니키의 엄마, 에밀리를 만나게 되면서 같은 아들을 둔 엄마이자 동료요, 친구로서 가깝게 지내게 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 때문에 더욱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며 사는 스테파니는 패션 회사에 다니면서 아들을 키우는 워킹 맘이자 잘생긴 영국 남자인 숀을 남편을 두고 살아가는 모습을 동경하며 그녀가 가진 모든 것들을 부러워한다.

 

서로 집을 오고 가며 생활하던 중 어느 날, 에밀리가 스테파니에게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라고 말한다.

출장으로 인해 집을 비우게 되니 아들 니키의 하교를 부탁하고 보살펴 달라는 말은 서로가 서로에게 해오던 일이기에 선뜻 수락한다.

 

하지만 에밀리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 시간은 계속 흘러 실종의 상태로 결국 숀이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는 절차를 거친다.

 

에밀리는 어디로 갔을까? 차량이나 항공 추적에도 나타나지 않는 행방불명의 존재가 된 에밀리, 니키와 마일스를 보살피며 스테파니는 자신이 올리는 블로그를 통해 심정과 에밀리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알려줄 것을 부탁하는 행동을 하게 되고 숀과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면서도 에밀리에 대한 애틋한 생각은 멈출 수가 없는 생활이 지속된다.

 

누구나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비밀을 있다는 설정을 갖고 있는 이 책은 요즘 유행처럼 출간되고 있는 도메스틱 스릴러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스테파니가 죽음까지 갖고 갈 자신의 비밀을 에밀리에게 털어놓았을 때 그 비밀은 이제 혼자만이 간직한 비밀이 아닌  동반자로서의 비밀을 알게 된 에밀리가 있었고 에밀리와 숀과의 무언의 비밀들은 스테파니와는 다른 또 다른 비밀들을 모두 갖게 되는 설정을 이룬다.

 

책은 세 명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다른 관점을 통해서 각기 어떻게 사건의 본질을 생각하고 있는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배신의 행위로 치닫는 과정과 말 한마디로 인해 물러설 수 없는 관계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설정들이 끔찍함을 드러낸다.

 

자신과 모처럼 뜻이 맞고 모든 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스테파니의 잘못된 생각일까?

어쩌면 스테파니 그녀 자신이 너무 외로웠고 자신의 뜻과 맞는 사람이 만나지 못하고 있던 중  에밀리를 만남으로써 자신이 보고자 한 부분만 봐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 책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중심의 근간을 이룬다.

 

-나는 그래서 그럭저럭 잘 지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타인과 분란 없이 잘 지내는 방법은, 말하고 싶지 않은 건 생략하고 커다란 거짓말을 해 가면서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p 363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에 대해 부부들은 얼마나 상대방에 대해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인지, 굳이 밝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부분들이 결국은 사건 자체의 도구로 활용이 되면서 나가 믿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진실이 섞인 부분이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심마저도 일으키게 되는 이야기의 구성이 흥미롭게 이끌어 나간다.

 

타인들이 보기엔 결코 할 수 없을 일을 진행시키는 계획도 그렇지만 계속 헤어 나올 수없게 만드는 절묘한 대화들의 잔치는 허를 찌름과 동시에 답답함을 보인다.

 

세상에는 권선징악과 선과 악이 있을 때 결국 선이 이긴다고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결과라고 생각할 때 이 책은 이 모든 것들을 뒤집는  진실이 무너지는 허무함과 박탈감을 느끼게 해 준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타인에 대한 생각들, 타인들이 바라보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들 중에는 과연 어느 부분들이 진실된 생각들일까?를 묻게 되는 책, 지금 이 순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둘러보게 된다.

 

첫 소설로 영화사로부터 콜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은 작품인 만큼 또 다른 스릴의 맛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할 것 같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바컨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올리브 키터리지’ 란 책을 접하고 다시 만나보는 작가의 신작이다.

보통 책을 읽으면서 어떤 커다란 줄거리 속에 포함된 주된 내용들을 따라가며 전개과정을 즐기는 편이기에 이 작가처럼 커다란 흐름의 변동 없이 잔잔한 물결처럼 흐르게 쓰인 글들을 읽노라면 이야기의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의 신작에 대한 목마름은 뭐랄까, 그저 스치듯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을 적절히 고루 배합해 가면서 보이는 그녀만의 글에 대한 매혹을 뿌리칠 수 없음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 또한 줄거리를 말하라면 어떤 큰 포인트를 꼬집어 내기가 쉽지 않은 그저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곁에서 들은 것이 아닌 읽는다는 느낌에 속한다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자신만의 인생 이야기를 지니고 살아간다.

인생의 최대 고비와 희로애락을 통해서 성장해가는 인생의 노선을 생각해 본다면 누구나 겪을 수 있었을 시대적인 배경과 함께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는냐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사실, 그렇기에 어쩌면 소설이 지닌 힘의 첫 시작은 인생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출발점으로 시작한다는 의미가 크게 부여됨을 느끼게 된다.

 

책은 ‘기억’이란 것에 의지하며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된다.

맹장수술과 뜻하지 않게 길어진 병원 입원의 생활을 하게 된 루시 바턴이란 여작가의 이야기는 그녀가 입원한 병원에 친정엄마가 병간호를 해주기 위해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서부터 진행이 된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차고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의 회상, 냄새난다고 손가락질당하는 한편 그런 환경에 처한 것을 몰랐던 부모, 게이인 오빠와 언니와의 학교 생활은 어린 시절의 아픔이자 성장하는 루시에게 있어서 이 곳을 벗어나게 된 주된 동기로 작용한다.

