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밤의폭음으로아침밥도못먹고관광을한다.
카메라밧테리충전도못하고밧테리를아껴서사진을찍는다.
잔뜩흐린날….
정방폭포를구경하며비단결같은아름다움에감탄하고
서복전설을음미하며우리땅에알알이밝힌역사,전설의흔적을더듬는다.
가로수로심어진귤나무,탐스럽게달린귤을만져보며신기함에느낀다.
알면알수록아기자기함에놀라는제주
오늘이마지막날이다.
아쉬움에호기심을이곳저곳에심는다.
제주서복공원에원자바오친필현판
서귀포시,徐福公園글씨전달받아정문에세우기로
<제주투데이2007년07월01일(일)13:02:25>
▲서귀포시서복전시관에서30일열린원자바오총리친필전달식에서중국장춘윈(姜春雲)전부총리와김형수서귀포시장(가운데왼쪽)이친필을들어보이고있다. 제주서귀포시서복(徐福)공원에중국원자바오(溫家寶)총리의친필글씨가현판으로세겨져세워진다.
서귀포시는주한중국대사관을통해원자바오총리가쓴’徐福公園(서복공원)’이라는글씨를전달받고,현판에세겨세울계획이라고1일밝혔다.
서복공원은지난2005년정방폭포에위치한서복전시관부지내조성됐으며,당시제주시는서복의고향인중국산동성용구시로부터서복석상을기증받아세웠다.
또한중친선협회이세기회장과서귀포시서복문화국제교류협회김형탁회장은원자바오총리의글씨(徐福公園)를받아서복공원입구전후의정문에현판을세우기로계획했었다.
원자바오총리는이같은뜻을전해듣고한·중친선과우호협력발전,서불과지유적정비사업의성공적추진을위해’徐福公園(서복공원)’이라는친필을써서주한중국대사관을통해한중친선협회이세기회장에게전달한것.
서복은진나라시황제때의방사로진시황의불로장생을위해선남선녀3000명을이끌고바다가운데있다는영주산의불로초를캐기위해항해한인물로알려져있다.
제주해안에닻을내린서복은’시러미’라는약재를캐서돌아가던중서귀포앞바다정방폭포벽면에’서불과지(西市過之ㆍ市는슬갑불ㆍ서복원래이름인서불일행이여기를지나갔다)’라는글을남겼다.
제주에유배왔던추사김정희선생이이를고증함으로써유명해졌고,서귀포라는지명도이때서복일행이서쪽으로돌아갔다는데서유래된것으로보고있다.
[정방폭포앞바다]
[정방폭포]
[기념촬영]
정방폭포 높이23m,너비8m,깊이5m이다.서귀포동쪽해안에있는동양유일의해안폭포로서폭포수가바다로직접떨어진다.마치하늘에서하얀비단을드리운것같다하여정방하포(正房夏布)라고도부르며,예로부터영주12경가운데제5경으로유명하다.숲에서보는것보다는배를타고먼바다에서바라보는모습이더아름다우며앞바다에있는숲섬·문섬·새섬·범섬에는난대림이울창하여남국의정취를느끼게한다.폭포절벽에는중국진나라때진시황의사자인서불(徐市)이한라산에불로초를캐러왔다가구하지못하고서쪽으로돌아가면서새겨놓은’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글자가있으며,서귀포라는지명도여기서유래했다고한다.해변을따라서쪽으로300m를가면잘알려지지않은해식동굴이있으며내부에는큰석불좌상이있다.<출처:다음백과사전>
원래의정방폭포석각은풍화,낙수등으로고증이어려운상황이라
남해상주석각을판각해두었다고한다.
원래글씨는지워졌다고한다
전하는바에따르면(제주도)정방폭포의암벽에‘서복과지(徐福過之)’,즉‘서복이이곳을지나다’라는글이옛중국문자의하나인올챙이문자로새겨져있었다고한다.일설에는금석학자이기도한추사김정희가제주도에유배되었을때인1840~49년탁본했다고한다.19세기말의<삼한금석록>과제주도설화속에도‘서복과지’이야기가나온다.이러한기록과전승으로보아,조선조말엽당시에는바위에이글자가있었던듯하며,광복뒤까지도본사람이있다고한다.그러나이후암각은폭포위에전분공장이들어서면서폐수가흘러내려지워졌다고전해진다.<출처:다음카페사이버연리지클럽>
제주정방폭포석각⇒남해석각판각
<사진출처:싸이월드블로그http://www.cyworld.com/luxurycruise/2561960에서펌>
남해석각⇒별자리그림이라는주장도있다
<사진출처:거제모닝신문2010.11.29.16:40>⇒ 서복의진실진시황제도모른다 서북의내한항해로
<사진출처:다음카페연리지사랑>⇒ 불로초를찾아한국에온서복(서불)
만약그대가없다면내가있어야할이유를말해봐만약그대가없다면,내가어떻게살아갈지를말해줘요 EtSiTuN'ExistaisPas(만약그대가없다면)/JoeDassin
노랗게익으면멋진가로수길이될것이다.
차창밖사진이수채화를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