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18년 5월 7일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풀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일본 서정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야모토 테루의 작품이다.

전작에서도 마찬가지로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서정적인 감각의 표현을 잘 그리는 작가란 생각을 하는데, 이번의 작품은 거기에 추리라는 것을 더해 넣어 또 다른 감각을 느껴보게 했다.

 

오바타 겐야는 미국인과 결혼 후 미국에서 정착해 살고 있는 고모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일본 여행 중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생을 마감한 고모는 겐야에게 뜻밖의 막대한 유산을 남겨준다.

 

400억이 넘는 막대한 금액의 유산, 그런데 고모의 유언장에는 어린 시절 백혈병으로 죽었다고 알고 있는 고모의 딸 레일라를 찾게 된다면 유산의 70%를 주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레일라는 살아있다는 말인가? 곧 사설탐정을 고용한 겐야는 이후 레일라가 실제로 존재하고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하 추적과 함께 고모가 살았던 대 저택에 머물면서 그 주위의 식물과 바다 풍경을 함께 느껴가는 생활을 시작한다.

 

책은 겐야의 시점으로 진행이 되면서 고모가 살았던 저택에서의 풀꽃들, 식물들, 고모의 저택에서 친분을 쌓아가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 폭의 서정적인 감상을 느끼게 한다.

 

등장인물들이 알고 있는 레일라의 실종사건, 그 사건의 진실 속에 감춰진 고모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를 연신 탐구해가는 겐야를 통해 독자들은 정말 레일라는 살아있는지, 아니면 그저 허상에 불과한 사실이었는지에 대한 추리를 함께 하게 된다.

 

천륜이라 불리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그 안에서 밝힐 수 없는 비밀을 더 이상 좌지 할 수없었던 고모의 선택은 그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으로 나뉘어 버린 안타깝고 쓸쓸한 한 인간의 여생을 보는 듯하다.

 

종반부에 이르러서 밝혀지는 진실의 충격은 어머!라는 말을 내뱉게 하는, 책 제목에서 의미하는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를 이해할 수 있는 고모의 생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곳곳에 뿌려놓은 듯한 사건 해결 실마리에 필요한 작은 단서들, 안에서 펼쳐지는 비극적 비밀을 끝내 감춘 채 생을 마감해야 했던 고모의 인생 자체를 돌아보게 만든 책이었다.

 

긴박한 스릴의 타입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획기적인 결정타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가운데 조용한 풀꽃들의 움직임과 고모의 연관성이 쉽게 떠나질 않는 책이다.

폐선상의 아리스

페선상의 아리스표지

폐선상의 아리스 – S큐브
마사토 마키 지음, 후카히레 그림, 문기업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4월

표지가 심쿵함을 유발한다.

만화적인 느낌, 모처럼 설렘을 느끼며 읽은 로맨스 책이기에 더욱 그렇다는 느낌도 들지만 말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유즈리하 로우라는 17 살의 학생이다.

기억에도 없는 친부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게 된 로우, 사실 그에겐 그 나이에 있을 수 있는 친구와의 관계로 인해 엄마와 계부, 그리고 이복 여동생을 놔두고 도쿄를 떠나 친부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살고 있는 카미코미나토라는 아주 작은 무인역에 도착, 아버지에게 연락을 해보지만 아버지와는 연락이 되질 않는다.

 

이때부터 혼자만의 여행처럼 로우의 여정이 그려지는데 찾는 장소가 비로 인해 쉽게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선로를 보지 못하고 넘어져 버린다.

그때 모든 감정들이 복받치면서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빗속에 누워버린 로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옴을 듣게 된다.

 

그녀가 바로 책의 제목인 아리스 라 불리는 소녀다.

마침 그곳 고장에서는 유령이 떠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들리던 곳이고 때마침 나타난 아리스를 본  로우는 이후  아리스와의 만남을 통해 풋풋한 사랑의 느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의  전개를 독자들이 느껴보게 한다.

 

책 읽는 중간에 나오는 삽화도 만화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색채, 주인공들의 싱그러움 그 자체에 어울리는 대사와 행동들은 마치 꿈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무엇보다 이 둘을 둘러싸고 있는 여자 사람 친구의 도움과 이부 여동생의 캐릭터에 맞는 말과 행동들은 한층 이 책 속으로 빠져들어가 만드는 완충재 작용을 한다.

