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부활절, 미사 후에 달걀 두 개를 받았다.
달걀, 지금은 흔해져서 귀한 음식도 아니고 콜레스테롤이니 뭐니해서
오히려 기피하는 식품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우리들
젊은 시절의 가정주부들은 달걀 하나 마음 놓고 자기 입으로
못 가져 가던 시절도 있었다.
달걀 한 꾸러미, 열개를 사 봤자 아이들 도시락 반찬으로, 남편의
보양식으로 상에 올리고 나면 여자들은 먹어보기도 쉽지 않았던
그 달걀, 부활절 달걀 두 개를 받아와서 거실 탁자위에 올려
놓고 나는 문득 오래전의 달걀 한 꾸러미를 내게 선물했던 어떤
아주머니를 떠 올린다.
40여년이 훌쩍 지나 간 그 때 , 나는 서울 북쪽의 신설된 경찰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유치장에 절도로 수감된 아주머니가 이 경찰서에 근무하는 여경을
만나서 부탁할게 있다고 하니 나더러 좀 와 달라는 유치장 근무자의
부탁이 있어서 가 보았드니, 그 때의 나보다 두 서너살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너댓살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와 같이 유치장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드니
도둑질을 하다 잡혔는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데리고 왔다고
이 아이를 교도소 갔다 올 동안 좀 맡아달라는 거였다.
그래서 관내에 있는 고아원을 찾아 가 부탁 드렸드니 맡아주겠다고
해서 아이는 고아원으로, 엄마는 교도소로….. 이렇게 헤어지고 나는
그 일은 깜빡 잊은 채 1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사무실로 나를 찾아 온 한 아주머니, 얼굴이 낯이 익은듯했다.
” 저 1년전에 아이를 맡겨놓고 교도소로 갔던……”
아, 이 말을 듣는 순간 얼른 그때의 그 일이 떠 올랐다.
만기가 되어 출소했다고 아이를 찾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와 함께 고아원으로 달려 갔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었다. 엄마를 보자 뛰어 나와 부등켜 안고 우는
두 모녀를 보며 다시는 죄짓지 말고 힘들드래도 일 해서 살아주기를
바라면서 그 들을 돌려 보냈다.
며칠후 달걀 한꾸러미를 사들고 그 아주머니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면서 찾아 왔다. 그때는 달걀을 짚으로 엮어서 팔 때다.
그 달걀을 보니 얼마나 작은지, 돈이 없어서 제일 작은걸로 산 모양이었다.
이걸 안 받으면 보잘것 없어서 안 받는다고 할것 같아서 웃는 얼굴로
받아 들고 잘 먹겠다고, 다시는 이런 곳에서 우리 만나지 말자고 하면서
보냈던 그 아주머니와 딸 생각이 부활절 달걀위에 어른 거린다.
처음 조블을 할 때 한번 피력했던 사실인데 어제 부활 달걀을 보니
또 그 아주머니 생각이 났다.
아직은 살아 있을 나이이니 아주머니도 아이도 평범하게 살고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그리고 이 부활달걀을 선물하고 싶다.
초아
2016년 3월 28일 at 8:33 오전
저도 어제 교회에서 부활절 계란 받았어요.
알록달록 때때옷을 입은 계란과 그냥
삶은 계란 이렇게 받았습니다.
아직 믿지 않은 남편꺼는 예쁜 옷 입은 계란
혼자 믿는다는건 좀은 어렵습니다.
데레사
2016년 3월 28일 at 9:18 오전
차차 믿으시겠지요.
강요하지 마세요.
남편께 예쁜것 드렸네요.
잘 하셨어요.
예원
2016년 3월 28일 at 10:21 오전
저도 성당에 다니는 이웃님으로부터 두개 받았지요.
두 모녀가 잘 살고있기를 바래봅니다.
데레사
2016년 3월 28일 at 12:05 오후
네, 달걀만 보면 그 모녀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도둑질을 하면 안되는데
말입니다.
그후 못 만났으니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J Kim
2016년 3월 28일 at 11:54 오전
데레사님,
애독자입니다.
경찰공무원으로 장기재직하신 후 은퇴하셨다지요. 경찰관과 군인 그리고 소방대원을 존경하며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 직종 중에서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직업이지요. 애국심과 사명감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근래 미국에서 총기사건으로 수 많은 경찰이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경찰은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사명감으로 무장한 고마운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소수의 문제있는 사람들은 어느 직종에도 있지요.
미국에서는 경찰관이나 소방관 한명이라도 순직하면 그 장례식에 수백, 수천명의 동료들이 참석해 애도하는 장면을 뉴스에서 봅니다. 심지어는 타주에서도 오고 많은 시민들도 참석하지요. 마땅한 일입니다. 모두들 정복을 단정하게 입고 엄숙히 진행하는 걸 보며 울컥하거나 눈물이 난 적도 많습니다.
한국에도 데레사님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수 많은 경찰관들이 궂은 일 마다않고 묵묵히 일하고있다는 걸 알고있습니다.
다음 번 한국에 나가면 뵙고싶습니다.
미국에서 J Kim
데레사
2016년 3월 28일 at 12:07 오후
고맙습니다. 미국에 사시는군요.
어느 직종이나 미꾸라지 몇마리 때문에 전체를 흐리고
또 그런 일들만 보도되어서 그렇지 사실은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게 현실입니다.
격려의 말씀,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無頂
2016년 3월 28일 at 2:06 오후
고마운 선물이네요 ~~
데레사
2016년 3월 28일 at 6:03 오후
네, 고마운 선물이지요.
어려운 형편에 달걀을 샀으니 안 받을수도 없고…
카스톱
2016년 3월 28일 at 2:50 오후
감명 깊습니다. 부탁과 배려 모두 아름답네요
데레사
2016년 3월 28일 at 6:03 오후
어디서든 잘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고 싶어요.
나의 정원
2016년 3월 28일 at 3:21 오후
뜻깊은 달걀에 얽힌 사연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나의 사연’이구나 하실텐데 말이죠….
데레사
2016년 3월 28일 at 6:04 오후
어디서든 잘 살고 있기만을 늘 바라고 있습니다.
enjel02
2016년 3월 28일 at 3:23 오후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 고통을 받았으니 회개하고 다시는
죄를 짖지 않고 잘 살고 있겠지요
데레사 님 우리 구역에서는 부활절 계란을
찜질방에서 사 먹는 백반석 계란을 넉넉하게 사서
예쁘게 포장을 했지요
그리고 가까운 이웃이나 아파트 경비 아저씨
그리고 이웃의 냉담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부활이라는 의미를 다시 새겨 주었어요
데레사
2016년 3월 28일 at 6:06 오후
우리도 부활달걀을 받으니 찜질방 달걀이더라구요.
이제는 모두 그렇게 하나 봐요.
잘 하셨어요. 경비실 까지 생각하셨으니….
제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