 

오로지 따뜻함을 간직하고자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숙제와 책 일기를 했던 루시, 덕분에 대학까지 진학하고 남편을 만나 두 딸과 함께 뉴욕이란 도시에서 살아가는, 타인들의 눈에 보기엔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가정의 모습이다.

 

하지만 루시가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서로 간의 쌓이고 쌓인 해포는 풀어보지 못한다.

그것이 부모와의 왕래를 끊다시피 하고 형제지간의 연락을 두절하고 살아가는 루시라는 여인에게는 하나의 환경에서 온, 그다지 친근했던 기억조차 없었던 가정의 분위기 탓과 엄마와 자신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오는 서먹함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다보게 될 기회가 있을 때면 어린 시절의 과거로의 여행 속에 좋았던 기억, 하고 싶지 않은 기억,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간직하는 기억들이 공존한다.

 

이 책에는 시대적인 흐름인 1980년대를 관통하면서 살아가는 루시가 있고 그 시대에서 일어나는 사회적인 변화와 그 이후에 벌어지는 9.11 사태까지를 관통하면서 그녀 자신이 알고 지냈던 이웃인 제레미가 동성애자란 사실과 그의 죽음을 알게 된 뒤늦은 사실, 남편과 끝까지 해후를 하지 못한 이혼의 아픔과 남겨진 딸들과의 왕래를 그리는 이야기들이 담담히 기억에 의존한 채 서술해 나간다.

 

내가 나 자신을 가장 잘 들여다보는 계기는 무엇일까?

어떤 계기를 통해서 이런 시간들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루시처럼 엄마에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도, 그런 애정 행동과 말에 호응을 보이지 않았던 엄마,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만나는 아버지와의 해후는 자신이 돌아보지 않길 원했어도 여전히 그녀의 삶에 침투해 있는 ‘가족’이란 의미를 버릴 수 없다는 사실, 가까이 느껴질 만도 했던 엄마였지만 속내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둘이 아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추억과 최근의 소식들을 통해 간간히 나누는 대화만이 유일했다는 사실에서 과연 루시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엄마 또한 루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를 하고나 있었을까를 물어보고 싶게 만든다.

 

사는 곳은 달라도 저자가 이전의 작품에서도 보였던 인간 중심의 이야기,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다각적인 방면의 이야기들은  미국에 한정된 것만이 아닌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느껴 볼 수 있는 글이란 생각을 해 본다.

 

–  “지금은 내 인생도 완전히 달라졌기에,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햇살이 내리쬐는 보도를 걷거나 바람에 휘는 나무 우듬지를 볼 때, 또는 이스트 강 위로 나지막이 걸린 11월의 하늘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이 갑자기 어둠에 대한 앎으로 가득 차는 순간들이? 예기치 않게? 찾아오기도 한다.” _p 21

 

루시처럼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엄마로서의 루시가 느끼는 자식에 대한 미안함은 가슴 한편이 뭉클하게 아파오게 만드는 인생의 이야기라서 인상적으로 남는다.

 

– 얼마 전에 크러시가 내 지금의 남편에 대해 말했다. “아저씨가 좋아요. 엄마. 하지만 아저씨가 잠을 자다 죽고 새엄마도 죽어서 엄마와 아빠가 다시 합치면 좋겠어요.” 나는 아이의 정수리에 키스한 뒤 생각했다. 내가 내 아이에게 이런 짓을 했구나. -p 217

 

인생이란 마냥 좋을 수만을 없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더욱 느낀다면 나이가 들었다는 탓만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 루시가 기억하고 있는 기억을 같이 더듬어봄으로써 나 자신의 인생 또한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사실,  기억의 한 조각 한 조각들이 모여 인생이란 커다란 모자이크를 이룬다는 점에서 여전히 저자가 그리는 이 책은 많은 공감을 받게 했다.

 

 

그렇기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  나 자신 스스로 알 수가 없다는 사실, 하물며 타인에 대한 잣대를 세우고 평가하고 이해하기란 어렵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기에 세상에 던져진 나 자신, 루시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는 루시 바턴이란 이름, 각자의 이름으로 세상을 향한 손길을 멈추어선 안될 것 같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어느 드라마의 제목처럼 내 이름은 김삼순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름을 걸고 인생을 더욱 뜻깊게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유토피아

유토피아유토피아
미나토 가나에 지음, 현정수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7년 9월

스릴과 추리 속에 포함되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읽다 보면 인간은 과연 선천적으로 선과 악 중에서 어떤 성정을 간직하고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주어진 환경에 의한 영향으로 예기치 못한 설정 속에 자신도 모르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일까?

 

솔직히 어떤 책을 읽으면  선(善)이 타고난 성정이다 란 생각을 하게도 되고 저 책을 읽으면 뭐지? 그럼 악(惡)이 선천적으로 지닌 성정에 속한다는 것일까?를 헷갈리게 하는 경우를 느낄 때가 많다.

 

‘고백’으로 처음 만난 이후 그녀가 쓴 내용들을 살펴보면 이 책은 그런 범주에서 약간 벗어난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여기엔 어떤 선천적인 선과 악이 처음부터 드러나는 것이 아닌 우연찮게 벌어진 상황 속에서 저마다의 사람들이 가진 불편한 감정을 토대로 사건의 흐름을 보여주는 책이기에 작가의 작품을 그동안 읽어 본 독자라면 좀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일 것이다.

