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적 대보름날에는…

내일이면  정월 대보름이다.

오늘은 작은 보름,  서울지역에서는 오늘 저녁에 나물과 오곡밥을

해먹지만   내 어릴적 우리 고향에서는 내일,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오곡밥이나 약밥을 해서 갖은 묵나물볶음과  함께  김을 반드시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럼깨물기 부터 했었지.

요즘이야 돈주고 사면 되는 호두나 땅콩으로 부럼을 깨물지만  그때는

어머니가 정성들여 만든 강정(쌀이나 콩을 볶아서 엿으로 버무린 과자)

으로 부럼깨물기를  했었다.   부럼을 소리나게 잘 깨물어야 한 해 동안

몸에 부스럼이 안 생긴다고.

 

대보름1

정월 대보름이라고 내가 마트에서 사 온 땅콩과  호두다.

정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부럼깨물기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나서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서

설에 입었던  새 옷을  꺼내입고는  큰 소쿠리를 들고  집집 마다

다니며  밥을 한 숟가락씩  얻어서  방앗간에다  가져다 놓고

달이 뜨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는  맨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 더위 사세요”  하면서  더위팔기도

했다.

 

남자 아이들이  짚불놀이를  한다고  짚단을 들고  강변쪽으로  달려 갈 때

여자 아이들은  방앗간 (각 가정에 있던 디딜방아)에  모여   방아 다리에

걸터 앉아  떠오르는 달을  쳐다보며  낮에 얻어 둔 밥 한숟갈 먹고

달 한번  쳐다보고,  그리고는  따라 온  강아지들에게도  주곤 했었다.

그때는 개들에게는 보름날 달 뜨기전에는 밥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개 보름 쐬듯”   이다.

하루종일 굶었다가  달 뜰 무렵  우리들이 던져주는 밥을  얻어 먹을 때

얼마나  맛있었을까?    강아지들도 뛰고,  우리도 뛰고……. 정월 대보름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었지.

 

대보름2

어른들이 동네별로 줄다리기를  한다던가,   농악대가  우리집 부엌과

방안을 드나들며 지신밟기를 한다던가,  귀 밝이 술로  떠들석  해도

우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방앗간에서  재잘거리기만  하고….

 

정월 대보름에도  한 삼일은  흥청거리며 놀았던것  같다.

추우니까 그네는  안 뛰었지만  대신에  널뛰기는  했었다.

 

정월 대보름날 우리집에서는 매년마다  약밥을 했다.   지금  떡집에서

파는 약식과 거의 같은데 설탕을  넣지 않고  소금을 조금 넣었다.

나는 이 약밥누룽지를  좋아했다.   엄마는  일부러  밥을 좀  눗게해서는

누룽지를  만들어서  주시곤 했는데 그 누룽지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나물은  호박이나 가지, 산나물 말린것과  아주까리 잎 말린것으로도

만들었다.  나는 아주까리잎이  약간  씁쓸하면서도  좋았다.

 

아,  그런데 나는  내일 아침  아무것도  안 할거다.

아들도  출장가고 없고,  딸네집으로  보름밥 먹으러 갈테니까

땅콩과 호두만  조금  사 놓았을 뿐이다.

 

그래도  달이 뜨면  달에게 소원은  빌어야지 ~~

 

18 Comments

  1. 영지

    2016년 2월 21일 at 8:45 오전

    데레사님 어렸을때 풍습이 참 정겹습니다. 강아지 까정…
    반드시 김하고 잡수신것도 맛있었겠어요.
    땅콩이 겉 껍질까지 있어같고 파는건 대보름 때뿐이죠?

    • 데레사

      2016년 2월 21일 at 9:06 오전

      네, 대보름때만 저렇게 팔아요.
      아마 껍질을 까면서 내는 소리로 부럼깨끼를 하라는
      뜻 같아요.
      우리 어릴적에는 저런걸로 안했거든요.

  2. dotorie

    2016년 2월 21일 at 8:45 오전

    건강하시고 소원성취 하시는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

    • 데레사

      2016년 2월 21일 at 9:06 오전

      고마워요.
      오늘 달 뜨면 우리 모두의 건강을 빌어야 겠습니다.

