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구 – 로마의 열병 / 다른 두 사람 / 에이프릴 샤워 ㅣ 얼리퍼플오키드 2
이디스 워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7월
‘순수의 시대’의 저자로 알려진 이디스 워튼의 단편집을 접했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 떠오른 생각은 징구? 중국의 어떤 한 장소를 말하는 것인가?
사람 이름인가? 아니면 어떤 특이한 조합의 단어를 뜻하나?
하지만 모두 땡!
독자들이 허를 이리도 찌른 소설의 제목을 취한 저자의 센스에 박수를 친다.
어떻게 보면 장편보다는 단편이 훨씬 쓰기가 어렵다고 생각되기도 하는데 저자의 글은 읽으면서도 여전히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매끄러운 일침, 실상을 드러내 놓고 싶어도 사회 속에 묵인 시 되어 온 여성들의 허상과 허망, 욕구의 불만 표출조차도 표현해내지 못하는 모습들을 맛깔스럽게 그려놓았다.
총 4편의 단편들은 모두 저마다의 개성 있는 여성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당시 시대상에 흐르고 있는 보편적인 여성에 대한 시각, 여성을 바라보는 견해와 관점들이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다.
책 제목이기도 한 ‘징구’ –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벨린저 부인, 음~ 아마도 현대에 태어났더라면 영화 관람조차도 혼자서는 못할 위인(?), 아무튼 그녀는 런치 클럽이란 독서모임을 만들고 그곳에 모임에 동참하는 여인들과 함께 독서 토론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이다.
그곳에는 로비 부인처럼 솔직하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는 만큼 오히려 로비 부인은 그 모임에서 되려 아무것도 모르는 수준 이하를 갖춘 여인으로 인식한다.
어느 날 유명 저자인 오즈릭 데인이 방문하게 되고 그때 작가조차도 성의 없는 태도와 물음과 답변을 이어가는데 작가가 질문을 하게 된다.
당신네 클럽에서는 어떤 심리학을 공부했느냐? 였는데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로비 부인이 징구를 가지고 주제를 삼게 된다.
아무도 징구에 대해 처음 들어봤다거나 어떤 내용이냐는 물음조차도 하지 못한 채 서로 눈치를 보며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이 얼렁뚱땅 맞춰주는 시추에이션을 통해 인간들의 본질, 허식과 조롱의 대상에 대한 얄팍한 수준, 그럼으로써 결국 모두가 로비 부인에게 당했다는 결정타는 웃음과 함께 저자의 톡 쏘는 듯한 상쾌함마저 준다.
두 번째 이야기인 로마의 열병은 뜻밖의 결말을 읽은 후에 서늘함이라고 해야 할까?
같은 여인으로서 한때는 친한 듯했지만 시간이 흘러 무덤덤해진 두 여인이 딸들과 함께 로마로 여행을 오면서 우연히 마주치고 각자가 상대를 바라보는 생각들이 대화를 통해 과거의 일들이 재조명되는 이야기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벌였던 과거의 일들은 독자들도 생각지 못했던 결말의 결정타 대사를 통해 두 여인들도 결국은 상처를 받았고, 심리 스릴처럼 읽힌 내용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세 번의 결혼을 통해 전 남편 둘과 현재의 남편을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가는 여인의 노련미, 세 번째 남편이 말했던 “아내는 오랜 신발처럼 쉬웠다. 수없이 많은 발이 심어서 편해진 신발.” 무슨 말인가 싶으실 거예요”라고 했던 의미가 남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다.
어찌 보면 그 시대상으로 비춰볼 때 상당히 자신의 의지가 뚜렷했던 여인이 아닐까 하는, 자신의 인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루어 나간다는 생각이 강한 여인처럼 비침과 동시에 특히 역자 님이 말씀하신 진화적인 관점에서 본 글들이 인상적이었다.
네 번째 에이프릴 샤워는 귀엽고도 안쓰럽고 그러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짓게 하는 내용이다.
17살의 네오도라는 집안일, 동생 돌봄까지 하면서 자신만의 글을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는 것으로 소설가로서의 꿈을 꾸는 소녀 이야기다.
결코 쉽게만 이뤄지지 않는 소설가로서의 당선이 아쉽게도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족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되는 진행이 인상적이었다.
저자의 태어난 가정의 분위기상 당시 상류층에 속하기 때문에 글을 통해서 읽는 느낌도 자신이 직접 겪어보고 느껴온 세계를 제대로 그려낸 것이 아닌가 싶다.
여성으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시대의 분위기가 몰고 온 여성에 대한 인식, 더 나아가 허위와 그릇된 비판의 자세, 사회적인 분위기와 억압이 여성들을 어떻게 옥죄고 숨죽이고 있는지를 제대로 보인 작품들이 아닌가 싶다.
짧은 글 속에 담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통해 오늘날의 여성들 모습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