 

작은 항구 마을인 하나사키초 란 곳은 대기업 ‘하츠카이’수산의 최대 공장 때문에 그나마도 명맥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마을이다.

그 마을에 대대로 토박이로서 살아온, 더군다나 대대로 이어져오는 불교용품점을 운영해가고 있는 며느리로 사고로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로 등하교를 하는 딸 쿠미카를 둔 나나코, 남편의 전근으로 인해 사택에 거주하면서 ‘쁘띠 안젤라’라는 프리저브드 플라워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미쓰키, 그녀에겐 사야코란 딸이 있다.

 

또 한 사람인 도기를 전공한 미술학도로서 이 마을의 풍경과 경치에 반해 동창생인 켄코의 권유에 따라 부부는 아니지만 동거 형태의 생활을 하고 있는 스미레가 있다.

 

점점 마을의 활기가 없어지고 심지어는  공장이 폐쇄된다는 소문도 있는 곳, 마을 사람들은 하나사키 상점가를 살리자는 취지로 축제를 벌이기로 하고 이 와중에  세 사람은 운영 모임을 통해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시작한 일, 다리가 불편한 쿠미카와 친하게 지내게 된 사야코의 시를 계기로 휠체어 생활을 지원하게 되는 자선단체 ‘클라라의 날개’ 란 이름으로 운영이 확대되고 점차 블로그 활성화에 힘입어 스미레가 만든 날개 모양 스트랩도 판매가 원활히 진행이 되는데, 방송에서 취재를 계기로 세 사람 간의 불편한 마음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게 된다.

 

걸을 수 있으나 걷지 못한다는 소문에 휩싸이는 쿠미카에 대한 시선, 자선단체 기부를 제대로 시기를 못 맞춰 진행하지 못한 스미레에 대한 미쓰키가 느끼는 감정 또한 스미레의 진실을 믿어야만 하는지에 따른 여러 가지 의문들이 선한 의도로 행한 행사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시각의 느낌을 묘한 느낌으로 다가오게 한다.

 

여기엔 5년 전 집을 나간 시어머니와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 사고로 인한 행방이 묘해진  금괴의 실체와 살인범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들까지, 이렇다 할 큰 사건의 자체는 없지만 작은 소용돌이 속에 감춰진 큰 소용돌이의 용트림을 느낄 수 있게 한 작품이다.

 

방화사건에 이은 두 소녀의 감춰진 비밀들이 독자들만 알게 해주는 글을 통해 저자의 특허인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긴장감과 멈출 수 없는 속도감들이 다른 작품들처럼 다가온다.

 

타 작품들에 비해 하나의 큰 사건은 없지만 저마다 간직한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들은 작고 큰 파문의 여지에 따라 다른 결과들을 산출해내고 그 결과로 인해 또 다른 의심과 진실을 알게 할 방법조차 믿어 버리지 못하게 한 상황 설정들이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다른 스릴의 맛을 전해주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모두가 한데 뭉쳐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 했고 서로 저마다의 크고 작은 배려를 품어왔던 행동들이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인간 안에 숨어있는 선의의 끝을 그려내 보고자 한 저자의 의도로 인해 색다른 느낌을 받은 작품, 다양한 상상력에 기댄 저자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사랑의 온도

사랑온도]사랑의 온도 –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7년 9월

어제부터 방송이 시작된 작품의 원작이다.

원래의 제목은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란 제목으로 출간된 것을 이번에 새롭게 표지도가 바뀌면서 새로 나왔다.

 

지난번 ‘닥터스’란 드라마를 재밌게 본 독자로서 이번 작품에 대한 제목을 대했을 때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은 점이 있었으나 내용을 읽고 보니 왜 제목을 착한 스프는… 을 지었는지 알게 됐다.

 

이 책의 제목인 사랑의 온도~

사랑에 관해 온도로 측정할 수 있는 적정기준이 있을까만은 이 책에서 다룬 내용들을 보니 사랑을 느끼고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의 유연성을 굳이 온도에 비유하자면 정말 얼만큼의 온도가 적정선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은 카톡을 통해 간단한 안부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시점이지만 이 책에서는 반갑게도 과거와 조우하는 시간을 준다.

처음 컴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대상으로 나누는 대화창, 한때 천리안, 하이텔, 나우… 이런 명칭들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 책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온라인 모임을 통해 저마다의 닉네임을 가지게 되면서 통용되던 시대를 그린다.

 

5년 전 착한 스프라는 닉네임을 가진 온정선, 파리에서 요리 공부를 하고 한국에 돌아와 자신의 식당을 열 꿈을 꾸는 젊은이다.

그와 당찬 대화창을 통해 인연을 맺은 홍아는 우체통이란 닉네임, 홍아의 절친인 제인이란 닉네임을 가진 여자 주인공인 나는 이현수란 이름을 가진 방송작가 지망생이다.

