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驪江)과 대로사(大老祠) – 추억의 시간을 보다.

고모부님장례식장을참석하려고시외버스를타고여주에내려갔다.

은행잎이노랗게물드는빼빼로데이에….

친구성기를만나빽빽한중년의시간을논한후

여강을바라보며강변을산책하고송시열사당인대로사에들렸다.

여주가고향이면서도일찍부모님이성남으로이주하시는바람에

여주에성묘하는때를제외하고는거의내려가지않았다.

그러나이젠성묘할기회도없어졌고대중교통의불편함이더욱여주를멀게했다.

시간의추억이여주강변에넘실댄다.

양섬으로헤엄쳐서건너던시절이있었다.

그때가불현듯다가오며박주가리의아련함이오후시간을때린다.

[테이블위의꽃등에한마리]

고려병원에서친구를만나커피한잔을하는데꽃등에한마리가테이블위에앉았다.

[여강]

경기도여주부근을흐르는남한강줄기인여강(驪江)주변은예부터빼어난경관을자랑하고있어

많은누정(樓亭)이세워졌으며,많은시인묵객들이읊은주옥같은시들이전해져내려오고있는곳이다.

[은행나무]

장례식장을나와여강뚝을걷는다.

빼빼로데이의은행잎이강뚝길이떨어졌다.

[여주5일장안내도]

잠시북적이던시절로타임머신을탄다.

[박주가리]

박주가리의꿈을키우던양재천의여름과가을이여주까지내려왔다.

[담밖에서본대로사안]

[대로사담]

[대로사이정표]

[대로사들어가는문]

[대로사역사]

[대로사안내도]

[강한사안내문]

[추양재(秋陽齋)]

[추양재의낙엽]

[대로사비각]

[대로사비]

[은행잎]

만추의은행잎이마당에깔렸다.
용주사은행나무의추억을떠올리며…

[대로사]

여주에있는우암송시열사당

우암(尤菴)송시열(宋時烈)선생은조선중기의학자이며명신이다.정조9년왕이영녕릉을참배하고여주관아에머물렀을때옛날송시열이살아생전여주에머물때마다능을향해통곡하며후진에게북벌의대의를주장했다는말을듣고수행한김양행에게사당건립을추진하게하여대로사(大老祠)라사액하였다.송시열은효종과함께청나라를정벌하자는북벌계획을추진하였으나효종이사망하자북벌계힉은중지되었다.대로사라는명칭은정조가친히지은것으로“덕망이높은노인”이란뜻이며『맹자』에그용례가보인다.또실록에는정조가신하들에게말하기를“대로(大老)란두글자는다만예부터천하대로(天下大老)란글이있었을뿐만아니라,일찍이선정(先正:송시열)의문집가운데에뛰어난구절을모아편집하면서그책의제명(題名)을『대로일고(大老逸稿)』라하였으니,대체로이에서따온것이다.”라는기사가있어대로사라는명칭이붙게된연유를알수있다.이후고종8년흥선대원군의서원철폐령에도없어지지않고강한사(江漢祠)라개칭되어남았다.사당의방향은서쪽에위치한효종대왕릉을향하고있다.

[여강]

강건너의아파트단지가새삼스럽다.

[중앙통]

여주시역사(위키백과)

여주시는천혜적인지리로인해

진국시대부터평화로운집단마을을영위해왔으나

역사상지명이뚜렷이나타난것은

476년고구려장수왕63년에골내근현(骨乃斤縣)이라는이름으로부터시작된다.

757년신라경덕왕16년에는황요,

940년고려천수(天授)23년에황려현(黃驪縣),

고려고종원년(1214년)에영의(永義)로개칭하였다가,

1305년충렬왕31년에여흥군(驪興郡)으로승격하였다.

조선태종2년(1401년)에여흥부(驪興府)로승격하였고,

1413년태종14년에도호부가설치하였다.이때충청도에서경기도로이관되었다.

1469년조선예종1년에여주목으로승격하였다.

1895년(조선고종32년)23부제시행으로충주부여주군으로개편,원주군강천면편입

1896년(건양원년)13도제시행으로경기도여주군

1941년10월1일여주면이여주읍으로승격하였다.

1963년1월1일개군면이양평군에편입

1971년4월12일금사면에산북출장소설치

1989년4월1일산북출장소가산북면으로승격

1992년3월2일북내면에오학출장소설치

1995년3월1일강천면대둔리가원주시문막읍에편입

2007년3월5일여주읍오학출장소로개편

2013년3월26일여주군일원에도농복합시를신설하는안을정부에서의결

2013년5월7일에시승격최종승인

2013년9월23일여주군에서여주시로승격.

여주읍은여흥동,중앙동,오학동으로분동되고,가남면은가남읍으로승격.

[여주벌판]

귀로길버스에서본여주벌판

예부터여주쌀은명성이자자하였다.

(사진:2014-11-11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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