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을위한연가-문정희
한겨울못잊을사람하고
한계령쯤을넘다가
뜻밖의폭설을만나고싶다.
뉴스는다투어수십년만의풍요를알리고
자동차들은뒤뚱거리며
제구멍들을찾아가느라법석이지만
한계령의한계에못이긴척기꺼이묶였으면.
오오,눈부신고립
사방이온통흰것뿐인동화의나라에
발이아니라운명이묶였으면.
이윽고날이어두워지면풍요는
조금씩공포로변하고,현실은
두려움의색채를드리우기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나타났을때에도
나는결코손을흔들지는않으리.
헬리콥터가눈속에갇힌야생조들과
짐승들을위해골고루먹이를뿌릴때에도…
시퍼렇게살아있는젊은심장을향해
까아만포탄을뿌려대던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꿩들의일용할양식을위해
자비롭게골고루먹이를뿌릴때에도
나는결코옷자락을보이지않으리.
아름다운한계령에기꺼이묶여
난생처음짧은축복에몸둘바를모르리.
한계령-양희은
저산은내게오지마라오지마라하고
발아래젖은계곡첩첩산중
저산은내게잊으라잊어버리라하고
내가슴을쓸어버리네
아그러나한줄기바람처럼살다가고파
이산저산눈물구름몰고다니는
떠도는바람처럼
저산은내게내려가라내려가라하네
지친내어깨를떠미네
한계령-양귀자
새부천나이트클럽은의외로이층에있었다.막연히지하의음습한어둠을상상하고있었던나는입구의화려하고밝은조명이낯설고계면쩍었다.안에서들려오는요란한밴드소리,정확히가려낼수는없지만수많은사람들이어우러져내는소음들때문에나는불현듯내집으로돌아가고싶어졌다.이런줄도모르고아까집앞에서지물포주씨에게좋은데간다고대답했던게우스웠다.가게밖에진열해놓은벽지들을안으로들이던주씨가늦은시각의외출이놀랍다는얼굴로물었었다."어데가십니꺼?"봄철장사가꽤재미있는모양,요샌얼굴보기힘든주씨였다.한겨울만빼고는언제나무릎까지닿는반바지차림인주씨의이마에땀이번들거리고있었다.가죽문을밀치고나오는취객들의이마에도땀이번뜩거리는것을나는보았다.계단을내려가는취객들의어지러운발자국소리를세고있다가나는조심스럽게가죽문을밀고안으로들어섰다.
기대했던대로홀안은한껏어두웠다.살그머니들어온탓인지취흥이도도한홀안의사람들가운데나를주목한이는한사람도없었다.구석에몸을숨기고서서나는무대를쳐다보는중이었다.이제막여가수한사람이스포트라이트를받으며등장하는중이었다.은자의순서는끝난것인지,지금등장한여가수가바로은자인지나로서는전혀알도리가없었다.내가서있는자리에서무대까지는꽤먼거리였고색색의조명은여가수의윤곽을어지럽게만들어놓기만하였다.짙은화장과늘어뜨린머리는여가수의나이조차어림할수없게하였다.이십오년전의은자얼굴이어땠는가를생각해보려애썼지만내머릿속은캄캄하기만하였다.노래를들으면혹시알아차릴수도있을것같아나는긴장속에서여가수의입을지켜보았다.서서히음악이흘러나오기시작하였다.악단의반주는암울하였으며느리고장중하였다.이제까지의들떠있던무대분위기는일시에사라지고오직무거운빛깔의음악만이좌중을사로잡았다.
그리고탁트인음성의노래가여가수의붉은입술에서흘러나오기시작하였다.저산은내게우지마라,우지마라하고발아래젖은계곡첩첩산중…..가수의깊고그윽한노랫소리가홀의구석구석으로스며들면서대신악단의반주는점차희미해져갔다.나는자신도모르게한걸음앞으로나가서노래를맞아들이고있었다.무언지모를아득한느낌이내등허리를훑어내리고,팔뚝으로번개처럼소름이돋아났다.나는오싹몸을떨면서또한걸음앞으로나갔다.가수는호흡을한껏조절하면서,눈을감은채노래를이어가고있었다.저산은내게잊으라,잊어버리라하고내가슴을쓸어내리네……가수의목소리는그윽하고도깊었다.거기까지듣고나서야나는비로소저노래를예전부터알고있었다는데생각이미쳤다.분명몇번들은적이있었다.그랬음에도전혀처음듣는것처럼나는노래에빠져있었다.아니,노래가나를몰아대었다.다른생각을할틈도없이노래는급류처럼거세게흘러들이닥쳤다.아,그러나한줄기바람처럼살다가고파.이산저산눈물구름몰고다니는떠도는바람처럼……여가수의목에힘줄이도드라지고반주또한한껏거세어졌다.나는훅,숨을들이마셨다.어느한순간노래속에서큰오빠의쓸쓸한등이,그의지친뒷모습이내게로다가왔다.그모습을보지않으려고나는눈을감았다.눈을감으니까속눈썹에매달려있던한방울의눈물이볼을타고흘러내렸다.
노래의제목은’한계령’이었다.그러나내가알고있었던한계령과지금듣고있는한계령사이에는커다란차이가있었다.노래를듣기위해이곳에왔다면나는정말놀라운노래를듣고있는셈이었다.무대위에서혼신의힘을다해노래를부르는저여가수가은자아닌다른사람일지라도상관없는일이었다.나는온몸으로노래를들었고여가수는한순간도나를놓아주지않았다.발밑으로,땅밑으로,저깊은지하의어딘가로불꽃을튕기는전류가자꾸쏟아져내리는것같았다.질퍽하게취하여흔들거리고있는테이블의취객들을나는눈물어린시선으로어루만졌다.그들에게도잊어버려야할시간들이,한줄기바람처럼살고싶은순간들이있을것이었다.어디큰오빠뿐이겠는가.나는다시한번목이메었다.그때,나비넥타이의사내가내앞을가로막고정중하게고개를숙였다.
"테이블로안내해드릴까요?"
웨이터의말대로나는내가앉아야할테이블이어딘가를생각했다.그리고는막막한심정으로뒤를돌아다보았다.뒤는,내가돌아본그뒤는조명이닿지않는컴컴한공간일뿐이었다.아마도거기에는습기차고얼룩진벽이있을것이었다.나는웨이터에게무언가를말하려고하였다.하지만아무런말도나오지않았다.저산은내게내려가라,내려가라하네.지친내어깨를떠미네…..더듬거리고있는내앞으로한계령의마지막가사가밀물처럼몰려오고있었다.
집에돌아와서야나는내가만난그여가수가은자라는것을확신하였다.넘어지고또넘어지고,많이도넘어져가며그애는미나박이되었지않은가.울며울며산등성이를타오르는그애,잊어버리라고달래는봉우리,지친어깨를떨구고발아래첩첩산중을내려다보는그막막함을노래부른자가은자였다는것을그제서야깨달은것이었다.
……….
인천서첫차타고장수대에도착11:00전에가리능을향하던일
원통서새벽출발할때담배잊고와서한계령에서사지하면서왔다가
엄동설한에꽁꽁닫아버린한계령휴게소를보고넋나갔던일
백두대간구간종주시한계령을거쳐망대암산가는길을찾던일
속초서인천까지택시타고가다가한계령에들려산채비빔밥먹던일
오색약수서독주폭을넘어화채능내려갈때
대승폭포를오르며느꼈던그설레임이있는일
양희은의노래선률은
그외의무수한한계령의추억을되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