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찌’ 조선중고급학교 글짓기 대회 1등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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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는 소위 조총련계 재일교포 ‘아이찌’ 조선중고급학교에서
실시한 제38회 <꽃송이> 글짓기 대회에서 고급부 1등을 차지한
박윤희 학생(고등학교 2학년)의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
사상을 떠나서 민족을 생각하는 소녀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읽는 이로 하여금 신선한 맛과 감동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제38차 ‘꽃송이‘ 고급부 작문대회 1등 작품 >

<나의 여름, 나의 하기학교>
아이찌 조선중고급학교 박윤희

 
아직도 내 추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어릴적 한여름…
방학이 시작되자 나는 하기학교를 다녔다.
《고향의 봄》을 배워준 하기학교선생님. 나는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하지만
그때의 일만은 눈에 선 하다.
그것은 아마도 어린 내 마음에 충격을 준 여름 이였기 때문 일 것이다.
아, 지금 내가 우리 노래를 무척 사랑하는 것도 그 선생님의 덕택이 아닐까.
노래라 하면 텔레비 화면에서 흐르는 노래와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밖에 몰랐던
나에게《고향의 봄》을 배워준 선생님.
그 선생님과의 만남은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젠 내가 그 선생님의 나이가 되여 하기학교 학생들 앞에 서게 되었다.
고급부 2학년의 여름이라 하면 인생에서 둘도 없는 청춘시절의 절정에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청춘시절, 그때에 돌아가고 싶다!》, 또 어떤 사람은
《그때는 정말 즐거웠다!》고 회고하군 한다.
당사자인 나는 고급학생으로서의 즐거움은 알지만 그렇게 소중한 것일가 하고
의문이 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올해 고급부 2학년의 여름은 뭔지 특별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다름 아닌 하기학교선생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흐뭇한 마음을 안고 나는 하기 사회 실천 활동을 하게 되였다.
나는 지부위원장과 조청오빠, 그리고 우리 학교 선생님의 방조를 받으면서
조대생 언니 2명과 동창생 6명과 함께 하기학교준비사업에 나섰다.
그런데 처음은 무엇부터 손을 대면 좋을지 몰라 당황하기만 하였다.
준비가 덜 되여서 그런지 개강식을 앞둔 내 마음은 뭔지 서먹서먹하였고
잘해보자는 결의도 어느새 식어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그리던 하기학교의 리상적인 모습과 지금 우리가 하자고 하는 하기학교가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였다. 아니, 리상이라고 하기보다는 망상에 가까웠던 것이다.
나는 생각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와 지금은 배우는 학생도 다르고 배워주는
선생님도 다르다.
우리는 우리대로 처음 우리말을 배우는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면 되지 않는가고…
드디여 하기학교가 시작 되였다.
나의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
흥분과 기쁨, 처음 하는 일에 대한 불안도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첫 수업에서는 이름쓰기를 가르쳤다.
처음은 써준 것을 보면서 자기 이름을 우리 글로 쓰고 있던 그들이 나중에는
보지 않고 또박또박 쓸수 있게 되였을 때 우리의 기쁨은 한량없었다.
우리는 이 기쁨, 이 감동을 힘으로 바꾸어 앞으로 남은 기간 열심히 준비하여
하나라도 많은 것을 배워주자고 마음먹었다.
그날부터 하루하루는 매우 짧게만 느껴졌다.
아침이면 일찌기 지부사무소에 나가 수업준비를 하고 밤이면 다음날의
수업준비와 확인을 휴대전화로 하고…
우리는 정열을 불태웠다.
어느 날에는 색의 이름을, 어느 날에는 친족이름을, 어느 날에는 우리 노래를,
어느 날에는 수세기를…
이렇게 날이 갈수록 우리말을 익혀가는 아이들이 그토록 귀엽고 사랑스럽게
될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하나라도 더 배워주고 싶은 마음, 무엇이든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어느덧 마지막 수업 날이 되였다.
교실을 둘러보니 이제는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모습,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의 얼굴》로 된 우리 동무들의 모습이 있었다.
나의 가슴은 저도 모르게 설레였다.
그 후에는 행복한 감정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떠있었다.
이것이 바로 나의 하기학교였다.
하기학교 마지막 날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헤여지기 싫다고 말하는 것이였다. 우리도 같은 심정이였다.
도리여 우리에게 귀중한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준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헤여졌다.
지금도 우리끼리 마주앉을 때면 하기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하기학교에서 가르치고 싶다는 말이 저절로 오고간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배워주고 싶은 것이 더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들은 귀여운 우리 동생들이 아닌가. 우리는 이제 민족의 대를
이어가는 선배가 된 것이다.
나는 그들을 《귀여운 후배》라고 부르고 싶다.
처음으로《선생님》이라 불리운 그 순간, 그들이 하는 우리말을 들은 그 순간,
함께 놀고 함께 웃던 그 순간들…
그들과 함께 지낸 나날들이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한여름의
추억으로 되였다.
여름방학을 더듬어볼 때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청춘이 아닐가고 문득
생각하군 한다.
그리고 나도 어른이 되였을 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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