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고 해도 쌀쌀하지 않으니 가을 같지 않다.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나섰다.
여름옷을 입었어도 조금 빠르게 걸으니 이마에서 땀이 난다.
옷이 가벼워 산뜻하고 기분이 좋다.
공원을 다 돌도록 나처럼 여름옷을 입은 사람은 없다.
긴 팔에 긴바지는 물론이려니와 잠바까지 입었다. 모두 가을 옷을 입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옷을 계절에 맞춰 입는다.
기온이 따듯해도 가을이니까 긴 팔에 잠바까지 걸치고 간다.
가을이라고는 해도 가을 같지 않은 날씨에 더워하면서까지 가을 옷을 입는
사람들이 내 눈에는 거슬린다.
나 홀로 이리로 가고 9명이 저리로 가면 처음에는 내가 틀렸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지나면 내가 틀렸네로 바뀌면서 무리에 섞이기를 바란다.
세상에 단 하나인 나만의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도 다들 저리로 가니까
나도 흔들리고 만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별이 되고 싶으면서도 무리가 저리로 가니까
따라가고 만다.
옷에 계절이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옷은 기온에 맞게 입는 것이 기본이고 계절에 맞게 입는 것은
그다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오래전에 딸이 대학에 다닐 때 보스턴에 간 일이 있다,
그때도 가을이었다.
가을이라고는 해도 지금처럼 포근한 가을이었다.
미국인 할머니가 밍크 털 오버를 입고 공항엘 나왔다.
추운 겨울에나 입는 옷을 입고 있는 할머니가 내 눈에는 거슬렀다.
그때는 저 할머니 계절도 모르고 옷을 입나 하는 생각에 흉을 본 일이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알았다.
미국인들은 계절이 아닌 내 몸 기온에 옷을 맞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