 

세 사람의 질긴 인연은 사랑에 대한 감정을 첫눈에 느낀 남자와 비교적 냉소적인 감정을 가진 여자가 뒤늦게 알아버린 자신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느끼고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남녀 간의 사랑의 타오르는 불꽃같은 사랑의 감정이란 온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일직선의 사랑법을 택한 현수가 느끼는 사랑,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남자답게 지켜보면서 포기하지 않는 정우의 사랑법, 자신의 못난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진실된 사랑 앞에 다가서지 못하고 마는 정선의 꼬일 대로 꼬인 상황에 벗어나지 못한 사랑법, 자신만이 오로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어야 하고 그런 자신의 곁에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세월과 미모라면 자신 있었던 자신이 오히려 현수로 인해 주목받지 못한 낭패감을 느낀 나머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만드는 홍아의 사랑법들이 각기 다른 환경과 타이밍이란 것 앞에서 어떻게 허물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처음엔 가벼운 사랑을 그린 로맨스구나 하고 첫 장을 펼쳤지만 두 남녀가 느끼는 사랑의 온도가 실제로는 같은 시기에 느끼지 못했단 사실 앞에서 5년 후에 다시 만나고도 그런 감정을 제대로  말하고 확인조차 못한 채 주위의 여건 때문에 무너진다는 현실들이 답답함과 함께 안타까움마저 느끼게 해 준 책이다.

 

 

밝은 면의 톡톡 튀는 사랑도 있지만 때론 인생에 있어서 내 앞에 다가오는 그 누군가가 나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구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머물지 못하게 하는 사랑에 대한 미성숙함을 통해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았던 한 여인의 사랑에 대한 성숙도를  느껴보게 하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려. 닫히는 문만 바라보고 서 있으면, 열리는 문을 보지 못해.”p77

 

읽으면서 정우에 대한 사랑을 받아주지 못하는 현수도 안타깝고 그런 현수를 떠나지 못하는 정우의 사랑도 그렇고, 이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여전히 문이 열리지는 않을까 하고 기다리는 현수가 위의 대사를 듣고 정우에게 다가갔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갔을까를 상상해 본다.

 

먼저 고백했고 그 고백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느끼는 두 남녀 간의 사랑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일까, 아니면 먼저 고백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남은 한 사람이 더 약자일까?

 

사랑하면 쉽게 생각할 수도 있는 감정인데도 이 책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왜 이리 힘든 것인지, 그래서일까?

저자가 글로 나타낸 약자에 대한 느낌은 연민을 느끼게 만든다.

 

– 사랑이란 철저히 낮아지는 마음이다. 사랑하면 할수록 낮아지고 낮아져서 그 상대를 위해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느끼는.-p 228

 

첫 방송에서는 원작자가 쓴 작품과  원작자가 극본을 쓴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색깔들이 책에서와는 약간 다른 설정들이 나오기에 원작처럼 그려질까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게 만들지만 사랑에 대한 온도, 그 자체만큼은 저자의 글 힘을 믿고 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며 읽는 것도 재미를 줄 것 같다.

                                                                                                                          
                                            

조선왕조실톡 7

조선톡조선왕조실톡 7 – 안녕, 조선 패밀리 조선왕조실톡 7
무적핑크 지음, 와이랩(YLAB) 기획, 이한 해설 / 이마 / 2017년 8월

벌써 마지막 권이라니!

읽기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조선 패밀리’란 이름으로 붙여진 조선시대의 마지막을 다룬 이 책, 참 아쉽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던 추억을 떠올려보게 한다.

 

처음 만화로 된 ‘톡’을 차용한 책이란 점에서 역사를 다루는 분야라면 유행의 흐름도 좋지만 제대로 된 정석의 느낌이 드는 역사서를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했던 우려를 말끔히 씻을 수 있게 한 책이란 점에서 쉽게 떠나보낼 수가 없음을 느낀다.

 

사실 조선왕조가 지금의 시대 전인 마지막 왕조이다  보니 여러 가지 역사에 근접한 사실들이 많이 알게 되고, 또 기타 다른 왕조 시대보다는 피부로 느끼는 생활 주변의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볼 때 우리의 아픈 역사를 들여다보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

 

 

정조부터 시작해 대한제국 말기까지 그려낸 이 책은 여전히 그 매력을 발산한다.

유행의 흐름에 따른 간단한 ‘톡’을 설치해 그 안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 당시의 사정과 행간의 흐름을 통해 전달해주는 역사에 근접한 노력들, 특히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시트콤을 연상시키는 발랄하고 유쾌하면서도 때로는 그와 연관된 여러 가지 당시의 모습들을 참작해 볼 수 있는 글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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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들인  이한의 ‘실록 돋보기’는 역사의 보충 설명식으로 그려냄과 동시에 당시의 각 권력층의 당권 다툼이나 사회적인 상황을 다뤘다는 점에서 역사서를 대하기보다는 간단하지만 요점만 콕 집어 알려주는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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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선의 시대를 공부하면서 뒤에 갈수록 힘없이 열강의 세력들에 치이고 끝내는 제국의 말로를 보는 부분들이 역사를 공부하면서 부담감을 느끼기에 조선 중기까지만 그려낸 부분들을 더 좋아했지만 역사란 과거를 되짚어 봄으로써 또 다른 발전의 가능성을 알아간다는 데에 우리들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지에 대한 공부를 더 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따라서 이 책의 마지막 권이자 ‘조선의 패밀리’ 시리즈란 이름으로 출간하면서 나온 전 7세트를 통해 좀 더 우리나라의 근대로 넘어오기까지의 우여곡절들이 곁들인 열녀문이나 효자비, 천한 성(姓)으로 알려진 이야기의 부분들은 잠깐 쉬어갈 수 있는 부분이면서도 다른 관점으로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해 주기에 이 책에 대한 흥미를 더욱 이끄는 부분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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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아이들에게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취지로 만든 책,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은 역사공부 시간이 될 것 같다.

