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백산 (3) – 살아 천년, 죽어 천년…주목나무
주목나무안내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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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아시나요?
일생을한자리에서하늘만바라보는한그루나무에도
얼마나많은사연이숨겨져있는지.
몸통가득오밀조밀한주름과상처에도,
다람쥐가집을삼는옹이구멍에도,
총총한동그라미나이테에도
깊고깊은사연이아로새겨져있음을.
당신은아시나요.
마르지않는우물물처럼자꾸만샘솟는그사연을
나무들도누군가에게들려주고싶어한다는사실을.
불꽃같은꽃봉오리를천방지방터뜨리고,
온몸자욱하게연둣빛잎새를내밀어흔든다는사실을.
당신은아시나요?
나그네가그늘에서땀을식힐때
살랑살랑실바람만불어도
나무에게도깊고깊은한생애가있고
다시쓸수도없는역사가있음을
당신은아시나요아시나요?
여기는태백산장군봉
어여차,한번커다란둥지를틀었다가
여러갈래로갈라져뻗어가는곳이지요.
장군봉꼭대기에서바라보는봉우리들은
힘센소떼가씩씩대며달음질하는풍경이랍니다.
장군봉산마루에는주목나무군락이있는데요
나는거기서가장오래살았답니다.
내나이는몇살이나되었을까요?
천년까지는꼬박꼬박헤아렸는데
그후로는헤아리지않아잘몰라요.
푸른이파리를달고서천년을산후에도
그리하여새로운몸으로태어나지못하고
천년동안의긴잠을자야한다는거예요.
긴긴천년의잠에빠져들때가된것이지요.
아,천년!
참으로길고긴긴세월이었어요.
그아득한날,떡잎으로돋아나햇빛을본내가
태백산에서가장우람하고큰주목나무가되기까지
얼마나많은시간이흘렀을까요.
푸릇푸릇산을호령하는기상을품고
뭇짐승과사람들에게까지존경받던때도있었답니다.
그러나몸통과가지는낡아져꺾이고비틀리어
숭숭구멍마저뚫리더니
지금은엇가지하나에곧떨어질듯매달린
시든이파리몇줌밖에없으니
그세월은또얼마이겠습니까.
그러나다시돌이켜생각하면
아득아득한천년세월도
해가한번뜨고진듯이짧은듯도합니다.
천년동안나는애오라지
하나의사랑과하나의기다림만품고살았거든요.
지금바로그이야기를하려는참이에요.
노릇노릇시든마지막이파리가떨어져
천년의잠속으로까마득히빠져들기전에
천년동안간직한나의사랑이야기를들려주려는거예요.
해는저물어가고,바람이불어요.
시간이많지않네요.
잠드는순간까지내사랑을기억하며
아름답고슬펐고영원하고찰나였던
그이야기를다할수있었으면좋겠어요.
이가을저녁쌀쌀한바람에
파르르떠는내마지막이파리가
가뭇가뭇떨어지기전에떨어지기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