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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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부터 수리에 들어간 동네 목욕탕이 11월이면 재개장하겠다고 써 붙였건만,
해를 넘겼는데도 기별이 없다.
수리를 하고 있는 건지, 하다가 중단한 건지 알 수 없다.
조금 먼 곳의 다른 목욕탕을 찾아갔다.
아무리 허술해도 요금은 같다. 들어가는데 뒤에서 붙잡는다.
뒤돌아보니 돈 받던 아가씨다.
“거기는 여탕이니 그리로 가면 안돼요”
“뭐? 내가 여탕으로 들어간다고?”
나도 놀랐다. 왜 이렇게 됐지? 내가 늙었나보다 생각했다.
한참 후에야 알아차렸다. 이 목욕탕이 그만큼 낡고 허술해서 남녀 탕이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똑 같은 실수를 할까봐 이번에는 전철을 타고 마두역 근처에 있는 목욕탕으로 갔다.
목욕탕은 대부분 지하에 있다. 들어서는 입구에 남탕만 있다고 써 붙였다.
세상에 무슨 목욕탕이 여탕은 없고 남탕만 있는 목욕탕이 다 있다니.
들은 소리로는 여자들은 물을 많이 써서 물 값이 곱절은 더 나온다고 하더니
주인장 심뽀가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언짢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탕을 없애 버리면 이 동네 여자들은 목욕하지 말란 말인가?
아무튼 안으로 들어갔다. 남탕만 있다니 실수할 것도 없다.
오늘 내가 목욕탕에서 느낀 점은 남자들이 모두 살이 쪘다는 사실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통통하든지 아니면 디룩디룩 해 보였다.
몸 무계 꽤나 나가 보였다.
매일 보는 사람들은 그게 그거려니 하겠지만 안 보다가 보면 눈에 확 띈다.
힘 꽤나 써 보일 것 같지만, 병 꽤나 많을 것도 같다.
마른 사람이 건강해 보이니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60년대에 목욕탕에 들어가면 모두 베트공처럼 비쩍 마른 사람들뿐이었다.
그때는 살 찐 사람이 부러웠고, 살 찐 사람이 건강해 보였다.
먹어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던 시절이었다. 살찌는 게 소원이었다.
지금은 먹지 않아도 살이 찐다.
수돗물에 비타민이 섞여 나오는지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훈련소 내무반에서 기합을 받았다.
처음 입대했으니 군기 잡는 기합이었다. 내무반 복도를 기준으로 한 편에
20명 다른 편에 20명이 자게 되어 있다. 선임하사가 들어오더니 모두 일렬로
서라고 했다. 양쪽에 일렬로 줄을 맞춰서 마주보고 섰다.
이번에는 모두 다 벗으라고 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불호령에 꼼짝 못하고 모두 홀딱 벗고 일렬로 섰다.
각자 M1 소총을 들고 서라고 했다.
그날 밤, 불을 대낮같이 환하게 켜놓고 빨가벗은 40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M1소총을 들고 서서쏴 자세로 일어섰다, 앉았다가를 100번을 하고 났으니
나중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도 벗은 남자들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그래도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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