 

폐선상1

 

끝까지 달달함을 유지하게 하는 글들과 말들, 신비한 판타지 성격이 짙으면서도 푸른 청춘들이 알아가는 첫사랑에 대한 강렬한 느낌과 감정들을 잘 표현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얼음에 갇힌 여자

얼음에 갇힌얼음에 갇힌 여자 스토리콜렉터 63
로버트 브린자 지음, 서지희 옮김 / 북로드 / 2018년 5월

번화가도 아닌 한적한 곳, 박물관 내에 있는 보트 창고가 있는 곳, 호수에서 시체가 발견이 된다.

급속도로 추운 겨울 날씨와 눈발로 인해 얼어있는 호수 속에 잠긴 미모의 여인, 그녀는 영국의 귀족 출신의 딸이자 막강한 재력을 가진 사람의 딸인 앤드리아다.

 

교살한 흔적으로 인해 살인 사건임을 알게 된 경찰은 언론에 노출을 꺼리면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에리카 포스터 경감을 불러들인다.

 

새로운 여성 경찰 시리즈의 탄생을 알리는 첫 시리즈로써 나오게 된 에리카 경감-

 

요즘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다루는 이런 형사물 시리즈물이 나오는데, 특히 에리카란 인물은 자신의 아픈 개인적인 상처를 극복하는 와중에 부름을 받으면서 사건 현장에 나오는 경찰로 그려진다.

 

더군다나 부(副)에서라면 꿀릴 것 없는 동급의 재산가 집안의 자제와 약혼한 그녀가 무엇이 부족해서 이런 일을 당해야만 했을까?

특히 부자들이 다니는 클럽이 아닌 그저 그런 계급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의 펍에는 왜 갔을까?

 

좀처럼 연관 고리를 찾을 수 없었던 사건은 오히려 에리카의 활약을 이미 알고 있는 그 누군가, 범인이 중반에 등장하면서 에리카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가는 과감한 행동을 보인다.

 

 

사건의 실체를 밝혀가면 갈수록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까 봐 쉬쉬하며 경계를 하는 상류층의 사람들, 같은 형제자매라고 믿을 수없는 냉랭하고 시샘 어린 질투가 섞인 모종의 행동과 말들은 사건을 점차 미궁으로 빠지게 만든다.

 

우연찮게 걸려든 제보자 또한 살인사건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책은 에리카가 겪은 개인적인 심적의 고통과 상사의 지시를 거부하거나, 때론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는 경찰의 사명감을 잘 보이는 인물로 그려진다.

 

보통 만인은 평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위의 책에서 그려지는 등장인물들의 삶을 살펴본다면 과연 평등이란 말이 그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를 묻고 싶어 진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영국 내에서도 계급층에 따른 영어가 다르다고 한다.

그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대강 어떤 층에 속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데, 책에서도 이런 계급적인 차이를 체감하게 하는 사례들이 등장한다.

 

이미 유럽은 러시아를 비롯해 동구권 나라에서 넘어오는 불법체류자들, 특히 어린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매춘과 마약의 실태가 많은 탓에 이런 사례들을 넣은 내용들이 많다.

 

이 책에서도 동구권 세 여인의 사망 사건과 앤드리아란 여성의 사망 사건이 비슷한 패턴을 지녔음에도 세 사건은 그저 미완결의 사건으로 남았고 부유층인 여성이란 것만으로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건의 진상에 다가서려는 경찰들의 윗선의 지시들은 비교할 만한 내용이란 생각이 든다.

 

에리카 경감이 느낀 사실 그대로 세 여인과 앤드리아의 죽음에는 그 어떤 계급으로 나뉠 수 없는 평등의 원칙 하에서 수사 사건이 이루어져한다는 말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를 꼬집어 말하는 저자의 생각이 우리 인간들의 본성 안에 각인되어 있는 차별의 고정관념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장면으로 기억이 될 것 같다.

 

돈과 권력이 있다는 것 하나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발상,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에 벌어지는 격차는 이 책에서 드러나는 모순된 삶의 형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함을 던져 준다.

 

문란한 생활의 일인자, 그런 그녀가 죽었고 이를 둘러싸고 진실에 다가서려 하는 에리카 경감의 투철한 사명감은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한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범인의 숨죽임과 죽음에 점차 다가간다는 극한의 공포, 꽁꽁 언 호수 밑 얼음 속에 갇힌 여자의 죽음은 서서히 깨져가는 진실의 첫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