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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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의 주역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사카성>
오사카의 상징인 오사카 성은 16세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 통일을 달성한 후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은 성으로 10만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1583년에 축성을 시작했다. 완성 당시 금박 장식으로 뒤덮인 호화로운 모습이었으나 이후 소실과 재건의 역사를 거쳤으며 지금의 건물은 1931년에 콘크리트로 복원된 것인데 병풍에 그려진 그림을 참고한 것이라고 한다.

오사카 성은 도요토미가 사망한 후인 1615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공격으로 소실되었다. 1620년에 도쿠가와 막부가 성을 재건했으나 이전의 성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후에도 벼락을 맞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침내 1931년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지만, 성은 도쿠가와 막부 시절의 모습과 건립 당시의 모습이 혼재되어 있다.

사진 1) 정문
사진 2) 돌 하나의 무게가 130톤(돌은 200Km를 다시마 위의 굴림목으로 운반했다 함)
사진 3~5) 천수각
사진 6) 城內 해자
사진7~8) 城外 해자

*해자 : 방어용으로 성 주위에 둘러 판 못.

쌀밥처럼 흰 이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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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았다.
이밥은 ‘이(李)씨의 밥’이란 의미로 조선왕조 시대에는 벼슬을 해야 비로소 이씨인 임금이 내리는 흰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하여 쌀밥을 ‘이밥’이라 했다.
이팝나무는 이밥나무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생각된다. 꽃의 여러 가지 특징이 이밥, 즉 쌀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는 꽃이 피는 시기가 대체로 음력 24절기 중 입하(立夏) 전후이므로,
입하 때 핀다는 의미로 ‘입하 나무’로 불리다가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북 일부 지방에서는 ‘입하목’으로도 불린다니, 발음상으로 본다면 더 신빙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교토의 천년 고찰 淸水寺(기요미즈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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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즈데라()는 780년에 나라에서 온 승려 엔친이 세운 사찰로 알려져 있다.
오토와산() 중턱의 절벽 위에 위치한 사원으로 사원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위태로워 보이지만 막상 들어서면 탁 트인 전망에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본당에서 바라보이는 사계절의 풍경이 절경으로 이름 높다. 본당(사진5)은 보수 중이라 아쉽게 못 들어 갔다.
사계절 모두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지만 4월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11월 말부터 12월 초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 기요미즈[淸水]는 ‘성스러운 물’이라는 뜻이다. 오노타키폭포는 기요미즈사에서 물을 받아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맨 왼쪽의 폭포는 지혜, 중간은 사랑, 오른쪽이 장수에 좋다고 전해진다.(사진 6)

일본 나라[奈良] 시에 있는 도자이지-동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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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大寺 : 일본 나라[奈良] 시에 있는 일본불교 화엄종(華嚴宗)의 대본산

남도(南都) 7대사의 하나이다. 745년에 쇼무 왕[聖武王]의 발원으로 로벤[良弁]이 창건하였다.
본존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로 앉은 키 16m, 얼굴 길이가 5m나 되어 속칭 나라 대불(大佛)이라고 한다.
일본 삼계단(三戒壇)의 하나로서 중요시되고, 헤이안[平安]시대를 통하여 고후쿠지[興福寺]와 더불어 일본 불교계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사역(寺域)이 넓어 당우(堂宇)가 흩어져 있지만, 중심인 대불전,
즉 금당(金堂)은 에도[江戶]시대에 재건된 것으로서 높이 47.5m나 되는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사찰내에 사슴이 방문객들과 친하여 더 즐겁게 해 준다. (두산백과 발췌)

4.26~4.28에 일본을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