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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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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결혼
타야리 존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나는 우리의 결혼 생활이 섬세하게 짠 태피리스트처럼 연약하지만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그것을 자주 찢었고 매번 다시 수선했다. 예쁘지만 분명히 다시 끊어질 비단실로.

그러나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랑은 저 어딘가에서 무작위적이고 치명적으로 생겨난다. 마치 토네도 처럼.

결혼생활은 개성 있는 자신만의 모든 것을 간직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새로운 길의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하는 제도다.

이 제도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범주의 이야기들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어떤 때는 나의 이야기도 될 수 있고 마치 글 속에서처럼 여겨지는 한 부분으로 믿지 못할 부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새해 들어 두 권의 책 속 주인공들이 모두 흑인이다.

처음 이 책을 선택했을 때는 만남과 연애, 사랑, 결혼을 통과한 부부가 어떤 고난을 겪으면서 어떻게 이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줄지 사뭇 궁금한 점도 있었고 유독 제목이 주는 미국식 결혼이란 것에 호기심이 강하게 와 닿은 부분도 있다.

로이는 유망한 직장인으로서 인형공예를 하고 있는 예술가 셀레스철과 결혼한 신혼부부다.

어느 날  자신의 부모님 집을 방문 후 그들은 호텔에 들러 하룻밤을 묶는다.

그곳 호텔에서 로이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말하게 되는데, 자신의 친부는 어린 엄마를 유혹하고 임신시킨 후 떠났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아내 셀레스철은 이 부분에 대해 로이의 그동안의 말과 행동들을 열거하며 둘은 다투게 된다.

둘은 잠시 휴전을, 이후   로이는 호텔 복도로 잠시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팔을 다친 부인을 도와주게 된다.

그녀의 방까지 들어간 로이는 밖의 손잡이가 허술하니 자물쇠를 살펴보란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오게 되고 둘은  화해를 하게 되는데 얼마 후 경찰이 들이닥치면서 로이를 체포해간다.

도움을 줬던 여인이 괴한에게 강간 폭행을 당했고 여인은 로이를 지목, 결국 로이는 12년형을 선고받는다.

책은 이후 로이, 셀레스철, 그리고 셀레스철의 죽마고우인 안드레의 일인칭 시점으로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결백한 로이와 아내로서 그를 면회하고 돌봐야 하는 셀레스철, 그러면서 자신의 캐리어 경력을 포기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들이 그 둘 사이의 편지를 통해 점차 미세한 균열의 틈이 보이기 시작한다.

세상의 담과 막힌 채 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로이의 심정과 셀레스철에 대한 사랑은 세상 밖에서보다 더욱 간절하게 다가오고 이는 셀레스철로 하여금 12년간 죄수의 부인이란 꼬리표를 달고 뒤바라지를 해야 한다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다각적인 생각의 변화로 인한 고통과 원만치 못한 시댁과의 관계까지 겹치면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묵직함의 느낌을 선사한다.

어디서 어긋난 것일까?

흑인이란 태생으로 미국 안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박힌 생각들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특히 셀레스철의 아버지가 흑인 남성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부분들을 말한 부분이나 로이의 부모님이 살아온 생활상들은 같은 흑인의 가정이라도 격차가 있고 이는 곧 결혼이란 제도 하에서 수평적이지 않은 만남의 여파, 여성들의 진취적인 사회생활과 가정생활, 아들에 대한 흑인 엄마들이 갖고 있는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엮여 그려나간다.

여기에 오랜 친구이자 형제라고 느끼면서 지내온 안드레의 시선은 로이와 셀레스철을 소개한 장본인이면서 로이가 감옥에 있던 5년 중 나머지 2년을 사랑하는 연인 사이로 변한 셀레스철과의 관계, 로이를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느낀 감정들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우리는 상대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로이가 생각하고 있던 셀레스철에 대한 앎, 함께 할 수 없는 결혼이란 무의미하다며 결혼을 이어갈 수없다고 말하는 셀레스철이 갖고 있는 생각, 둘 사이를 알면서도 ‘사랑’을 미처 깨닫지 못했고 이제는 ‘사랑’이란 이름 아래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는 안드레까지, 무엇이 이들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생각은 암담하게 느껴진다.

***** 결국 우린 그걸 두고 심하게 다퉜고 바로 그 불화가 지금 내가 처한 곤경으로 이어졌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모른다 게 어떤 기분인지 지금  이 순간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 “로이, 함께하는 삶이 없는 결혼생활은 지속될 수없어. 무고하게 감옥에 갇힌 널 결코 버리지 않아. 하지만 네 아내로는 살 수 없어.”

***** 두 분은 한 지붕 아래에서 삼십 년 넘게 함께 사셨잖아. 어떤 면에서는 함께 변하고 함께 성장하셨고(중략…) 결혼은 그런 거잖아. 지금 우리에겐 결혼 생활이랄 게 없어. 결혼은 마음의 문제를 넘어선 삶의 문제니까. 그런데 우리에겐 함께하는 삶이 없어.

