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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상설 선생 생가
3~5> 숭열사
6~7> 이상설 선생 동상 및 비문
8> 러시아 우스리스크에 있는 이상설 선생 유허지
9> 이상설 선생의 유언에 따라 화장하고 그 재를 유허지(사진8) 바로 앞으로 흐르는 수이푼 강물에 뿌리다.
이상설(李相卨) 선생 (1870~1917)
대한협동회(大韓協同會) 회장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
본관 경주(慶州). 호 보재(溥齋). 본명 순오(舜五). 충북 진천(鎭川)군 덕산면에서 출생하였다.
동부승지였던 이용우의 양자로 입적하여 서울로 이주하였으며 양명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신학문을 접하고 영어 ·러시아어 ·법률 ·수학 등을 공부하였고
독학으로 상당한 수준에 이를 정도로 명석했다고 전해진다.
1907년 고종의 밀지(密旨)를 받아 이준(李儁) ·이위종(李瑋鍾)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참석하려 하였으나 일본에 의해 거부당했다.
이후 러시아 우스리스크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그곳에서 서거하셨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이상설 선생 유언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
광복을 보시고 돌아가셨으면 좋았을것을 하고 생각 해 봅니다.
옛 선열들은 민족의식과 애국심이 뚜렷했지요.
요즘 정치모리배들도 좀 본받았으면 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은 가족과 가정을 돌보지 못해
후손들이 대기는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에서 헛된 돈 쓰지 말고 이분들위해
잘 돌보아 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