 

 

결혼이라는 소설

결혼소설결혼이라는 소설 1.2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흔히  2의 출발점으로 향하는 것들 중에는 결혼이라는 것을 포함시킨다.

시대가 변해서 이제는 꼭 결혼을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동거하는 남녀들의 생활이나 독신들의 생활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결혼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는 책이요, 나의 인생의 삶에서 차지하는 그 어떤 비중에 대해서 우선순위는 무엇일까를 생각도 해보게 되는 책을 접했다.

 

처음 제목 자체가 왜 하필이면 결혼이라는 소설이란 명칭을 부여했을까였다.

결혼이면 결혼이지 굳이 소설이라는 말을 붙여야만 했던 저자의 의도는 무엇일까를 두고 읽고 싶었던 책, 아마도 이 책을 접하는 20~30대의 분들이라면 공감을 할 수도 있을 이야기들을 저자의 글을 통해 한 번 들여다본다.

 

주인공은 세 명이다.

일명 아이리그에 속한다는 브라운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메들린, 아버지가 대학  총장 출신인 중상층의 가정에서 자라난 그녀는 자신의 전공분야를 살려 빅토리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여류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하고 그녀들이 쓴 작품 안에서의 사랑과 결혼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특히 롤랑 바르트가 쓴 책을 통해 더욱 결혼과 사랑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둔 학생이다.

 

4학년 마지막 학기에 들어간 기호학 수업에서 공대생 레너드를 만나고 이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레너드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대학 진학에 따른 여러 가지 돈이 들어가는 상황이 좋지만은 않은 실정, 더군다나 조울증과 우울증을 함께 앓고 있다.

여기에 종교학을 전공하는 또 한 사람이  메들린을 향한 사랑을 하고 있으니, 바로 이민자 출신 가정의 자제로 이름은 미첼이다.

 

책은 세 남녀의 졸업식을 앞둔 상황에서 벌어지는 세 사람의 동선과 생각들과 행동을 보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각각 어떤 대학 시절들을 생활했으며 이내 졸업 후에 대학원 진학에 떨어진 메들린이 졸업 후에 레너드와 함께 레너드가 인턴 자리로 가게 된 곳으로 함께 가게 되고 동거를 하는 생활, 미첼은 자신의 종교적인 의구심과 끊임없는 자신의 실험을 모색하기 위함, 메들린에 대한 사랑을 멈추기 위해 유럽과 인도를 향해 배낭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같이 그려낸다.

 

메들린은 결혼에 대한 생각, 즉 자신이 좋아하는 제인 오스틴이나 에밀리 자매가 쓴 소설을 통해 그려진 빅토리아  시대에서 보이는 여성들의 당찬 모습들을 비교하면서 자신이 쓰는 논문의 주제와 함께 결혼에 대한 생각, 특히 레너드가 더욱 심해진 조울증으로 인해 서로의 힘든 생활과 여건을 이겨내고자 결혼을 감행하면서 자신이 생각했던 결혼에 대한 실체를 더욱 실감있게 느끼게 된다.

 

– 소설이라는 장르는 결혼 플롯과 함께 그 절정에 도달했으며, 결혼 플롯이 사라지면서 다시는 원래의 위치를 되찾지 못했다는 것이 손더스의 견해였다. 인생의 성공이 결혼에 달려 있고 결혼은 돈에 달려 있던 시대에 소설가들은 글을 쓸 만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던 셈이다. 장대한 서사시는 전쟁을, 소설은 결혼을 찬미했다. 남녀평등은 여성에게는 이롭지만 소설 장르에는 해로웠다. 게다가 이혼은 소설을 완전히 망쳐놓았다. 에마[제인 오스틴의 소설 ‘에마’의 여주인공]가 법적으로 별거를 신청할 수 있다면 그녀가 누구와 결혼하든 무엇이 문제겠는가? 이저벨 아처와 길버트 오스몬드[헨리 제임스의 소설 ‘여인의 초상’의 두 주인공]의 결혼은 혼전 합의서의 존재에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결혼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으며 소설 또한 마찬가지라고 손더스는 우려했다. 오늘날 결혼 플롯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p.61

 

책의 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위의 대목을 통해 기존의 결혼관에서 많이 변화된 결혼의 실체와 이에 근접하는 사람들의 변화는 특히 1980년대라는 시기를 관통하면서 당시에 벌어진 다양한 사회적인 변화들과 같이 메들린이 생각하는  결혼에 대한 변화를 같이 보인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책의 결말, 레너드와 맞지 않는 결혼을 느낀 메들린이 결국엔 자신의 곁에 최후까지 남아준 미첼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다시 재결합을 한다는 통속적인 결말을 기대한 독자라면, 특히 나의 상상력이 그렇기도 했지만 저자는 이에 같은 동조를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흔히 말하는 결혼이란 단계를 거치기까지의 변화된 세태를 주목하면서 결혼을 최우선시했던 시대를 벗어나 시대의 흐름으로 인한 졸업생들의 취업 난항과 결혼에 대한 부담감, 특히 메들린처럼 레너드를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문제점들을 과연 시간이 흘러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는 점들, 레너드와 미첼이 생각하는 관점들을 통해 결혼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란 점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메들린, 그 품을 벗어나서 진정한 어른으로서의 생활을 하고 싶지만 못하고 있는 여건의 불리함, 자신의 병이 쉽게 낫지 않으리란 불안한 심리의 기저를 깔고 있는 레너드, 사랑과 결혼이라는 문제를 두고 다른 길을 선택한 미첼의 행보를 보면서 독자들은 깔끔한 결말을 원할 수도 있겠지만 세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 나름대로 나라면 과연 어떤 선택과 결말을 통해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를 연신 묻게 되는 책이다.

