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북한영공을 날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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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수 없이 많이 타고 다녔어도 러시아와 중국영공을 날아 본건 처음이었다. 자다 말고 깨어나 이제쯤이면 거지반 다 왔겠거니 하고 모니터를 틀었다.
아! 이게 웬일인가. 비행기는 만주를 거처 서해를 통하는데 난데없이 북한의 황해도를 직선으로 날을 것 이라는 그림에 깜짝 놀랐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조종사가 정신이 있나 없나, 혹시 내가 잘못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스튜어디스에게 물어 보았다. 이 아가씨는 비행경로에 대해서는 나만큼도 모른다.
그때부터 나는 긴장이 돼서 모니터만 주시하게 되었다.
다행이 북한 영공을 피해서 인천으로 기수를 돌리기에 마음이 놓였다.
그게 지난번 대한항공을 타고 올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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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아시아나를 탔다.
2월이면 비수기여서 자리가 많이 비어있어야 하는 건데 그렇지 않았다.
승객으로는 언뜻 보기에도 인도 사람들이 많았다.
동남아 국가들을 위시해서 인도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들은 가난해서 국적기가 없다.
미국을 드나드는 국적기가 없다. 그들은 다른 나라 비행기를 이용해야만 한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자팬에어나 노스웨스트 아니면 타이완 에어를 이용해서 미국을 오고갔다. 지금은 형편이 좋아서 한국 국적기에 동남아인들이 많이 타고 다닌다.
월남, 필리핀, 태국, 인도인들이 대세를 이루었으나 미국의 유나이티드가 사이공 직행을 뛰면서 월남 승객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또한 UA의 마닐라 직항이 생기면서 필리핀 승객도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인도 사람들뿐이다.
오늘 내가 탄 아시아나에는 인도인들이 한국인들보다도 많이 타고 있다.
인도인들은 머리에 털반을 쓰고 있다.
나는 털반에 대해서 12시간동안 지켜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 좌우, 앞뒤 좌석에 온통 털반을 쓴 사람들 뿐 이었다. 털반에 둘러 싸여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털반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는 털반(Turban)에 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서구인들도 인도의 많은 종교와 힌두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힌두 교인들이 털반을 쓰고 다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힌두 교인이라고 해서 모두 쓰는 것도 아니다. 종교적 행사나 페스티발 같은 축제 때 쓰는 게 보통이다.
인도인들 중에 털반을 쓴 사람들은 주로 시아 종교인들이다.
시아파는 인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란에 더 많다.
시아 종교인들은 평생 동안 머리와 수염을 깎아서는 안 된다.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긴 머리를 감추기 위해 털반을 쓰고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 조상들이 유교사상에 의해 상투를 틀었던 것과 같다.
여성들은 여성용 털반을 쓴다.

털반은 홑이불처럼 옥양목 같은 천으로 둘둘 말아 머리에 쓰는 것이다.
머리에 감는 것도 기술이 있어야 한다.
뒤통수 밑에서 왼쪽으로 귀를 덮으면서 이마에 이르러 다시 밑으로 내려가 이번에는 우측으로 귀를 덮고 이마를 지날 때 이마 중앙에 삼각형의 끝부분이 마치 별을 단것처럼 고귀하게 보이도록 잘 감아 달팽이 모양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각자 자기 것은 자기가 말아 올려야 하는데 솜씨 있는 사람은 가지런히 잘 말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엉성한 것이 그 사람의 성격과 인품을 그대로 반영한다.
털반의 색깔은 다양해서 검정, 회색, 하늘색, 자주색, 베이지색 등 별별 칼라가 다 있다.
색깔은 주로 자신이 입고 있는 옷과 조화를 이루도록 신경 썼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털반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몸집이 크고 장대했다. 주로 나이든 사람들이 쓰고 있는데 수염이 흰 사람들은 늙은이이고 수염이 검은 사람은 젊은 사람들 이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그들은 우리가 먹는 음식과 다른 음식을 먹었다.
아시아나도 알아서 그들의 음식은 따로 만들어 제공하고 있었다.
중간 간식으로 햄 샌드위치가 나왔는데 그들은 햄을 먹지 않았다.
한번 쓴 털반은 벗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자그마치 12시간이 넘게 걸리는데도 아무도 털반을 벗는 사람은 없었다.
벗었다 다시 쓰는 사람도 없었다. 한번 벗으면 다시 쓰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장시간 한 좌석에 앉아 있다 보니 당연히 잠도 자야 한다.
잠자면서도 털반 만큼은 건들지 않았다. 머리를 잘못 뒤로 기대었다가 털반이 흐트러지기라도 할 까봐 매우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더욱 답답해 보이는 것은 엔터테이먼트를 하나도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털반을 쓰고 있는 관계로 헤드세트를 머리에 얹을 수가 없다.
그래서 털반을 쓴 사람들은 TV나 방송을 들을 수가 없다. 인터테인먼트를 하나도 못보고 그대로 앉아서 꼼짝 안하고 있어야만 하는 그들이 딱해 보였다.
그래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참으로 종교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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