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100명 환자를 보는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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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산 병원에 갔다. 늙으면 병원 출입이 잦아진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사람이 많다. 예약이 없이 왔기 때문에 특진을 받아야 한단다.
특진은 기다려서 의사를 보는 것이다.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피부과 대기실에는 TV하고, TV와 똑같은 크기의 모니터에서 다음 차례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5명의 명단이 종대로 쓰여 있는데 한 사람씩 진료실로
들어갈 때마다 맨 꼭대기 이름은 사라지고 새 이름이 맨 밑에 붙는다.
예의상 그러는지 아니면 사생활 보호하느라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각자 이름 세 글자
중에 맨 뒤 글자는 빼고 두 자만 올려놓았다.
예를 들면 신재동을 신재* 식으로 적어놓았다.
‘신재*’ 내 이름이 벌써 올라왔다.
내 앞에 4명만 들어가면 그다음은 내 차례라는 뜻이다.
자리에 앉아 꼬박 기다려 야만 했다.
그런데 막상 차례가 오니까 내가 아닌 딴 사람이었다.
‘신재용’이란 사람을 불러 들어간 것이다.
허탕 치고 로비로 나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둘러보았다.

미국 병원에는 없는 ‘진료비 수납기‘ ’약 처방전 발행기‘란 벤딩미신이 곳곳에 서 있다.
진료 후에 발급된 진료비를 벤딩미신에 넣으면 약 처방전이 나오거나
처방전이 필요 없는 사람은 영수증이 나온다.
병원 애용자들은 주로 노인이다 보니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도 거의 다가 노인들이다.
노인들은 기계에 약하다. 그래서 도우미가 옆에서 도와주고 있다.
도우미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환자들은 대부분 노인에다가 몇 달 만에 한 번씩
병원에 오다 보니 기계 사용법을 배웠다가도 잊어버리기 때문에 옆에서 도와줘야 한단다.
벤딩미신 수납기는 병원 측에 유리한 기계다.
환자가 기계에다대고 불평을 할 수도 없고 진료비를 따질 수도 없다.
그만큼 시비가 줄어들었으니 병원으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기계더러 진료비 깎자고 시비할 수는 없으니 이것 또한 다행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환자가 너무 많아서 수납창구로는 업무처리가 불가능해서 곳곳에
기계를 설치해 놓고 진료비를 받아야 한다.
진료비 받는 일은 로봇이 대행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맞다.
전 국민을 진료하려니 방법도 진화해 있다.

대기실에는 현미차가 준비되어 있다.
누구나 일회용 컵에다가 더운물을 따라 티백을 넣고 마시게 되어 있다.
넓은 로비에는 커다란 탁자용 티 팥을 싣고 다니면서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메밀차를 따라준다.
사람들은 번거롭게 자기가 직접 티를 타서 마시는 건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면서도
이동형 티 팥 벤더에서 주는 티는 좋아들 한다.
이제 겨우 가을인데도 환영받고 있는 따듯한 티 한 잔이니,
겨울철에는 정말 사랑받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 대기실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내 이름이 올라와 있다.
내 차례가 돼서 들어가려고 했더니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신재훈’이다. “신재*‘하면 내 이름인 줄 알고 봤더니 그게 아니다.
사람 놀리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기다리다 못해 아가씨에게 물어봤다.
“내 순서는 언제쯤 올 것이냐?” 점심 전에는 온단다.
하도 많은 사람을 기다렸기에 의사가 환자 몇 사람이나 보는지 알아봤다.
오늘 오전에 57명, 오후에 48명으로 되어 있단다.
아! 이 의사 정말 바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양반 이러다가 쓰러지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근무시간을 알아봤다.
월요일 오전 근무, 화요일 오전, 오후 근무, 목요일 오전 근무 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간 날이 화요일이어서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이다.

병원에 근무하는 여자들이 입은 균일한 유니폼이 눈에 거슬린다.
간호사는 아니고 대기실에서 접수하거나 의사 옆에서 안내해 주는 일을 하는
여자 직원들은 하나같이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환자와 직원을 구분하기 쉽게 해 놨다.
문제는 연한 핑크색 유니폼이 색상에서부터 디자인이 후줄근한 게
젊고 아름다운 여자 몸매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북한에서 만난 여자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뒤떨어진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의 패션이 매우 발달해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왜 이분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은 후진 스타일을 고집해야 하는지?
병원에서 적당한 사이즈을 꺼내 입었기 때문에 몸에 딱 맞는 것도 아니고,
다리미질도 세탁소에서 프레스 해온 그대로를 입고 있으니 후적지게 보인다.
케케묵은 올드 스타일 깃보다는 깃을 세워서 세련미를 보여줄 수도 있고,
팔소매 폭을 좁혀 각선미를 낼 수도 있다.
병원보다 더 험한 일을 하는 호텔 일꾼들이나 식당 주방에서 입는 옷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젊은 여자들이 세련미 흐르게 차려 입고 활기차게 일할 수도 있는 것을
병원 측의 무관심 속에 후줄근한 여자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안타깝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병원에 환자가 많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다른 점은 한국 병원 의사들은 너무 많은 환자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에 100명 환자를 봐야 한다는 것은 후진국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료의 질이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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