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5) – 해인사
딸이그렇게도가고싶어하던해인사는쉽게기회가오지않았다.

이번가야산산행의종착지로처음본해인사.

말그대로가야산에서본능선의수려함에운해가있다면바다로볼수있는곳

그곳에해인사가있었다.

11월하순이라해가일찍진다.

늦은시간에잠깐들린수박겉핱기식의해인사관람이다.

이번엔이름만짓는아쉬움이었고다음에는딸과함께대장경도보고싶다.

해인사일주문이다.(16:48)

번뇌의풍랑이멎어’고요한바다’해인사

가야산은해인사를품고해인사는걸출한인물과각종문물을품고있다.산속에서바다이미지가떠오르는곳이해인사다.가야산이뿜어내는물을실은두갈래의큰골짜기가운데놓인절의모습이떠가는배(행주형)처럼보이는데다해인이란이름이풍기는의미때문이다.바다해(海)자와도장인(印)자를쓰는해인은’화엄경’의’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따왔다고한다.해인은풍랑처럼일던번뇌가사라진마음처럼고요한바다에만상이비친듯한경지를일컫는다고한다.

해인사는애장왕3년(802)에창건됐다.애장왕은귀족들이사찰에재산을빼돌려놓는것을막기위해새로사찰을짓지못하고수리만하도록했다.그런왕이스스로해인사를창건했는데그이유는왕비의병을고친보답때문이라고전해지고있다.조선태조7년(1398)에는강화도에있던팔만대장경을해인사로옮겼다.불법의정수가새겨진대장경이옮겨짐에따라법보사찰이란명성을얻었다.임진왜란,한국전쟁과같은병화도피했다.17세기이후7차례화재가있었으나요사채일부만태우고장경각등은피해가없었다.1995년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등재됐다.

해인사는균여대사와같은학승도배출했으나현대에와서는성철스님의흔적이크다.일주문입구에있는성철스님의사리탑은“산은산이요,물은물이다”라는스님의법어처럼간결하다.이사리탑불사를지휘한원택스님(백련암감원)은“원로들은기품있는사리탑이신라·고려때이후드물어졌다며모방에불과한탑을만들지않도록당부했다”면서“이에따라문화재계원로인황수영·김동현·정영호박사등의조언에따라높지않고,조각문양이없으며,현대적조형미를갖춘사리탑을만들게됐다”고말했다.사리탑은공모전을거쳐재일여류설치작가최재은씨가제작했으며연좌대를맞붙인모양에진리를상징하는구가얹혀있다.<출처:경향신문사>

만추의늦은시간,해인사에들어가는사람들보다관람하고나오는사람들이더많다.

느티나무고사목앞에서사진을찍고추억을만든다.

이고사목은해인사창건당시심어진기념식수였다고한다.

1,200여년을해인사와함깨한이느티나무는1945년고사하고,지금은둥치만남았다고한다.

해인총림현판이다.

총림설명글사진이다.<퍼온글>

가양총림⇒가야총림,숭덕총림⇒덕숭총림<오자수정>

저글씨가뭐야?

바람풍자같기도하구

그렇다면풍풍문?

얼마전은사스님을모시고공연을보러가면서스님께서차안에서들려주신이야기랍니다.

간경을잘하시는학인스님이계셨답니다.

이스님은천수면천수금강경이면금강경약찬게면약찬게

하여튼무슨경이든잘외우고그것을늘자랑스러워하셨다네요.

하루는이스님이다른도반스님들과산내암자인약수암에를가셨답니다.

약수암을둘러보던스님이무엇이라고중얼중얼거리면서다니더랍니다.

옆에있던도반스님이뭘그리중얼중얼그리노

내또하나외웠다.

뭔데

들어봐라.

불타미아무나불타미아무나불타미아무나

그기무슨소리고

아저기쓰져있잖아

어디

저기

스님이가리키는곳에는한문으로여섯자가쓰여져있는데

도반스님이보니그것은나무아미타불이었다.

자칭똑똑한스님은오른쪽에서왼쪽으로쓰여져있는나무아미타불여섯자를그냥왼쪽에서오른쪽으로읽어며자랑스러워했던것이다.

또한번은이스님이일주문을지나사천왕문을지나치면서편액하나를보고또아는체를하시더란다.

여기서은사스님께서내게질문을하셨다.

정안거사는해인사에봉황문이어디있는지아나

스님해인사에는일주문지나면사천왕문이고다음은불이문인가그렇고해탈문이지싶은데봉황문이어딨습니꺼.

저는지금까지해인사를십년가까이다녔지만봉황문이라고는보지못했심니더.

아니야분명봉황문이있어다음에가면꼭한봐

어디에있는데예

어딘가하면사천왕문에들어서서위로올려보면대적광전쪽으로분명봉황문이라는현판이걸려있어

그봉황문현판을본그똑똑한스님이중얼거리시기를풍풍문풍풍문하시더란다.

봉황이란한자가바람풍자를많이닮아서스님은풍풍문으로읽으신것이다.

