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20년 4월 2일

안녕, 나의 순정

순정 안녕, 나의 순정 – 그 시절 내 세계를 가득 채운 순정만화
이영희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3월

학창 시절 ‘만화광’ 이란 별칭으로 불렸던 친구가 있었다.

당시엔 만화보다는 책을 주로 접했던 나에게 내 짝꿍이었던 그 친구는 유달리 등교하면서부터  하교할 때까지 끊임없이 가방에서 나오곤 하던 것이 만화책이었다.

 

당시 그 친구를 열광시킨 만화란 존재는 내게 생소하기도 했지만 일단 활자 위주가 아닌 그림이 섞인 복잡한 이미지로 보였던 것도 흥미를 이끌었다.

 

아니나 다를까, 늦게 배운 ~이 무섭다는 말처럼 그야말로 그 친구와 쿵작이 맞은 나는 그 이후 만화책 마니아로 전락(?)해 버렸다.

 

지금이야 만화방이란 것이 있어 많은 종류의 책을 골라서 읽을 수 있지만 당시만해도 잡지책 속에 나오는 연재나 그 연재가 끝나면 책으로 나온 것을 구매해서 읽던 시절이라 더욱 갈증에 메말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니 요즘 시대 흐름의 발맞춰 웹툰을 통해 인기를 끌면 바로 드라마화로 확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자 또한 그러한 경험의 기억을 더듬어 추억의 만화로 당시의 소녀 감성을 소환한다.

 

책을 펼친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그 느낌을 아시는지?

너무나도 좋아했던 작가들이 작품과 그림, 이름들이 나오는 책이라 그 감성의 극대치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신일숙, 황미나, 김혜린, 이빈, 한승원, 이은혜, 한혜연, 박희정, 강경옥, 유시진, 문흥미, 이미라, 나예리, 천계영, 박은아….

 

작가들의 색채와 그림 속에 녹아든 주인공들의 숨결소리마저 모두 흡수시켰던 당시의 만화 내용은 현실에서 고달팠던(?) 학업에 지친 소녀들의 감성에 위안과 주인공이 마치 나 자신인 것처럼 착각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주었다.

 

한 권 한권이 끝날 때마다 언제 다음 권수가 나올까 하는 기다림의 연속들, 그런 가운데 이 책의 구성을 통해 볼 수 있는 4부로 이루어진 구성은   14명의 작가의 작품들을 주제에 맞게 만나며 떠올릴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시 공간을 넘나드는 만화의 이야기 창조와 그 안에서 어우러지는 로맨스, 대사 하나하나에도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던 기억, 그런가 하면 현실을 직시한 만화들의 내용들을 통해 성장해 나간 기억들이 새록새록 넘나들게 한다.

 

만화찹체1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온 세계 속에 뛰어들어가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볼 수도 있었던 만화, 특히 순정만화란 세계는 이제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다시 더듬어보는 계기를 준 책이다.

 

특히 잊을 수가 없었던 작가들의 소환 대상인  황미나의 <굿바이 미스터 블랙>부터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 김혜린의 <불의 검>, 한승원의 <프린세스>, 박희정의 <호텔 아프리카>, 강경옥의 <블루>….

 

 

만화합체2

 

다시 예전의  풋풋했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나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이 책으로 소환해보시길~~

 

그녀의 푸른 날들을 위한 시

그녀의 푸른 그녀의 푸른 날들을 위한 시
천양희 외 지음 / 북카라반 / 2020년 3월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 여류 시인들의 시들을 모은 작품집을 만났다.

학창 시절에는 좋아하는 시인의 시 구절을 노트에 필사를 하거나 코팅을 해서 지금의 책갈피처럼 사용하던 때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그러한 행동들이 드물어졌다.

 

그런데 이 책을 접하고 보니 다시 한번 시의 세계로 빠져들어보게 된다.

 

천양희, 신달자, 문정희, 강은교, 나희덕  시인들의 감성 짙은 시의 구절들은 여전히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고 있다.

 

실 생활에서 묻어 나오는 현실감각이 뛰어난 시 구절을 통해 같은 공감대를 느낀다는 것은 비단 여성이란 것에 한해서만이 아닌 누구나 살아가면서 느꼈을 공통분모의 감정을 대변해 주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다루고 쓰이냐에 따라  읽는 독자들이 나도 같은  생각을 했는데~~~ 하는 이심전심이 통하는 시 구절들은 그 당시 그분들의 시를 읽고 외웠던 한 어린 학생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을 주었다.

 

삶이 팍팍하고 요즘처럼 걱정거리가 많은 시대에 엄마의 따뜻한 느낌으로 토닥토닥 위로를 전해주는 그녀들의 시가 참으로 좋게 느껴진다.

 

시구절

 

 

 

남편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 문정희

시인이자 아내, 엄마로서 느낀 일상사의 차분한 감정을 시를 통해 쏟아부은 작가들의 시는 한 편의 강렬한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하고 압축된 영상의 한 부분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어김없이 계절을 제 할 본분을 다하고자 하는 이때, 여류시인들이 들려주는 시를 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