 

여기에 시대는 1980년대를 통해서 그리고 있지만 실제 여전히 지금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일 수도 있기에 저자가 그린 이야기는 소설을 통한 젊은이들의 생각과 결혼이란 제도가 주는 여러 면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빛나는 자유와 평등을 향해!

언더그라운드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처음 책 출간 소식을 접하고서 소재가 무척 흥미를 이끌었다.

미국의 인종 문제는 항상 들끓고 있는 잠재적인 용광로란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미국 내의 소수 인종들에 대한 편견, 특히 흑인 노예제도의 해방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책들을 읽었지만 이처럼 절묘한 조합의 구성은 확실히 모든 상을 휩쓸만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할머니 때부터 농장의 노예로 살아가는 코라라는 소녀의 탈출기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어떤 역동성 있는 극한대의 활발한 활동이 겹쳐 보이는 것이 아닌 흑인이 살아온 역사, 원하지 않았지만 저마다 다른 부족들 출신들이 모여 그들의 언어와 풍습, 노래를 통해 나름대로 인생에 대한 희석을 섞어 살아가는 묘사 장면들은 여전히 울림을 준다.

 

할머니 우지라가 살아왔고 자신의 어머니 메이블이 살았던 랜들 농장에서 코라는 태어났다.

노예들이 살고 있는 오두막 안에서도 벌어지는 땅이라고 해봐야 땅이란 용어 자체도 불리기 애매한 조그만 텃밭을 지키고 가꾸어 온 할머니의 죽음 뒤에 자신을 버리고 탈출한 엄마, 그런 환경 속에서 코라는 할머니와 엄마가 지킨 텃밭을 지키며 살아가는 노예 소녀다.

 

어느 날 새로 들어온 노예 시저라는 남자 노예로부터 탈출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지만 단칼에 거절한다.

인간의 근본적인 태생 속에 갇혀있는 속박되고 한정 지어진 곳에 살다 보면 그 먼 어느 세상 밖으로 나가기란 쉽지 않다는 것, 하지만 결국엔 탈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치자 시저와 함께 야반도주를 하게 된다.

 

자신의 계획을 알고 쫓아온 친구 러비, 그렇지만 숨 막히도록 뛰어 달려온 지점에서 부딪친 백인들의 만남은 러비와 헤어지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둘은 자신들을 도와주려는 사람의 집에 무사히 도착하게 된다.

 

책의 제목은 진짜 지하철도가 아닌 흑인 노예들을 탈출시키고 자유인의 신분으로 살아가기 위한 여정을 돕는 비밀 단체 조직 이름이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도 작가와 마찬가지로  19세기 노에들의 탈출을 돕는 이런 노선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지만 실제 존재한 단체는 아니고 여기에 착안한 저자의 상상력이 노예의 탈출을  이야기의 설정으로 함께 끌어들임으로써 대단한 하나의 역사적인 이야기를 방불케 하는 문학작품으로 탄생이 됐다.

 

코라와 시저, 그들을 돕는 노예제도에 대한 반대를 품고 도와주는 백인들과 자유인 신분을 가진 흑인들의 도움은 지하철도의 명칭처럼 역과 역장이란 용어를 함께 사용하면서 비밀의 활동을 개시한다.

 

숨 막힐 듯 추적해오는 노예 사냥꾼 리지웨이의 추적과 함께 책의 공간 이동은 조지아에서 몸담아 살아온 두 사람이 그곳을 떠나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시작으로 한 때 다른 이름으로 정착할 수도 있겠다는 꿈을 무참히 저버린 리지웨이로 인해 또 다른 역 출발을 향해 가야만 하는 여정을 그린 이 책은 당시 각 주(州)마다 다른 법 적용과 흑인들을 대하는 태도와 제도적인 방침, 같은 백인이라 할지라도 탈출에 동조한 같은 인종을 색출해 죽이는 장면들과 붙잡힌 노예들의 처형 방법의 묘사들은 흑인 노예제도의 역사를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느끼기에 아픔을 느끼게 한다..

 

코라는 묻는다.

 

– 자유인 신분이 된 흑인들이 제 주인들을 피해 달아났듯이, 백인들 역시 그들 주인의 폭정을 피해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이 땅에 왔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이상은 다른 이들의 이성을 부정했다. 코라는 마이클이 랜들 대농장 뒤편에서 독립선언문을 암송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중략)

 

코라는 그 말들을 거의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말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정말로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면 그것을 쓴 백인들 역시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흙처럼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든 자유처럼 그렇지 않은 것이든, 그들이 다른 사람의 것을 강탈했다면, 아니었다. 코라가 경작하고 일했던 땅은 인디언들의 땅이었다. 코라는 백인들이 여자와 아이들을 죽여서 그 종족의 미래를 씨앗부터 말살해버리는 대학살의 효율성을 자랑스레 얘기한다는 것을 알았다. -p 136

 

백인들의 머리에 새겨진 흑인들에 대한 각인, 멍청하고 자신들의 터에 또 다른 인종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생각의 뿌리 원천을 저자는 흑인 노예 소녀의 시선과 탈출을 통해 백인 사회가 이루어 놓은 역사의 허점을 비판하고 있다.

