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용사들 한국에서 잠들게 해주오

 

Graves_registration_service_-_korea[1]

1951년 1월 23일, 병참부대, 114 산소 등록 중대 소속 윌리암 데이비드슨 상병이 대구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인적사항을 기록하고 있다. 십자가는 확인된 병사의 묘비, 삼각비는 미확인 병사, 그 옆에 작은 병에는 인적 사항을 적은 기록물을 넣은 병을 함께 매장한다.

A_little_Korean_girl_places_a_wreath_of_flowers_on_the_grave_of_an_American_soldier,_while_Private_First_Class____-_NARA_-_530634_tif

1951년 4월 9일, 한국 소녀가 미군 병사묘에 꽃을 놓고 있는 동안
페인터 일병과 메이 상병이 경의를 표하고 있다.
6·25전쟁에서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간 유엔군 참전용사들 가운데
사후 한국의 유엔 기념공원에 안장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 있는 유엔 기념공원은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유엔군의 유해를 안장한 묘지이자 고인의 넋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현재 미국, 영국, 터키, 캐나다, 호주 등 11개국
참전용사와 국적과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참전용사 등
2,300명의 유해가 있다.

프랑스 참전용사 레몽 베르나르가 지난해 5월에 사후 유엔 기념공원에
안장됐다. 영국 참전용사 로버트 매카터는 2001년 영국에서 숨질 때
자신이 목숨 바쳐 싸웠던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가
지난해 11월 유엔 기념공원에서 영면했다.

올 2월에는 미국 참전용사 버나드 제임스 델라헌터가 ‘제2의 고향’
부산에 안장됐고, 12일 네덜란드 참전용사 고 니콜라스 프란스 웨셀의
유해가 안장됐다.

이들은 모두 10대 또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유엔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낙동강 방어전투, 양평 지평리전투 등에서 치열하게 싸운
참전용사들이다. 이들은 치열한 전투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현장에서
산화한 전우를 그리워하며 죽어서라도 전우가 있는 한국에 묻히기를
원했다.

유엔 기념공원에 안장된 11개 국가 2,300명 중에 36명이 미국
참전용사다.  이곳에 안장된 미군용사들은 6·25전쟁 전사가가 아닌
전후 사망자들이다.  미국은 전사자를 모두 본국으로 데려가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유엔 기념공원에 미군 전사자는 한 명도 없다.

미국 참전용사들 가운데 생전 본인 의사나 유언을 남겨
유엔 기념공원에 안장되길 희망한 경우에 유엔 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안장됐다.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나이가 대부분 80대를 넘어서면서 자신이
영원히 잠들 곳을 고민하다가 참전국 대사관이나 유엔 기념공원에
사후 안장을 문의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한국 정부도 사후 안장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앞으로도 유엔 참전용사가 부산 유엔 기념공원에 안장을 희망할 때
정부 차원의 의전과 예우를 할 것”이라며 “참전국과의 혈맹관계와
참전용사 후손들과의 유대관계를 지속해서 유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