  3. West

    2016년 2월 21일 at 9:53 오전

    선배님 글을 보니 마치 옛날 이야기 듣는것 같아요. 저는 서울에서 낳고 자라서인지 그렇게 풍부한 기억이 없어요. 오곡밥 그리고 아홉가지 나물 그리고 부럼. 그런 정겨운 추억이 많으신 선배님이 무지 부럽답니다. 개 대보름 쇠듯하다. 오늘 배웠어요.건강하시고 이번 대보름에 소원하시는 일 성취하시기를 빕니다.

    • 데레사

      2016년 2월 21일 at 4:01 오후

      반가워요. West님.
      그곳에서도 오곡밥은 해 먹는지 궁금해요.

      옛날에는 설과 함께 보름도 큰 명절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가게에서 땅콩과 호두등을 팔고 그럴 뿐
      조용합니다.
      역시 명절은 옛날이 좋았지요.

  4. 초아

    2016년 2월 22일 at 6:39 오전

    오늘이 보름
    찰밥해먹을 준비해놓고, 나물도
    귀밝이 술도 부름깨물 땅콩도 한줌 준비끝.
    남편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컴 하고 있어요.^^

    • 데레사

      2016년 2월 22일 at 1:14 오후

      역시 부지런하신 초아님.
      초아님네도 숟가락 들고 갈까봐요. ㅋ

  5. 無頂

    2016년 2월 22일 at 2:33 오후

    세시풍속이 충청도하고 비슷하군요.
    오늘밤 소원 빌어 보세요.
    달님이
    한가지는 꼭 들어 준다합니다 ^&^

    • 데레사

      2016년 2월 22일 at 8:12 오후

      달 안 뜬다고 해서 아직 바깥을 내다 보지도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내다보고 빌어야 겠습니다.

  6. 나의 정원

    2016년 2월 22일 at 4:33 오후

    오늘 날씨가 꾸물꾸물하긴한데 달님이 나올까요?
    소원성취 비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인데 말이죠….

    ]

    • 데레사

      2016년 2월 22일 at 8:12 오후

      달 없어도 있거니 하면서 하늘보고 빌어야죠. ㅎ

  7. 睿元예원

    2016년 2월 22일 at 7:56 오후

    저도 암것도 안하고 싶었는데
    막일꾼님 한상 차려 보라 하시기에
    냉장고에 모아 뒀던 묵은 나물거리를
    꺼내고 잡곡을 섞어 육칠곡밥을 짓고
    나물을 했건만 아까븐 들기름에 참기름에
    아낌없이 부어서 볶았지만서도
    넘 맛없게 되었더군요.
    한상 차려 올리려다 관뒀답니다.
    오늘 그거 먹느라고 고생이 많습니다.
    그나마 김때문에 좀 낫구만유.

    저 널뛰기 하면 아무도 이길자가 없었거든요.
    널을 뛰는 거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 데레사

      2016년 2월 22일 at 8:13 오후

      널뛰기하면 치마자락이 이웃집 담넘어에서도 보일 정도로
      높이 올라갔어요. 내가 아니고 울 언니. ㅎ

      지금은 보름인지 설날인지 표도 안나요.

  8. 벤자민

    2016년 2월 22일 at 9:55 오후

    여기야 말로 개보름 ㅎㅎ
    오는지 가는지 도통 감이 없습니다
    동포는 웁니다 ㅎㅎ

    • 데레사

      2016년 2월 22일 at 11:30 오후

      한국도 마찬가지에요.
      시골에서는 달집태우기도 하는것 같지만 도시에서야
      그저 오곡밥에 나물 해먹는 정도, 윷놀이 대회 같은게 있을
      정도입니다.

  9. 모가비

    2016년 2월 28일 at 8:50 오전

    올 한해도 좋은 일 많으시고
    건강하시고 활발한 한해이시기를~~~

    • 데레사

      2016년 2월 28일 at 8:55 오전

      반갑습니다.
      모가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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