그이후그스님의별명은풍풍선사로불리셨다는실화라네요.

요번법회때꼭볼라했는데차타고주차장까지바로가는바람에못보고다음날일찍나서는바람에못보고우리법우님들은해인사에서봉황문을보셨는지요.

못보신법우님도계신다구요.

다음법회때꼭함찾아봐야겠습니다.

<출처:다음카페해인사수련동문회정안님>

나도풍풍문으로인터넷검색을했다.

그러고보니풍풍문으로검색이되었다.ㅎㅎㅎㅎ

봉황문이라……무식하니면장을할수있나ㅠㅠㅠ

해인총림현판이걸린문이봉황문이다.

봉황문은사천왕을모신곳으로일명사천왕문이라고도한다.

국사단이다.

국사단이있는건물에해탈문이있다.

해인도를따라돌고있는사람들이다.

해인도설명서이다.

약수물받이가절묘하게생겼다.

종각이다.

가야산에서내려와해인사곁에왔을때목어소리가계곡을울렸다.

목어는운판을바라보고있다.

해인사에부처님진신사리를모시게된연유이다.

대적광전앞에있는3층석탑이다.


해인사/올갠연주

3층석탑이산의실루엣과조화를이룬다.

대적광전에있는금강계단현판이다.

해인사판호계첩이다.<퍼온사진>

해인사금강계단계보이다.<퍼온글>

대적광전은비로자나불을본존불로모시는화엄종사찰의중심법당이다.

법당안에는용기사에서옮겨온중앙의큰비로자나불을비롯해

좌에서우측으로법기보살,보현보살,지장보살,비로자나불(대),비로자나불(소),문수보살,관세음보살순으로

일곱분의불보살님이봉안되어있는데

비로자나불과지장보살이함께모셔진것은매우이례적이다.

이는주변지역의불타버린법당에있던지장보살을옮겨놓았기때문으로추정된다.

<출처:다음블로그천산님>

풍경이물고기도없이외롭게걸려있다.

법보단현판이다.

해인사법당(法堂)을자세히살펴보면,사방의창방위에편액(扁額)이걸려져있다.즉,정면에대적광전(大寂光殿),왼쪽(서북측면창방위)에법보단(法寶壇),오른쪽(동남측면중앙)에금강계단(金剛戒壇),뒷쪽에대방광전(大方廣殿)이라고쓰여진편액이걸려져있다.

정면의「대적광전(大寂光殿)」은화엄종(華嚴宗)의주불인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모시고있기때문이다.왼쪽의「법보단(法寶壇)」은해인사가부처님의말씀인팔만대장경을모시고있는법보사찰이라는뜻이다.오른쪽의「금강계단(金剛戒壇)」은부처님의계율을받는곳(授戒儀式를치를수있는곳)을의미하며,특별히금강계단이라고하는것은계를지키는마음이금강석(金剛石)과같이굳건하기를원하는의미가깃들어져있다.뒷쪽의「대방광전(大方廣殿)」은대적광전(大寂光殿)의다른이름이다.

[법당(法堂)]

고려초기까지본존불(本尊佛)을모신사찰의중심건물을금당(金堂)이라고하였다.그러나이후부터본존불의성격에맞추어,석가모니(釋迦牟尼)를본존불로모시면대웅전(大雄殿),아미타불을본존불로모시면미타전(彌陀殿)또는극락전(極樂殿)이라고이름을붙이는등중심건물의이름을보다구체화했다.즉,천태종계통은대웅전,화엄종계통은대적광전,법상종계통은미륵전,정토종계통은극락전이라고한다.

[수계(受戒)]

재가불자는5계를받는데,이를통상보살계(菩薩戒)라한다.출가하여10계(十戒)를받는것을사미계(沙彌戒)라한다.사미계를받은남자를사미(沙彌),그여자를사미니(沙彌尼)라한다.사미(沙彌)또는사미니(沙彌尼)가구족계(具足戒)를받으면비구(比丘)또는비구니(比丘尼)가되는데,비구는250계,비구니는348계를받는다.

<출처:네이버지식in해인사법당의편액>

제대로된풍경이다.

비로전이다.

비로자나불을모신전각은대적광전이외에도화엄전과비로전이있다.

해인사안내도이다.<퍼온사진>

대적광전뒤건물이팔만대장경판전인데위치를알지못해서보지못하고그냥돌아나왔다.

산행후에잠깐들렸고일행이모두내려가서서둘러본해인사관람이기때문이기도했다.

이안내도사진을보니무척이나아쉬웠다.

잔설이보이는만추의저녁무렵,젊은연인이해인사를찾았다.

산행을함께한일행이앞서갔기때문에발걸음을재촉했다.(17:04)

사위질빵열매의솜털이사라져가는저녁햇살에솜털처럼빛난다.

잎떨어진나무에겨울살이가선명하다.

해인사를빠져나오는길에하늘을보니손톱같은초승달이떠있었다.(17:12)

해인사입구에식당에서간단히저녁을먹었다.

(사진:2009-11-21가야산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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