 

하류층 백인들의 이주로 인해 또 다른 일자리를 빼앗기게 된 흑인들, 자신들의 의지대로 정착하고자 했지만 결국 같은 부류의 인종들이라도 또 다른 생각들의 이견으로 인해 큰 아픔을 경험하게 되는 코라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의지는 결코 무너질 수가 없음을, 그래서 여전히 자신이 정착할 또 다른 새로운 미지의 땅을 찾아 나서는 그녀를 응원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미 150여 년 전에 해방이 된 흑인들의 이러한 아픔이 있는 제도는 청산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비단 흑인 노예제도뿐만이 아니라 기타 다른 부분들에서도 완벽한 평등과 자유를 누리고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자신을 버린 엄마를 원망하고 그러한 엄마를 그리워하는 코라의 여정은 저자의 탁월한 역사를 관통해나가는 필치로 인해 기존의 다른 흑인 작가의 작품들과는 다른  문학작품을 접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자유와 평등에 대한 귀중하고 고결한 기쁨, 자신의 진정한 권리를 찾아가는 코라 라면, 아니 그 누구라도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그런 가운데 진정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란 점에서 많은 울림을 주는 책이란 생각을 해 본다.

 

24년 만에 나온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동시 수상작으로 기타 여러 부분에 걸쳐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작품답게 과연 이 책이 맨 부커상 수상에도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드라마로도 만날 수 있다니 영상을 통한 기대도 해 보게 되는 책이다.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시간과공간정지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7년 8월

표지의 촉감이  곱게 만져진다.

푸른 청색의 색감이 다시 책 속에 펼쳐진 이야기와 함께 더욱 빛남을 느끼게 해주는 책, 오랜만에 다시 접해보는 작가의 글이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처음 방송에서 아픈 상태와 그 후에 다시 모습을 보인 방송을 통해 잘 이겨냈구나 하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이 책을 통해 그간 저자가 살아온 작은 일상의 이야기들이 더욱 친근감 있게 다가오게 만든다.

 

이외수 하면 같이 따라오는 분, 정태련 님의 그림은 역시 복잡한 마음을 다시 숨 고르게 해 주는 기쁨을 전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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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자신이 아파오면서 느꼈던 부분들이나 다시 시도해서 먹게 됐다는 김치에 대한 애정, 여전히 세태에 대해 쓴 날카로운 시선들은 그만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단 생각이 든다.

 

감성마을의 분위기 또한 다시 느껴볼 수 있는 계절상의 변화와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과 아닌 것은 아니란 생각을 짧은 글 속에 던지는 글은 여전한 필치를 뿜어낸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면서 벌어지는 불운한 일상들, 정치권이나 일반 세상이나 힘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서로가 서로를 믿고 살아가는 세상이야말로 힘든 세상에 단비처럼 뿌리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는 글들이 그림과 같이 여전히 풍성한 마음을 지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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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10시에 기상해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는 자자의 소소한 일들을 엿보는 기분은 작가로서의 글 쓰는 책임감이 어떤 것이며 철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같이 생각하면서 읽게 되는 부분들이기도 했다.

 

누구나 체질이 다른 관계로 벌어지는 체중의 늘림과 줄임의 상반된 관계, 저자는 살 찌우기 위해 노력을 하고, 누군가는 과체중이라서 빼야 된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웃음을 짓게 하기도 하지만 수술 후에 가지게 된 긍정 마인드는 읽는 이로 하여금 다시 작은 것 하나라도 가볍게 여길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지금도 여전히 활발한 글 쓰기에 대한 창작열과 감성마을이 주는 계절의 만남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때론 응원을, 때론 공감을 같이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책, 차분히 들여다보면서 모든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암막의 게르니카

암막암막의 게르니카
하라다 마하 지음, 김완 옮김 / 인디페이퍼 / 2017년 9월

학창 시절 미술 책에 당연히 빠지지 않고 나오는 그림들, 특히 입체파의 대표 격인 피카소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설사 직접 그림들을 보진 못했어도 적어도 책을 통해서 간접으로나마 접해 보는 그의 작품 세계는 이미 여러 평론가들에 의해, 보통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 중에 하나일 것이다.

 

어린 시절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당기는 듯한 빨려 들어가는 색채와 조합들 때문에 미술에 관해서 모르고 봤지만 표현할 길 없는 강한 인상적인 만남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책이다.

 

아트 서스펜스를 지향하고 있는 책이지만 생각할 부분들을 건드리는 책, 큐레이터 경험자답게 미술의 세계를 흥미롭게 그린다.

 

게르니카-

 

온갖 군상들, 특히 인간들의 울부짖음과 짐승들 그것을 내려다보듯 하는 눈동자의 색채감, 특히 이 그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알고는 더욱 그 아픔을 느끼게 되는 몇 안 되는 그림이기에 이 이야기의 진행을 이끌어나가게 하는 구성의 흐름이 각인되기 쉽게 한다.

 

왕정 국가인 스페인의 역사에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반대파인 프랑코 장군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을 얻고서 내전을 일으키게 된다.