미국의 법 제도 안에서 겪는 이런 일들이 결코 로이에게만 해당된다는 식의 말이 아니란 것이 더욱 놀랍지만 흑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정당한 법적 잣대의 분명치 못한 선고가 젊은 신혼부부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를 여실히 보인 작품이다.

마주 보고 얘기를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고 글이란 것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들이 있지만 이 책의 구성을 통해 보인 60여 쪽의 분량의 편지글은 정말 가슴이 아팠다.

자신에게 바로 말하지 못했다고 셀레스철은 로이를 비난했지만 자신 또한 대학을 다니면서 경험한 끔찍한 일들을 말하지 못한 부분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것이 로이가 말한 부분을 로이의 입장에서 바라봤다면 그녀 또한 자유롭지 못했고, 안드레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확인했다면 로이에게 이혼 소송을 통한 분명한 자신의 의지를 밝혔어야 로이의 감정이 더 쉽게 수습될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것이 생각했던 대로 타이밍이 어긋난 부분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사랑은 소유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향한 모든 부분들에 대한 공감과 다름의 인정, 이것을 넘어 인내란 것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로이가  셀레스철에 대한 원한 것을 넘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던 부분들은 이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의무로 받아들인 셀레스철의 행동과 말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도 아프게 다가왔다.

행복했던 그들이 불행이 닥칠 줄 모르고 들었던 다리에서 들은 소리들, 자신만을 위해 식탁을 차려줄 것을 기대했던 로이의 기대감이 세 사람의 관계를 통해 어떤 결단들을 내렸는지를 세심한 필치로 그려낸 작가의 글이 인상적이다.

매 문장마다 놓칠 수 없는 부분들의 느낌과 행간이 전해주는 미묘한 감정선들의 복잡함, 제목만 미국식 결혼이었다 뿐, 국적을 떠나 보편적이고 개인들마다 지닌 사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잘 그려낸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오프라 윈프리가 곧 영화로 만들 예정이란다.)

태어난 게 범죄

죄

태어난 게 범죄 – 트레버 노아의 블랙 코미디 인생
트레버 노아 지음, 김준수 옮김 / 부키 / 2020년 10월

익살스럽기도 하고 뭔지 모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한 묘한 표정-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남아공 출신의 코미디언이자 미국 정치 풍자 뉴스 프로그램 《더 데일리 쇼》의 진행자인 트레버 노아는 자신이 태어난 배경과 고국에서 성장하면서 겪었던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제목 자체가 주는 의미가 뭘까?를 우선 생각했다.

누구나 태어남을 축복받고 기뻐해야 할 그 부분에서 범죄라니, 그런데 사실 트레버에겐 나라의 법 잣대로 보자면 범죄에 해당된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하에서 이미 백인들이 자신의 우월권을 차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 서로 다른 인종들, 백인과 흑인 간의 성관계를 비롯한 다른 인종들 간의 결합은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지는 범죄 행위라고 한다니, 이 잣대를 두고 보면 트레버는 죄를 지은 부모의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죄라면 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일찍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삶을 살았던 엄마의 자주적인 생각과 실천은 곧 스위스 출신의 백인 아버지에게 끈질긴 요구(?)로 자신의 분신이자 친구로서 트레버를 낳는다.

아버지를 아버지를 부르지 못하고 길을 함께 걸을 수 없었던 상황의 시대, 엄마는 자신의 키우는 하녀처럼 보이는 상황을 연출하는 기막힌 상황들, 함께 살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성장과정은 녹록지가 않았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유년의 시절, 계부의 학대와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닌, 그렇다고 유색인으로 분류도 될 수 없었던 트레버의 인생은 이미 일찍부터 철이 들었고 자신이 어느 상황에서 어떤 행동과 말을 해야 안전하고도 그 부류에 함께 할 수 있는지를 터득해가는 과정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태내용

 

 

책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엄마란 존재, 자신을 닮은 인생의 전철을 닮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남아공의 현실과 부딪치면서 이겨나가고 트레버를 향한 교육은 때론 엄격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보다 더 나아져야 해, 고통이 너를 단련하게 만들되,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비통해하지 마라.”

책이나 세계정세의 한 부분으로 인식한 아파르트헤이트란 정책 안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인종차별로 인한 극도의 빈곤의 나날들, 그런 가운데 부와 빈부의 격차, 벗어나고 싶어도 쉽지 않은 그들만의 세계를 보임으로써 이를 유머로 승화시킨 트레버란 인물의 이야기가 뭉클하게 전해진다.

가장 잊을 수없는 장면중 한 부분인 “고 히틀러!”란 제목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보통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역사의 이야기가 그들에게는 어떻게 생각되고 비추는지, 웃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진정한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면서 읽게 되면 그들의 역사 또한 그러한 인정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웃었다가 아파했다가 분노도 느끼며 읽은, 그의 인생의 앞날이 더욱 환한 빛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읽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