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알까기 – 밀례하기로 하다.

설명절을앞두고밤을깠다.

지난가을충남정안에서사온옥광이다.

탱탱한촉감이전혀상하지않았다.

생전처음제사용밤을까기까지걱정도했다.

칼에베면어쩌나하는두려움이었다.

손을빌까조바심내면서아웃샷으로밀었다.

옥광의껍질이저만치떨어진다.

오금이저리고집안일이이렇게힘들줄이야

요즘어머님이편찮으셔서아버님이간호때문에오지못하셨다.

그간제사상은내가차렸지만밤만은아버님이까서가져오셨다.

그런데이번설날에는아버님이오시시못했다.

우리집안의큰변화이다.

설제사를모신후작은아버님과함께아버님을찾아뵈었다.

할아버님,할어니산소를밀례하는것을작은아버님하고상의하신다.

집안의장손으로서아쉬운점이있었으나한편으로다행이라여기는마음도있다.

그리고성묘도동생과둘이만갔다왔다.

어쩌면마지막성묘가될지도모르는데

왠지모를아쉬움과슬픔이밀려온다.

[휑한모습]

산의잡목이모두베어지고임도가새로났다.

옛날에는인삼밭사이로가곤했는데임도가훤히뚫여쉽게접근한다.

그러나산소주위에숲을이루던나무가모두베어지고이제는휑하다.

아늑하던산소가허전한모습으로변했다.

[할아버지,할머니산소]

산의기운으로말미암아석물을세우면산소가눌린다고하여

비석및상석을설치하지않았던할아버지,할머니묘소이다.

그래서그런지그산에있는다른산소들도석물을설치하지않았다.

설,벌초,추석…1년에3번씩찾았다.

찾을때마다교통체증으로하루가그냥흘렀다.

특히,명절날은돌아올때의교통체증에짜증도많이났다.

올해는윤년이다.3월에윤달이낀것이다.

그래서올해산소를밀례하기로했다.

오늘아침아버님과작은아버님가말씀하시는것을잠자코들었다.

할아버지는40년에넘었으므로백골이되었을텐데

할머니는겨우15년정도밖에되지않았고땅도습해아직백골이되지않았을것이라고

하여화장을하여야할것이라고….

화장을한후납골당에모시자고건의했으나

아버님은그것조차도하지않기로하셨다.

산소를모신산은사유지가아니라국유지였고

최근국유림관리차원에서산의나무를모두베고새로식목할준비를하는것같았다.

임도도새로내고출입문을달아함부로접근을금지한다는안내판도세워놓았다.

아버님도이런정황을보시고결심을굳히신것같다.

아버님생전에정리한다고며칠전에말씀하셨다.

제사와조상에대하여끔찍하였던아버님도이젠80이넘은고령이신것이다.

이제는벌초나명절때찾아뵐일도없어질것이다.

한편으론명절에편히쉬게되었지만

왠지끈을놓친것같은기분이든다.

그런생각을하면서산소뒷산에올라가사진을남기고자했다.

[드릅나무]

뒷산에올라가는데드릅나무가많이보였고

가시가붙은아카시아의가지가있어옷을할퀸다.

집에와서보니거위털파카의겉감이긁혀거위털이삐져나오고있었다.

[초등학교있는곳]

10리나되는초등학교에가는길은멀고도멀었다.

검정고무신에도시락보자기를어깨에메고다녔다.

귀가길은길도없는산을넘어오기도했다.

그학교가는길은길은황폐화되었고

학교가있는동네는공장과아파트가메워졌다.

[상거리]

영동고속도로생기면서많은변화가일어났다.

초등학교에가는길에있던분독고개는많이낮아졌고

고속도로밑으로굴을통과했다.

그래서여주가는길이상교리로바뀌었다.

[양들]

이양들을거쳐점봉리에있는초등학교를다녔다.

학교에서돌아오다가땡피집을떠트려도망가기도했다.

그런데지금은길이없어졌고농지가운데새로길이났다.

상거리를거쳐여주로가게되는것이다.

[밭]

상전벽해란말이실감난다.

밭은경작이정지되고임도가났다.

1960년대야산을개간하여밭을만들었었다.

그때에는나무를베고돌을치우고하여밭을만드는일을따비로불렀다.

새로만든밭에땅콩,담배등을심었다.

가을에땅콩을볏불에구워먹기도했다.

그리고70년대그밭을팔았고

그후고무마밭,인삼밭이되었다.

그러면서점점넓어졌다.

성묘가는길조차밭으로만들었었다.

그러다가최근에밭의용도가없어졌다.

고향무정/오기택

[하거리]

어릴때화평리에서이사와서살었던동네이다.

남산마을의높은곳에처음살았었고

나중에안마을로이사왔다.

여기서초등학교와중학교를다녔다.

[상교리]

지금은하거리가는길이상교리로가는것이쉽다.

그러나옛날에는상교리는하거리와멀리떨어진마을일뿐이었다.

[이런곳이]

나무를베어내니조그만골이휑하다.

(사진:2012-01-23설날)

(출처:네이버블로그소통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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