 

책은 이 시점의 분위기 시대인 1937~1945년까지를 드러내면서 피카소와 그의 한때 연인이었던 사진작가이자 작가인 도라의 이야기와 현시점인 2001~2003년도의 뉴욕과 마드리드를 주 배경으로 이야기를 다룬다.

 

파리에 머물던 피카소는 당시 1937년도 벌어진 스페인 내전으로 자치주의와 독립국가를 외치는 바스크 지방에 있는 게르니카 지방에 무차별 폭격을 퍼부은 독일의 만행에 대한 그림인 게르니카를 그리게 된다.

 

게르니카란 제목 자체도 피카소가 붙였을 만큼 피카소 자신이 혼혈의 힘을 기울여 그린 이 그림은 전쟁의 잔혹함과 비극, 고뇌를 모두 그려냄으로써 당시 스페인 공화파 정부의 의뢰로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출품하기 위해 그려진 사연이 깊은 그림이었다.

 

하지만 막상 전시를 하고 보니 분위기는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모든 사람들의 긍정적인 눈길을 받기는 생각보다 어려웠고 이는 곧 유럽의 각국을 전시함과 동시에 이를 끝으로 미국의 현대 미술관 MoMA에 전시되는 것을 기회로 스페인이 민주사회로 돌아오게 되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 것을 조건으로 전시하게 된다.

 

한편 어린 시절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본 이후 미술사를 전공하고 MoMA에 근무하고 있는 야가미 요코는 피카소의 전시회를 목적으로 기획하고 있던 중 남편이 9.11 사태의 희생자로 남게 되면서 더욱 게르니카에 대한 전시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스페인으로 간 이후 한 번도 타국에 전시된 적이 없는 게르니카-

당시의 분위기는 이라크 공습을 천명한 미국의 발표가 이뤄진 시점이었고 그 발표는 공교롭게도 UN 본부에서 발표하게 된다.

유엔 본부에도 게르니카 그림을 바탕으로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었고 그 자리 뒤에서 발표를 하는 미국 장군, 그러나 그 태피스트리는 암막이 걸쳐진 채 방송이 나가게 되고 이후 세간의 이목은 과연 누가 이 태피스트리에 암막을 걸치게 했는가로 쏠리게 된다.

 

미국 정부일까? 아니면 남편을 잃고 반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르니카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 요코의 짓일까? 그렇다면 요코는 정말 이 사건의 주범일까?

 

책은 한 미술 작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국의 이익과 그에 상응하는 보복과 오래된 전쟁과 역사에 맺힌 한(恨)을 풀어 보고자 하는 세력의 이입을 그리면서 전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미술  고위 관계자와 요코의 주된 활동을 그리고, 과거의 피카소가 그 당시 겪었던 예술인으로서 느끼는 고국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고뇌를 그림을 통해 보이는 과정을 교차하면서 그려나간다.

 

여성편력이 유명했던 피카소, 게르니카가 그려질 당시에 연인으로서 함께 했던 도라의 시선으로 보는 피카소란 인물의 예술적인 영감,  미술에 대한 애정과 피카소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파르도 이그나시오의 활동, 그 이후 노년에 이른 그와 요코의 만남을 통해 또 다른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전쟁의 아픔을 느껴보게 하는 흐름으로 그려진다.

 

가공할만한 괴력의 무기를 앞세워 지금도 현재의 세계는 서로의 이익 앞에서 한치의 양보를 이루어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기에 피카소가 바란 마음을 대변하는 게르니카란 미술 작품을 통해 전쟁의 진정한 피해를 입는 보통 사람들의 애환과 절규, 그리고 이념에 의해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고국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예술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무엇일까를 생각한 점을 그린 저자의 시선이 새롭게 다가온다.

 

 

– 이것은 검이 아니다. 그 어떤 병기도 아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어두운 색의 그림물감을 칠한 캔버스. 단순한 그림 한 장일 뿐이다.
하지만 검보다도, 그 어떤 병기보다도 강하게, 예리하게, 깊게 인간의 마음을 도려내는.
세계를 바꿀 힘을 가진 한 장의 그림- p 133

 

 

펜은 무기보다 강하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이 책은 예술적인 저항은 실제 이념을 넘어선 진정한 화해의 장으로써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각인을 심어준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아트 서스펜스를 그리는 장치로서 유엔 본부의 태피스트리의 암막 실체를 지시한 주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 뒤에 전쟁의 아픔과 야코의 진실된 바람을 함께 그리면서 게르니카가 과연 미국의 전시회에 걸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이중의 설정을 통해 독자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저자의 충실한 미술사에 대한 접근 방식을 결합한 책인 만큼 미술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용어와 피카소가 어떻게 그렸을지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 스페인 내전에 대한 역사를 알고  함께 읽어나가면 미술사 공부와 생생한 역사의 현장도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책이란 이점도 누려볼 수 있는 책이다.

 

다만 같은 반복적인 내용들이 중복되어 나열된 점이 읽는 흐름이 끊기는 점으로 아쉽지만 바람둥이 피카소에게 이런 면도 있었다는 점, 실제 국내에도 게르니카가 전시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작가의 이번 작품은 제155회 「나오키상」 후보작, 2017년 「서점대상」 후보작, 제9회 R40 서점 대상 수상, 슈칸분슌(週刊文春) 「2016 미스터리 베스트 10」, 「다 빈치」 플래티넘 서적 BOOK OF THE YEAR 2016까지 두루 석권한 책인 만큼 읽어보면 미술과 전쟁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두루두루 알아볼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