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의 살아있는 예술품 ‘경이로운 빛’

세상을살다보면너나없이바쁘다.

그림감상하러전시회나화랑에들릴시간이없다.

더군다나뮤지엄에서한나절을보낼시간을빼낸다는것은매우어렵다.

그런면에서바쁜사람들을위해공항뮤지엄이작품을엄선해서전시해준다는것은고맙기그지없다.

짬의시간을이용할수있는좋은기회이다.

샌프란시스코국내선공항에서는한국인도예가들의작품을전시하고있고

국제선청사에서는’루이스티파니’의작품을감상할수있다.

거장티파니의3대에걸친예술혼을짧은시간에살짝드려다볼수있는절호의찬스를

놓칠수는없었다.

레디언트라이트의거장루이스티파니(1848-1933)는미국색채유리예술에거대한획을

그은인물이다.그리고그의아들찰스루이스티파니(1812-1902)는세계에서가장유명한티파니보석

회사를설립한인물이다.

여기서는아버지루이스티파니의예술세계를보여주고자한다,

루이스는그의아버지(티파니보석의할아버지)가이뤄놓은전적을따르지않고자신의길을가기로했다.

젊어서는그림을그렸다.그는화가로버트기포드(1840-1905)와함께유럽이며북아프리카를여행했다.

1870년색채유리의세계에빠지기전에는실내장치일을했다.

중세기이후변화가전혀없던스테인그라스예술형태를루이스티파니가근대예술형태로변형시킨

개척자이다.

루이스이전에는유리에다가페인트칠을했었다.루이스티파니와그의동료존라화지는유리자체를

여러가지색과진주빛을내는선명하면서도색조있고밀도깊은방법을개발해냈다.

1893년루이스는영국에서유리기술자로일하던아더내쉬와함께새로운기술을활용하는유리공장을

뉴욕에차렸다.

티파니라고이름지은유리공장에서자연광을그대로재연하는획기적인유리를생산하기시작했다.

마침미국에교회건물이우후죽순으로세워지는계기와함께티파니유리는날개도친듯팔려나갔다.

전기와전구의출연은티파니를한단계업그레이드시켜주었다.

근대에는티파니스튜디오에서명품중에명품램프와갓(Lampwithshade)‘그리고자연에가까운화초,,곤충같은제품을만들고있다.

티파니의열정은끝없이발전해서유리예술품,유리모자이크,에나멜은물론이고

유리소재를이용해서책상세트,촛대,자기항아리,보석까지만들고있다.

티파니의작품들은불란서작가누보(Nouveau)의전형이며,시각예술의근대스타일이며,

유럽과북미에서발전한자연광에의한건축학적영감이다.

특이한것은티파니스타일이미국에서태어나유럽으로건너갔다는점이다.

1890년루이스티파니가한창일할때유럽과미국에있는뮤지엄에서그의작품수집에열을올렸다.

샌프란시스코공항뮤지엄에서귀하디귀한루이스티파니의예술적혼이담긴작품들을전시한다.

몇점은일본가든뮤지엄에서소장하고있는작품들도있다.

세상에오직7개뿐인절묘한거미줄테이블램프,희귀한백일초테이블램프,공작새유리창,유화,꽃병,

유리자기등이전시되고있다.

티파니의조명

1879년토마스에디슨이빛의혁명을일으키면서전구가등장했다.

티파니는전기의밝은빛은부드럽게하는새롭고우아한램프를최초로만든사람이다.

1900-1914년이티파니가만든램프의전성기였다.

테이블램프에스탠드램프며가지각색을섞은램프가티파니유리공장에서생산되었다.

루이스티파니의예술품

티파니회사임원중에한사람인찰스케이가루이스티파니의전기를집필했다.

루이스는책뚜껑을만들어친지와친구뮤지엄등에보냈다.

책은1912년에집필이끝났으나뚜껑을만드느라고수년후에배포되었다.

책에는티파니가화가의길을버리고실내장치로바꾼이유를예술적인생활용품은보다많은대중을만나게되고많은그림이나조각품들과같이있게되기때문이라고했다.

특별히램프의경우그림이나조각이램프의도움없이는빛을발하지못하는것도사실이다.

백합무늬꽃병1900

동과유리

티파니가족이미국에정착하면서할아버지찰스티파니는뉴욕에화사를차리고귀중품상점과은제품

보석상을열었다.회사가성장하면서런던과파리에분점도차렸다.

찰스티파니회사의품질과기술력은아들루이스티파니가예술작품으로성공하는데결정적인도움이

됐다.루이스티파니는1867년파리에서열린세계장인기능대회에서최우수상을받았다.

1893년에는시카고에서열린세계박람회에는티파니관람석을차려놓고보석과유리제품을진열하기도

했다.

모자익쟁반1918

채색한유리를구워낸공작

‘꽃항아리1905’

‘키프로트향을담는병과자수정스토퍼’

Lavabowlc.1905,TiffanyStudios,NewYork

‘거미줄책상램프’1906

‘한련책상램프’1906

티파니는1900년파리세계박람회를관람하고온다음서라믹을만들기시작했다.

10년동안그의독특한디자인으로선보인써라믹은2천점에이른다.

그리고유리작품에시간을쏫느라고더이상써라믹은만들지못했다.

‘얼룩덜룩한꽃병’

‘꽃그림꽃병’

‘연꽃무늬사발’1905

‘앤여왕레이스꽃병’

‘배추잎사발’1905

유화

예일대학Chittedenmemorialwindow에있는유리화

보스톤교회

1890년티파니는미국인으로는최초로전통있는’국제악세서리상’을유럽에서수상했다.

역사적으로미국인이유럽에서예술가로인정받은것이티파니가최초이다.

유럽의많은예술품들은대작은없었고소작들이어서쉽게대서양을건너올수있었다.

그러나티파니의작품들은혁신적인기술을바탕으로대작이대부분이었다.

수많은유럽의박물관들이티파니의작품소장을원했으나운반에문제가있었다.

결국조각으로등분해서대서양을건널수밖에없었다.

19세기에만도30개가넘는티파니의작품들이유럽으로건너갔다.

파리에있는Parisian화랑에서는티파니의작품으로상시전시회를열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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