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호수의 비단잉어들

IMG_0558 IMG_0547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일산 호수를 행해 걸었다.
지난 며칠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에 나다닐 수가 없었다.
몇 발짝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려 운동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한적한 호숫가에 사람도 많지 않아 신선한 기분이 충만하다.
호수를 가로지른 나무다리에 올라 비단잉어들의 유희를 즐긴다.
비단잉어가 생각보다 많다.
유유자적 몰려 있는 꼴이 먹거리를 이곳에서 주어버릇해서 몰려 있는 것 같았다.
멀리 가지 않고 다리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것으로 보아 먹잇감을 기대하는 눈치다.
분명 사람들이 먹이를 던져줘 버릇했음 직하다.
잉어는 상상을 초월하리만치 덩치가 크다.
흔히 어른 팔뚝만 하다면 크다는 표현인데 이 잉어들은 그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축구선수 넓적다리만큼 굵직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본래의 잉어 등이 거무칙칙하고 비늘이 많은 잉어가 가장 많았고
그 외에 빨간색 흰색 녹색의 비단잉어들이 노니는데 그중에 으뜸은 황금빛 잉어였다.
일본식 정원에 가면 비단잉어를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큰 잉어는 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돼지같이 살찐 잉어는 동작도 둔해 보였다.
어린 잉어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새끼를 치고 번식해 나가는 것 같다.

잉어 하면 생각나는 게 추운 겨울 꽁꽁 얼어붙은 한강에서 어름에 구멍을 뚫고
낚싯줄을 넣고 잉어가 물기를 기다리던 털모자 쓴 아저씨가 떠오른다.
몇 시간을 기다렸을까? 아니면 온종일 기다려서 잉어 한 마리 잡으면
그날 수입이 되는 그렇게 귀한 물고기가 잉어였다.
내가 시골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 이웃에 이발사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임진강으로 숭어 잡이 낚시를 가곤 했다.
숭어 낚시는 일반 낚시와는 달리 갈퀴를 강물 가운데쯤 숭어들이 다니는 길목에
던져놓고 기다린다.
날카로운 갈퀴에 신다 버린 흰 고무신을 검지만큼 오려서 붙인 다음 강물에 던져
갈퀴가 누워 있게 해 놓고 숭어가 흰색 표시 점을 지나갈 때 잽싸게 당기면
숭어가 갈퀴에 걸려 잡는 방식이다.
숭어는 항시 몰려다닌다.
그렇다고 숭어가 눈에 띄게 많이 다니는 것도 아니어서 꼼짝없이 지키고 앉아서
한나절을 바라보다가 운이 좋아 숭어가 갈퀴 앞으로 지나가는 녀석이 있으면
잡을 수도 있고 태반은 놓치거나 공치는 날이 더 많다.
나는 할아버지 옆에 앉아 같이 숭어떼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지만,
나의 인내로는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만 일어서고 만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서너 마리 잡는 때도 있었다.
한번은 나의 어머니도 같이 구경하게 되었는데 잡은 숭어를 즉석에서 회를 떠
주는 바람에 숭어회를 처음 맛보는 일도 있었다.
고마움의 표시로 어머니는 일반 낚시로 잡은 잉어 한 마리를 팔아주었다.

그때 한여름 어머니가 잉어를 고아 백숙을 끊여주시던 생각이 그립다.
몸이 약하다고 여름 보양식으로 잉어에 마늘을 듬뿍 넣고 백숙을 고아 주시면서
나 혼자만 먹으라던 어머니의 그윽한 보살핌이 그립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보다 어머니가 드셨어야 옳았을 것 같은데 그때는 왜 어머니
드시라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는지 어리석은 자식은 늙어서야 겨우 뉘우친다.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잉어 백숙을 고아 드리겠건만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산 호수에 잉어가 많아 보고 생각났을 뿐이다.

다음 날도 저녁을 먹고 운동 길로 비단잉어를 보러 갔다.
잉어들은 어김없이 다리 밑에 몰려 있었다.
소녀가 난간에 서서 먹이를 주고 있다.
잉어들은 먹이를 놓고 아우성이다.
소녀가 이리 던져주면 이리로 몰리고 저리 던져주면 저리로 밀리고 먹잇감 따라
돼지 주둥아리만 한 입을 벌리고 따라다닌다.
비닐봉지에서 꺼내 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치즈 부스러기 같기도 하고 팝콘 부스러기 같기도 했다.
물어보았더니 라면 부스러기란다.
아! 한국인이 세계에서 라면 소비가 가장 많다고 하더니
하다못해 잉어까지 라면을 먹고 있구나.

IMG_4091

잉어는 아시아와 유럽에 널리 퍼져있는 식용 민물고기다.
일찍이 5세기경 중국에서 잉어와 금붕어를 같은 연못에서 기르면서
새로운 종자인 붉은 잉어가 태어났다.
송 나라 때 리우 카이(1080-1120)의 그림 속에 붉은 색 잉어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붉은 잉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IMG_4090

1603년 잉어가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1820년 나이가다 현에서 고이(Koi)로
개종 되었다.
고이는 일본말로 비단잉어란 뜻이다.
6가지 색 흰색, 검은색,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 크림색으로 새로 탄생한 것이다.
일본인 손에 들어가면 뭐든지 다시 태어나기 마련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